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왕지네. 더듬이 다음의 첫째 발이 날카로운 독니로 변형됐다. 코이데 야스노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자가 육상 포유류의 최상위 포식자라면 왕지네는 낙엽과 흙으로 이뤄진 토양생태계의 왕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에 분포하며 길이 20㎝까지 자라는 왕지네는 적갈색 몸과 노랑 또는 붉은색 다리로 주로 곤충과 거미를 사냥한다.
그러나 때로는 개구리와 뱀 또는 쥐를 공격하기도 한다. 실험에서는 무게 3g의 왕지네가 45g인 흰쥐를 30초 안에 제압하기도 했다. 쥐 등에 올라탄 왕지네는 발톱으로 들러붙은 뒤 두 개의 집게로 독물을 주입했다.
왕지네의 독은 사람도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데 세포 안팎으로 칼륨 이온이 드나드는 통로를 막아 심혈관계, 호흡, 근육, 신경계를 타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네는 독을 먹이 사냥이나 천적으로부터 보호 또는 경쟁자와 다툴 때 쓴다.
왕지네는 경쟁자와 싸울 때 큰 집게를 과시하거나 경계색으로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곧바로 상대를 물어 독물을 주입한다. 그렇다면 동료의 독니에 물린 왕지네는 어떻게 될까.
실험실에서 함께 놓은 왕지네 두 마리는 다짜고짜 독니로 상대를 무는 싸움에 접어들었지만 치명적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린 라이 외 (2020) ‘사이언스 어드밴스’ 동영상 갈무리
렌 라이 중국 과학아카데미 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궁금증을 풀었다고 밝혔다. 먹이 동물에게는 치명적인 같은 독물이라도 왕지네에게는 큰 해를 끼치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똑같은 독물이지만 동료에 주입됐을 때 봉쇄하는 이온 통로는 먹이 동물 때와 달랐다”며 “다른 동물에는 치명적인 독물질이 동료에게는 10분 이내의 마비를 부르는 정도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네는 독이 있는 육상동물 가운데 기원이 가장 오래돼 4억4000만년 전 출현했다. 몸은 22개의 마디로 이뤄지고 마디마다 2개의 다리가 달려있는데 맨 앞다리 2개는 독니로 변형됐다.
왕지네는 예로부터 한방에서 중풍, 관절염 등의 약제로 널리 써 왔고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사육도 활발하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왕지네를 약용 및 식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4∼2017년 동안 왕지네의 유전체와 실내 사육기술 등을 연구했다.
왼쪽부터 알을 품는 왕지네 암컷, 알에서 깬 새끼를 품은 모습, 흩어지기 전까지 제법 자란 새끼를 품은 왕지네 어미. 국립농업과학원 (2018) 제공
이 연구결과를 보면 왕지네는 6∼7년 동안 10번의 탈피를 거치면서 13㎝ 길이로 자랐다. 돼지고기, 닭고기, 거저리 등을 먹이로 주었는데 암·수가 짝짓기를 한 뒤 20여 개의 알을 낳았다.
어미는 몸으로 똬리를 틀어 그 위에 알을 올려놓은 뒤 수시로 입으로 알 표면을 핥았는데, 이렇게 돌보지 않은 알은 곧 곰팡이에 감염됐다. 알에서 깬 어린 새끼도 몸으로 품어 돌보는 행동을 했다.
인용 저널: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b57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