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만년 전 신생대 에오세 때 나뭇진에 떨어져 호박 화석으로 굳은 노린재나무의 꽃으로 꽃밥과 꽃가루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카롤라 라드케 제공.
북유럽 발트해 지역에서 출토된 호박 화석에 한국 등 동아시아 특산식물인 노린재나무 꽃이 들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화석은 신생대 에오세인 약 3800만년 전의 것으로 당시 온난했던 북유럽에 살던 식물이 어떻게 동아시아에만 살아남게 됐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에바-마리아 사도프스키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박사후연구원은 다수의 발트 호박 화석을 소장하는 독일 연방 지구과학 및 자연자원 연구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 들어있는 호박을 구해 조사했다. 지름 38㎜로 호박에 든 꽃으로는 기존의 것보다 3배 이상 컸다. 큰 꽃을 온전히 뒤덮을 만큼 다량의 나무진을 분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150여년 만에 노린재나무임이 밝혀지게 된 결정적 단서는 화석에서 떼어낸 꽃밥과 꽃가루였다. 자는 1㎜이다. 사도프스키 외 (2023)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이 화석 꽃은 이미 1872년 학계에 노각나무 속 식물로 보고돼 있었다. 그러나 사도프스키 박사 등이 이 호박 속 꽃과 화석에서 떼어낸 일부 꽃가루를 최신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전혀 다른 노린재나무 속 식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 달라진 꽃의 학명을 보고했다. 노린재나무는 당시 나무진이 흘렀던 북해 지역이 지금보다 훨씬 온난했음을 가리킨다.
동북아 특산식물인 노린재나무는 5월께 희고 풍성한 꽃을 피운다. 이 식물의 이름은 태운 재가 노랗다는 것이지 악취를 내는 곤충 노린재와는 무관하다. 현진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그렇다면 왜 당시 북해에 분포하던 노린재나무가 동아시아에만 살아남은 걸까. 연구자들은 “현재 동아시아에만 사는 식물들 가운데 일부는 북반구에 광범한 화석 기록을 남겨, 그곳에서 기원해 퍼져나갔음을 가리킨다”며 “이후 기후 한랭화로 북반구가 빙하로 덮히면서 모두 절멸하고 동아시아 피난처에서만 살아남은 것”이라고 논문에 밝혔다.
나무진이 굳은 광물인 호박은 깊은 땅속에서 납작하게 눌린 화석과 달리 고대 생물의 생생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당시의 생태계를 짐작하게 해 준다. 호박에는 다양한 생물이 갇히는데 대부분 곤충 같은 절지동물이고 식물은 매우 드물어 발트해에선 1∼3%에 그친다. 나무진에 이끌려 돌아다니다 종종 빠지는 곤충과 달리 식물은 그럴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호박은 나뭇진이 굳어 형성된 광물로 과거의 생태계를 엿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나뭇진에 빠지는 생물은 대부분 절지동물이다. 발트 호박에서 발견된 바구미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노린재나무 속 식물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떨기나무로 봄에 화려하고 풍성한 꽃을 피운다. ‘노린재’란 이름은 가을에 잎을 태우면 노란 재가 남는다는 데서 비롯했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2-24549-z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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