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암컷(왼쪽)이 참거두고래 새끼를 데리고 헤엄치고 있다. 새끼에서 범고래 특유의 흰 반점 무늬를 볼 수 없다. 므루스초크 외 (2023) ‘캐나다 동물학 저널’ 제공.
2021년 아이슬란드 서해안에서 마리-테레스 므루스초크 서아이슬란드 자연 연구 센터 연구원 등 고래 전문가들은 색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3마리로 이뤄진 범고래 가운데 암컷 한 마리가 새끼를 데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갓 태어난 참거두고래였다.
범고래는 가슴지느러미 바로 옆에 새끼를 데리고 헤엄쳤다. 큰 몸집이 일으키는 압력파를 타고 새끼가 힘들이지 않고 어미를 따를 수 있는 새끼를 보살피는 고래의 전형적인 대형이었다.
관찰이 이뤄진 21분 동안 새끼를 돌보는 범고래의 행동은 이어졌지만 젖을 먹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갓 태어난 거두고래는 매우 여읜 상태였다. 이 암컷 돌고래는 관찰이 이뤄진 지난 9년 동안 새끼가 없었고 당연히 젖도 나오지 않았다.
범고래를 따라 헤엄치는 새끼 거두고래는 젖을 먹지 못해 매우 수척한 상태였고 이후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므루스초크 외 (2023) ‘캐나다 동물학 저널’ 제공.
연구자들은 ‘캐나다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범고래가 종이 다른 고래 새끼를 돌보게 된 이유로 2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언가의 이유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끼 거두고래를 범고래가 입양했거나 아니면 납치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돌고래 사이에는 다른 종을 돌보는 행동이 종종 보고된다. 2019년에는 큰 돌고래 암컷이 참돌고래과의 고양이고래 새끼를 자기 새끼와 함께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 돌고래는 자기 새끼가 무슨 이유에선가 사라진 뒤에도 다른 종을 계속 돌봤다. 다른 종을 새끼로 삼는 행동이 잦은 것을 두고 다른 종 새끼를 훔치는 것 아니냔 가능성도 제기됐다.
‘육아 대형’을 이루어 새끼와 함께 헤엄치는 범고래 암컷. 흰 반점 무늬가 선명하다. 크리스토퍼 미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듬해 같은 범고래 무리를 만났는데 이때 거두고래 새끼는 곁에 없었다. 젖을 먹지 못한 새끼는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므루스초크는 과학 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그로부터 넉 달 뒤 이 암컷 범고래를 다시 목격했다. 이번에는 10마리의 범고래와 무리를 이뤘는데 40마리의 참거두고래 무리와 독특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거두고래 무리는 범고래 무리를 뒤쫓아 몰아대다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아섰고, 보통 속도로 물러나던 범고래 무리는 다시 거두고래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거두고래는 다가선 범고래들을 다시 물리치는 행동이 되풀이됐다. 거두고래 무리에는 여러 마리의 새끼가 포함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범고래가 거두고래의 새끼를 납치하려던 것 아닌가 의심했다.
새끼와 헤엄치는 참거두고래 암컷. 범고래와 거두고래 사이에는 새끼 납치 같은 알려지지 않은 복잡한 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문제의 범고래는 9년 동안 한 번도 자기 새끼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거두고래 새끼를 돌보면서 값진 육아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범고래와 거두고래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범고래와 거두고래는 모두 참돌고래과의 대형 돌고래로 길이 6m까지 자라는 거두고래는 대형 돌고래 가운데 범고래 다음으로 크다.
인용 논문:
Canadian Journal of Zoology, DOI: 10.1139/cjz-2022-01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