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더워지면서 물고기들이 선선한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산호초 망둥이는 불타는 듯한 멋진 색깔을 자랑하지만 20m 깊은 곳에서는 칙칙하고 흐릿한 색으로 보일 뿐이다. 나지르 아민 제공.
기후변화로 바다 표층의 수온이 오르자 물고기들은 점점 깊은 곳으로 대피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피난처에서 물고기가 짝을 찾고 경쟁자를 내쫓을 때 요긴한 피부의 선명한 색깔은 칙칙하게 보일 뿐이다.
엘레노르 케이브스 영국 엑시터대 연구자와 손케 욘슨 미국 듀크대 교수는 22일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에 실린 리뷰논문에서 “시각은 동물이 짝을 찾고 짝짓기 상대를 평가하며 침입자 경고와 동료를 찾는 데 꼭 필요하다”며 “그러나 깊은 수심으로 이동하면서 시각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런 악영향이 “지구 전역에 걸쳐 많은 종에서 나타나 있으며 특히 산호초의 얕은 바다에 사는 화려한 색깔을 띤 동물에서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불과 10m 깊은 수심에서 화려한 산호초 물고기는 평범한 색깔로 보이게 된다. 물고기가 온난화를 피해 선선하고 깊은 수심으로 이동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버나드 스프래그 제공.
다이버들은 잘 알겠지만 바다 표면에서 선명한 빨강, 노랑, 자줏빛으로 빛나던 물고기는 수심이 깊어질수록 흐릿해지고 어느 깊이를 넘어서면 푸른빛을 뺀 무지개색은 모두 사라진다. 물속에서 수심이 깊어질수록 햇빛이 기하급수적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수심 이동 효과는 적조나 오염으로 인한 탁도 증가가 일으키는 효과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인위적 오염 등에 물고기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면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도 예상할 수 있다.
발트 해에 사는 큰가시고기 수컷은 목과 배를 선홍색으로 물들여 암컷을 유인한다. 큰가시고기는 수컷이 둥지를 짓고 알을 부화시켜 돌보는데 선명한 색깔을 띨수록 알의 부화율이 높다. 암컷은 색깔을 통해 최적의 수컷을 찾는다. 그러나 물이 혼탁해지자 암컷은 수컷 색깔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수컷의 자질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됐다.
큰가시고기 수컷은 선명한 붉은색 혼인색을 띨수록 새끼를 키우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물이 탁해지면 암컷은 수컷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의 시클리드는 한 종이 수많은 종으로 분화한 것으로 유명한 민물고기이다. 그러나 오염으로 물이 탁해지자 미묘한 색깔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종과 짝짓기해 잡종화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탁한 물에서 물고기 사이의 신호가 교란되는 똑같은 일이 온난화에 밀려 더 깊은 수심으로 밀려나는 종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 짝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먹이 찾기, 경쟁자 인식, 포식자 경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9년 세계의 바다 표면 수온이 1981∼2010년 평균에 견줘 얼마나 높아졌나 보여주는 지도. 진한 붉은 빛일수록 높은 온도를 가리킨다. 케이브스 외 (2021) ‘왕립학회보 비’ 제공.
온난화 영향은 고위도의 찬 바다일수록 심하다. 미국 북동해안의 표층 온도는 1968∼2007년 사이 1도가량 올랐지만 물고기들은 해마다 1m 이상 깊은 수심으로 이동했다.
수온 상승은 열대바다라고 예외가 아니다. 산호초가 있는 207개 열대바다를 조사한 결과 10년에 0.32도꼴로 수온이 높아졌다. 케이브스는 “금세기 말까지 바다표층 수온은 1896∼2005년 평균에 견줘 4.8도까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온 상승 영향은 좀 더 선선한 고위도로 서식지를 이동하기 곤란한 가로로 펼쳐진 바다나 호수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내다봤다. 지중해, 멕시코만, 북해, 오대호와 애초에 고립된 산호초 해역이 그런 곳이다.
산호초 물고기의 화려한 색깔과 10m 더 깊은 곳에서 모의한 색깔. 버나드 스프래그 제공.
연구자들은 수학모델을 이용해 물고기가 표층에서 깊은 수심으로 이동했을 때 어떻게 보일지 모의 조사했다. 대양에서는 붉은색이나 오렌지 색 같은 긴 파장의 색이 먼저 줄었다. 담수에서는 청색과 녹색 계통의 단파장 빛이 먼저 사라졌다. 욘슨 교수는 “마치 컬러 티브이를 보다 흑백 티브이로 돌아간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1.039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