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스키장의 조명이 야생동물을 교란하는 ‘빛 공해’로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여 년 전 국립공원 가운데 최악의 환경파괴를 겪은 덕유산이 그때 지은 스키리조트 때문에 이번에는 심각한 ‘빛 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공조명의 영향은 스키 성수기인 겨울철에 특히 심해, 무주덕유산리조트가 내쏘는 빛의 양은 인근 도시인 무주읍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사실은 성찬용 한밭대 교수와 김영재 영남대 교수가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덕유산의 빛 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빛 방사량이 가장 많은 곳은 무주덕유산리조트내 스키하우스와 호텔이 위치한 지점으로 1월의 야간 빛 방사량이 8월보다 2.7배 많았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덕유산국립공원 구역 중 빛 공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은 공원면적의 6.5%인 14.8㎢로, 여기에는 무주덕유산리조트를 비롯해 무주구천동 관광특구, 공원 관통 도로인 37번 국도와 49번 지방도 주변이 포함돼 있다. 연구자들은 “겨울철 스키 슬로프와 부대시설 조명이 덕유산국립공원 빛 공해의 주원인”이라며 “특히 겨울철 빛 공해가 심한 까닭은 장시간 야간 조명을 하는 데다 조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나뭇잎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위성에서 감지한 2018년 1월의 빛 공해. 덕유산국립공원 한가운데 있는 무주덕유산리조트(가운데)의 빛 방사량이 인근 도시 무주읍과 맞먹는다. 성찬용·김영재 (2020)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공.
연구자들은 빛 공해가 심한 이들 지역에는 담비 등 포유류 4종, 새호리기 등 조류 2종, 꼬리치레도롱뇽 등 양서파충류 9종, 감돌고기 등 어류 2종 등 다수의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야행성인 동물은 빛 공해에 취약한데, 무산쇠족제비와 삵 등의 포식자는 먹이 사냥 중 발각돼 사냥 성공률이 떨어질 수 있고, 하늘다람쥐 같은 야행성 소형 동물은 둥지에서 나오기를 꺼려 활동시간이 줄어드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빛 공해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박새를 대상으로 피해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는 2014년 나왔다.
조우 상지대 교수팀은 빛 공해가 심한 대학 내 박새와 빛 공해가 없는 치악산국립공원의 박새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빛 공해가 심한 곳의 박새들이 자연 지역에서보다 아침에 먼저 울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새 암컷은 새벽에 먼저 우는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하는데, 빛 공해로 미성숙한 수컷이 짝짓기에 성공하거나 아직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새끼가 깨어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빛 공해가 심한 곳의 박새는 일찍 울고, 그 때문에 미성숙한 수컷이 교미해 번식 성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랜시스 프랭클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성찬용 교수 등 연구자들은 “보호 야생동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서식환경에 대한 모니터링과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립공원 안에 무주덕유산리조트 같은 대규모 건축물뿐 아니라 주거용, 사찰용 건축물도 많은데 야간 인공조명에 대한 규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스키장의 야간 조명은 안전 문제가 있어 호텔 등 시설 중심으로 조명을 줄이고, 국립공원 인접 상가와 숙박시설에서 주민과 협의해 빛 공해를 줄이는 조명 개선을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가운데 대도시에 인접한 북한산, 계룡산, 무등산, 경주 등의 빛 공해가 가장 심하며, 군부대가 위치한 변산반도국립공원과 공원 한가운데 스키리조트가 있는 덕유산이 뒤를 잇는다.
인용 저널: 한국환경생태학회지, DOI: 10.13047/KJEE.2020.34.1.63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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