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을 만나면 재질의 수분흡수 능력 차를 이용해 꼬인 줄기가 펴지면서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도록 설계된 ‘씨앗 로봇’의 모습. 카네기멜론 대 제공.
건조지대에 적응해 진화한 국화쥐손이 속 야생화는 씨앗을 안전하게 묻는 독특한 전략을 개발했다. 씨앗에는 코르크 병따개처럼 돌돌 말린 자루가 달려있고 끝에는 긴 날개가 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진 뒤 비가 오면 스프링처럼 말린 자루가 풀리면서 마치 나사를 박듯이 땅속으로 파고든다.
스스로 힘으로 새나 뜨거운 햇볕을 피해 안전한 땅속으로 씨앗을 옮기는 국화쥐손이를 흉내 낸 ‘씨앗 로봇’이 개발됐다. 얇은 합판 재질인 이 씨앗 운반 장치는 험준한 산불 피해 지역의 항공파종은 물론 비료나 토양 균류를 효과적으로 살포하는 데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화쥐손이의 씨앗 모습. 우리나라 함경도 등 북부지방에도 분포한다. 다리오 크레스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댄리 루오 미국 카네기멜론 대 연구원 등은 16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건조기후에 적응해 진화한 국화쥐손이의 씨앗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확장해 날개를 3개로 늘리고 수분 변화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특징을 강화한 기하학적 설계를 고안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수분을 잘 흡수하는 떡갈나무로 만든 합판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화학적 세척과 기계적 주형 만들기 등 5단계 공정을 통해 실험실에서 운반체를 제조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이 고안한 씨앗 로봇이 땅에 떨어진 뒤 비를 맞으면 스프링처럼 꼬인 씨앗 줄기의 안쪽 표면이 바깥보다 더 많이 부풀어 올라 코일이 풀리게 된다. 이때 날개 끝이 흙과 만나면서 씨앗을 똑바로 세우는 동시에 말린 줄기가 풀리면서 드릴처럼 씨앗을 땅속에 파묻는다.
코일이 마르면 이번에는 안쪽 표면이 더 많이 수축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반대방향으로 드릴을 돌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수분 변화에 따른 변형은 솔방울에서도 관찰돼 축축한 곳에서 움츠러든 씨앗이 건조하면 저절로 벌어진다.
땅에 떨어진 씨앗 로봇이 수분의 변화에 따라 방향을 바꾸며 돌아 씨앗을 땅속에 심는 과정. 카네기멜론 대 제공.
연구자들은 “국화쥐손이의 외 날개 꼬리는 틈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작동하지만 이번에 개발한 운반체는 더 다양한 환경에서 씨앗의 자세를 세워 묻는 효과가 훨씬 뛰어났다”고
카네기멜론 대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국화쥐손이 씨앗이 전혀 묻히지 못하는 평지에서 실험한 결과 80%의 굴착 성공률을 보였다”고 논문은 적었다.
씨앗 로봇으로 심은 씨앗에서 싹이 난 모습. 카네기멜론 대 제공.
교신저자인 리닝 야오 카네기멜론 대 교수는 “내몽골 출신의 농부인 아버지께 이 개발 내용을 설명하자 곧바로 알아들었다”며 “생분해 물질로 만든 씨앗 운반체가 자연에도 유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장치로 52∼75㎎ 범위의 다양한 씨앗을 자력 파종할 수 있으며, 씨앗뿐 아니라 비료나 천연 살충제 구실을 하는 선충, 식물과 공생하는 균류 등을 효과적으로 살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연산 국화쥐손이 씨앗과 비교한 씨앗 로봇의 구조. 카네기멜론 대 제공.
사무엘 메이슨 영국 엠피리얼 칼리지 런던 박사는 이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이 나무 로봇을 제조하려면 합판을 정교한 3디-프린터로 만든 거푸집에 위치시켜야 하고 조심스럽게 꼬리를 붙여야 하는 등 대량 생산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면서도 “생물에서 영감을 얻은 연구진의 해법은 나무가 아직 첨단 소재임을 보여준다”고 적었다.
인용 논문: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656-3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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