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들이 경기도 화성시 한 도살장 앞을 찾아 도살 직전의 돼지들에게 물을 주고 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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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사람의 눈에 비친 도축장은 어떤 모습일까.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 하지만 그 누구도 대변해 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마지막 목격자’가 된 수의사가 있다.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프손은 ‘고기’가 되기 위해 실려온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축장 일에 지원한다. 책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그가 도축장에서 85일간 일하며 마주한 소, 닭, 돼지의 참혹한 도축 실상을 담고 있다.
새 책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스웨덴 국립식품청의 수의직 공무원이 된 그의 일은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일이다. 농장에서 실려온 동물들이 아프지 않은지, 식품으로서 결함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근무 첫날부터 그가 목격한 것은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살처분 당하는 돼지의 모습이었다.
“이마에 볼트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녀석의 몸이 뻣뻣해지다가 털썩 쓰러진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친다. 돼지는 몸을 떨고 경련으로 움칠대며 이리저리 뒤치지만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돼지가 조용해지기까지 30분이 걸린다. 피가 사방으로 튄다. 적재 사다리에도, 벽에도, 돈방 안에까지.”
그는 이렇게 날마다 현장에서 마주친 잔혹한 상황들을 낱낱이 일기로 기록한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해부한 도축장의 모습은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은 독자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생생한 도축장의 모습을 눈 앞에 펼쳐보이며, ‘동물이 인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것이 마땅한지 신중히 되묻는다.
지은이는 비록 채식주의자이지만 구내식당에서 육식을 먹는 다른 직원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동물을 반려동물과 식용으로 나누는가 고민하지만,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안에서도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그런 지은이를 닮았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해결책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기꺼이 버텨낸 시간을 써내려가며 공감을 청할 뿐이다.
지난달 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발언에 해묵은 논쟁이 다시 펼쳐졌다. ‘개고기는 안 되고 소, 닭, 돼지는 괜찮냐’는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핵심을 이 책은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장식 축산의 피할 수 없는 동물학대와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고기가 한때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