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체내에 정교한 나침반을 지닌 채 태어나도록 진화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철새들은 해마다 수천㎞를 날아 고향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어떻게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오랜 수수께끼가 해결됐다. 새의 눈에 있는 ‘크립토크롬4’라는 단백질이 지구 자기장을 시각적으로 감지해 생체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두 그룹의 유럽 과학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새들은 체내에 정교한 나침반을 지닌 채 태어나도록 진화했다. 근래의 연구에서 이 나침반은 새 눈의 망막에 존재하는데, 빛에 의해 유도되며 라디칼 쌍이 관여하는 생화학 및 양자 반응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과학자들은 크립토크롬으로 불리는 몇 종류의 단백질이 생체 나침반 역할에 관여하는 것으로 주목해왔다. 크립토크롬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도 존재하는 단백질인데, 가시광선 가운데 청색광을 흡수하는 ‘광수용체’로 생물이 하루 중 시간대별로 다양한 생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체리듬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척추동물에서 크립토크롬은 빛을 받아 활성화되면 라디칼 쌍을 이루는 유일한 종류의 단백질이기 때문에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자기수용체’ 역할도 할 것이라고 추정돼왔다.
금화조의 크립토크롬 단백질을 확인한 결과, 크립토크롬4가 나침반 단백질인 것으로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스웨덴 룬드대학 연구진이 새의 몸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찾아내 지난 달 말에 학술지 ‘로열 소사이어티 인터페이스 저널’을 통해 발표했다.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이동하는 방향을 찾게 해주는 나침반 단백질을 찾은 것이다.
지난해에 연구진은 철새만 체내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동을 하지 않는 텃새도 체내 나침반을 이용해 일상적으로 자기장을 감지하고 방향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들은 장거리를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것이므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데 관여하는 크립토크롬 단백질은 하루 중 시간대에 상관없이 일정한 양이 생성되어야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반대로 하루를 주기로 시간대별로 다른 생체 반응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크립토크롬은 시간대에 따라 변동이 심할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금화조의 눈과 근육, 뇌 조직에 존재하는 세 종류의 크립토크롬 단백질이 하루 동안 어느 정도의 양으로 존재하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랬더니 크립토크롬1과 크립토크롬2 단백질은 새의 망막에 존재하는 양이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변동이 컸으며, 크립토크롬4 단백질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크립토크롬4가 새로 하여금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게 해주는 나침반 단백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사실은 지난 1월에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를 통해 발표된 독일 올덴부르크대학 연구진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연구진은 멀리 이동하는 철새인 유럽울새의 망막에 있는 크립토크롬 단백질을 생성하는 데 관여하는 전령리보핵산(mRNA)들의 하루 중 시간대에 따른 존재량을 확인했다. 크립토크롬1a와 크립토크롬1b, 크립토크롬2를 만드는 mRNA들은 시간대별로 변동이 심하지만 크립토크롬4 단백질을 만드는 mRNA는 변동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동 시기가 되면 유럽울새의 망막에 존재하는 크립토크롬4 단백질을 만드는 mRNA가 훨씬 많아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진은 봄·가을 이동 시기와 이동하지 않는 시기에 각각 생성되는 유럽울새의 크립토크롬과 닭의 크립토크롬을 서로 비교해보았다. 이동 시기가 되면 유럽울새 망막에 존재하는 크립토크롬4 단백질을 만드는 mRNA가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유럽울새가 다가올 이동에 대비해 체내 나침반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동하지 않는 닭에서는 크립토크롬4 단백질 발현이 시기에 따라 변동하지 않았다.
이들은 또한 크립토크롬4 단백질은 유럽울새와 닭의 망막에서 색상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이중원추세포 바깥부위에서 많이 생성된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것은 자기장을 감지하는 자기수용 능력이 빛에 연관되어 있는 시각적인 능력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들이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른 동물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자기장은 새의 시야에 검거나 밝은 빛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며, 새가 방향을 바꾸면 이것이 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새들은 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감각기관을 활용한다. 많은 새는 태양이나 별들의 위치를 보고 가야 할 방향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태양이나 별의 위치는 하루 중에도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정확한 방향을 찾으려면 시간에 따른 위치 보정이 필요하다. 새의 부리에 자성을 띠는 결정성 물질이 있어서 위도에 따른 지구 자기장 강도의 차이를 감지하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몇 번의 이동 경험이 쌓이면 도중의 특이한 경관을 기억했다가 길을 찾는 이정표로 활용한다고도 한다.
지구 내부 외핵에 존재하는 액체 상태의 철이 대류현상에 의해 움직이면서 전류를 생성함에 따라 지구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지구 전체가 남극과 북극을 양극으로 삼는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 되는 셈이다. 지구 자기장은 태양에서 발산되는 유해한 플라스마의 흐름인 태양풍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데, 새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은 이러한 지구 자기장의 방향과 강도를 감지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tticus Pinzon-Rodriguez, Staffan Bensch, Rachel Muheim. Expression patterns of cryptochrome genes in avian retina suggest involvement of Cry4 in light-dependent magnetoreception.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18; 15 (140): 20180058 DOI: 10.1098/rsif.2018.0058
Henrik Mouritsen et al. DoubleCone Localization and Seasonal Expression Pattern Suggest a Role in Magnetoreception for European Robin Cryptochrome 4. Current Biology 2018
DOI: https://doi.org/10.1016/j.cub.2017.12.003
마용운 객원기자·굿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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