땅속에 자기 몸길이의 2∼3배 깊이로 구멍을 판 뒤 알을 낳는 암컷 사막메뚜기의 산란 모습 그림. 텔아비브대 제공.
늦가을 짝짓기를 마친 메뚜기 암컷은 땅속에 배를 집어넣고 알을 낳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과정에서 메뚜기는 신경 손상 없이 배를 원래 길이의 2∼3배로 늘리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미르 아얄리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아이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사막메뚜기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암컷은 땅속에 알을 낳을 때 중추신경계의 탄력을 이용해 아무런 손상 없이 원래 길이의 2∼3배로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산란기의 메뚜기 암컷은 산란관 끝에 달린 한 쌍의 밸브를 굴착 장비처럼 사용해 땅을 판다. 알이 마르지 않고 부화하기에 적합한 깊이까지 판 뒤 알을 낳는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건조지대에 사는 사막메뚜기는 더 깊은 곳에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는 사막메뚜기의 모습. 아프리카 북부와 동부, 중동에 서식하며 집단번식해 농작물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크리스천 쿠이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지만 무작정 몸을 늘일 수는 없다.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핵심기관인 신경계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신경계가 망가지거나 영구적인 손상을 받지 않고 늘어날 수 있는 범위는 30% 정도”라며 “생물체 가운데 메뚜기와 같은 능력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막메뚜기는 약 30분에 걸쳐 산란관을 땅속에 넣어 구멍을 판 뒤 알을 낳는다. 연구에 참여한 바트-엘 핀차시크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암컷의 몸길이는 4∼5㎝인데 알을 낳을 때는 10∼15㎝로 늘어난다”며 “알을 낳고 나서는 재빨리 원래 길이로 돌아가지만 새로운 산란을 위해 몸을 늘이는 작업을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아얄리 교수는 “암컷 메뚜기의 이런 초능력은 거의 공상과학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신경을 이렇게 늘일 수 있는 동물로 혀를 늘이는 향고래와 바다달팽이 일부가 알려졌지만 이들도 애초 긴 신경이 아코디언처럼 접혀 있다 풀리는 것이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메뚜기의 중추신경을 떼어내 몸속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힘을 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밀하게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핀차시크 교수는 “향고래처럼 신경이 접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주름구조는 찾을 수 없었다”며 “암컷 메뚜기의 신경이 늘어났다가 원래 길이로 줄어들어 아무런 조직의 손상도 없이 곧바로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는 건 탄성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막메뚜기가 산란을 위해 배를 늘인 뒤 다시 오므리는 과정. 라케쉬 다스 외 (2022) ‘아이사이언스’ 제공.
메뚜기 신경의 재질 자체가 주목 받는 이유이다. 연구자들은 재활의학의 신경복구나 새로운 합성조직 개발 등의 분야에서 이번 연구결과가 응용될 것을 기대했다.
인용 논문:
iScience, DOI: 10.1016/j.isci.2022.10529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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