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붕어 수컷이 민물조개를 영역으로 확보하고 다른 수컷의 접근을 견제하고 있다. 최승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작고 납작한 납자루 무리의 민물고기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번식한다. 번식기인 5월이 되면 화려한 혼인색으로 물든 수컷은 적당한 민물조개를 찾아 자기 영역으로 확보한다.
암컷은 자기 몸보다 긴 산란관을 내어 조개의 아가미 틈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재빨리 조개가 물을 빨아들이는 관에 방정해 알을 수정시킨다.
조개 몸속에서 깨어난 물고기 유생은 배에 달린 노른자를 모두 흡수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조개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가장 취약한 산란 뒤 약 한 달 동안을 안전한 조개껍데기 속에서 조개를 자궁처럼 이용하는 셈이다. 이런 번식전략을 펴는 납자루 아과 물고기는 세계에 약 40종 있지만, 동아시아가 분포의 중심지로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산다.
산란관을 낸 각시붕어 암컷. 민물조개의 출수공을 통해 아가미 틈에 산란한다. 최희규 제공.
이처럼 기발한 번식전략을 펴지만, 납자루 아과 물고기 사이에서 조개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더 크고 널찍한 조개를 차지하려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어떤 종은 경쟁을 피해 아예 번식기를 가을로 옮기기도 했다.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이런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번식행동을 정교하게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최희규 상지대 생명과학과 연구원 등은 한강 상류인 강원도 홍천 내촌 천과 덕치 천, 정선의 골지천과 조양강에 서식하는 묵납자루, 각시붕어, 줄납자루 등 3종의 납자루 아과 물고기가 작은말조개에 산란하는 양상을 연구했다.
4개 하천에서 모두 982개의 민물조개를 조사했는데, 이 가운데 16.6%인 163개에서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알이나 유생이 발견됐다. 작은말조개 6개에 1개꼴로 물고기의 산란장으로 쓰인 셈이다. 연구대상 하천의 조개 서식밀도는 ㎡당 1∼9마리로 다양했다.
작은말조개 속에 납자루 아과 물고기들이 산란한 알들 모습. 최희규 제공.
예상대로 물고기들은 상대적으로 큰 민물조개를 산란장으로 선호했다. 함께 서식하는 납자루 무리가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교신저자인 이혁제 상지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조개가 클수록 물고기 알과 유생의 생존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크고 건강한 조개에는 물고기들이 앞다퉈 산란하려 한다. 조개 하나에 낳은 알의 수는 각시붕어 평균 9개, 묵납자루 3개, 줄납자루는 2∼3개로 나타났다. 각시붕어는 조개 하나에 최대 22개의 알을 낳기도 했다. 묵납자루와 줄납자루가 같은 조개에 알을 낳은 사례도 4건이었다.
이 교수는 “묵납자루와 줄납자루가 여러 조개에 분산해 산란하는 반면 각시붕어는 선택한 소수의 조개에 집중적으로 산란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짙은 혼인색으로 물든 번식기의 묵납자루 수컷의 모습.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 물고기이다. 최희규 제공.
아가미 틈에 물고기가 알을 낳는 민물조개는 무슨 이득을 볼까. 이제까지 정설은 조개가 산란기에 접근하는 물고기한테 자신의 유생을 아가미나 지느러미에 붙여 널리 퍼뜨리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에 공생관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를 기생 관계로 봐야 한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조개가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알을 배출하려는 행동을 보이고 납자루 아과보다 다른 물고기에 조개 유생이 더 많이 부착된 것이 그런 주장의 근거”라며 “조개가 얻는 분산 이득이 미미하고, 조개 아가미에 물고기 알이 많아지면 물순환이 막혀 호흡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물고기가 조개에 기생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물조개의 서식밀도를 조사하는 연구진. 최희규 제공.
납자루 아과 어류는 번식을 민물조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데, 수질오염과 하천개수로 조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번식장소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묵납자루, 한강납줄개, 임실납자루, 큰줄납자루 등 4종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돼 있다.
이제까지 납자루 아과의 번식행동을 연구하려면 민물조개에 낳은 알의 형태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어떤 종의 물고기 알인지 구분했다. 그러나 물고기 알은 같은 종이라도 조개의 크기와 산란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발생단계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동정이 쉽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지난해 개발한 묵납자루, 각시붕어, 줄납자루 등 3종의 분자 마커를 이용해 조개 속 알을 정확하게 동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최근호에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최희규·이혁제, 납자루 아과(Pisces: Acheilognathinae) 담수어류 3종의 숙주 조개(작은말조개;
Unio douglasiae sinuolatus) 크기에 대한 산란 양상, 한국환경생태학회지 33(2): 202-215, 2019, https://doi.org/10.13047/KJEE.2019.33.2.202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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