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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소 귀의 번호표 떼고…‘육우’가 아닌 생명으로 떠난 소원이

등록 2022-04-13 13:35수정 2022-04-13 13:50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울진 산불 피해 소 ‘소원이’ 다리 골절 뒤 구조
하룻밤 새 소 살리기 600명 동참했지만 결국 사망
울진 산불 구호 현장에서 만난 소 ‘소원이’는 화재 당시 축사에서 도망치려다 다리가 골절돼 고통받고 있었다.
울진 산불 구호 현장에서 만난 소 ‘소원이’는 화재 당시 축사에서 도망치려다 다리가 골절돼 고통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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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표번호 1183-01553의 소.

‘소원이’는 우리가 붙여 준 이름이다. 카라의 활동가들이 이름을 붙여주기 전까지는 그냥 이표번호(귀에 부착한 등록번호)로만 구별되던, 새끼를 낳는 암컷 육우였을 뿐이다. 소원이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지난 3월 초 울진 산불 현장에 동물구호 활동을 하러 가면서였다. 울진국민체육관에 모인 이재민들을 대상으로 동물과 관련된 도움을 요청받던 중에, 한 주민으로부터 ‘우리 집에 소가 쓰러졌고 개가 한 마리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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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되기 위한 소의 죽음

주소지로 찾아가니 소원이는 축사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산불이 마을을 덮친 날, 소원이는 축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그 여파로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산불이 나고 소원이가 쓰러진 지 사나흘이 지났는데도 그의 화상 자국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노인 부부가 준 주소지로 찾아가니 다리가 골절돼 주저앉은 소 ‘소원이’가 축사 안에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사나흘이 흘렀지만 화상 자국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노인 부부가 준 주소지로 찾아가니 다리가 골절돼 주저앉은 소 ‘소원이’가 축사 안에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사나흘이 흘렀지만 화상 자국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인은 소원이의 도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 브루셀라병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소원이는 고통으로 처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육고기로 도축되어 유통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약물도 쓰면 안된다고 했다. 그 어떤 항생제나 진통제도 맞지 못하고 온 고통을 고스란히 앓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도살장의 소들이 어떤 일을 거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들은 줄 서서 도축을 기다리다 머리가 고정된 채 충격을 받고 기절한다. 도축업자들은 구멍난 머리 사이로 척수를 마비시킨 뒤 소의 뒷다리를 고정해 거꾸로 매단다. 머리를 자르면 방혈이 시작된다. 그 후 무게를 재고 등급이 매겨진다. 살려고 도망치려다 다리가 부러진 소원이를, 이 죽음의 과정으로 내몰 수는 없었다.

다리를 다친 소원이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달려온 수의사는 가능한 모든 처지를 했다.
다리를 다친 소원이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달려온 수의사는 가능한 모든 처지를 했다.

사실 소원이는 어차피 언젠가는 도살될 소였다. 우리나라 축산업에서 소는 생명이 아니라 재산이니 말이다. 게다가 소원이는 당일 밤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화재 연기를 심하게 마셔서 호흡이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호흡기 염증이 매우 심할 것으로 추측됐다. 더더욱 대형 동물의 경우 골절이 되면 안락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소원이는 너무나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도축 과정에서도 불가피한 학대가 예상됐다. 어차피 죽을 몸, 고통은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카라는 소원이를 구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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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곳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

즉시 소원이의 매입비와 치료비를 위한 모금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주인인 노인 부부에게 소원이를 매입했다. 모두가 소를 단지 재산으로만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았지만 살리고자 한다면, 어쩌면 소원이는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이 생겼다.

곧장 수의사를 불렀고 한밤중에도 달려온 수의사는 가능한 모든 처지를 했다. 조금 기운이 나는지 소원이는 같은 축사에서 지내고 있던 이들과 인사를 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 “제발 살자, 내일 또 만나자, 소원아.” 카라 활동가들은 밤늦게까지 소원이의 곁을 지키다가, 울진 산불현장에서 수습한 백구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축사를 떠났다. 이튿날 아침에 만날 수 있기만을 밤새 간절히 빌었다.

급하게 소원이의 매입을 진행하고 부디 살아주기만을 기도했지만 이튿날 소원이는 세상을 떠났다.
급하게 소원이의 매입을 진행하고 부디 살아주기만을 기도했지만 이튿날 소원이는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소원이는 다음 날 해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월 8일 새벽의 일이다.

소원이를 묻어주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소원이를 매입할 때, 노인 부부에게 혹시 소원이가 잘못된다면 축사 부지 내에 소원이를 묻을 것을 약속받았었다. 지자체와도 축사에 묻는 내용에 대해 협의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소원이를 묻을 때가 되자, 노인은 비탈진 암벽을 가리켰다. 전선줄이 매립되어있기까지 한 곳이었다. 땅을 제대로 팔 수도 없는 곳에 소원이를 묻을 수 없었다. 비가 내리면 금방 사체가 밖으로 쓸려 나올 것이 뻔했다.

야속하게도 노인 부부는 5년을 꼬박 키운 소였지만 이미 몸값을 받은 죽은 소의 장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야속하게도 노인 부부는 5년을 꼬박 키운 소였지만 이미 몸값을 받은 죽은 소의 장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소원이를 축사 밖으로 꺼내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작고 협소한 소원이를 사체 훼손 없이 안전히 꺼내기 위해서는 축사 벽을 허물거나 천장 일부를 뜯어내야 했다. 하지만 노인은 ‘산불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소원이를 꺼내는 것에 협조하지 않았다. 5년을 꼬박 키운 소였지만 이미 몸값을 받은 죽은 소에 대해 그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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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마음’ 600명이 모였다

꼬박 삼 일을 싸우고, 설득하고, 뒤돌아 우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현장에서도, 서울에 잠시 돌아와서도 계속 노인 부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설득했다. 한편으로는 죽은 채로도 축사에 누워 있는 소원이의 처지가 그렇게 가여울 수 없었다. 소원이는 이제 우리 소인데, 장례조차 제대로 치러줄 수 없다는 게 막막했다. 결국 3월10일, 축사 인근에 소원이의 매립지를 얻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3월10일 축사 인근에 소원이의 매립지를 얻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3월10일 축사 인근에 소원이의 매립지를 얻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소원이가 잠든 곳은 양지 바른 땅이다. 소원이를 묻기 전에 소원이의 귀에서 이표를 제거했다. 그를 평생 ‘육우’로서만 관리했던 표식이었다. 이미 죽은 몸이지만, 축산업의 굴레이자 누군가의 수단으로서 사는 삶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이제 백일 여쯤 지나면 소원이의 몸은 완전히 분해될 것이다. 소원이는 이 세상의 아주아주 작은 것이 되어 새싹으로도 자라고, 몇 갈래의 바람이 되고, 어쩌다 다시 무언가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소원이를 위한 모금캠페인을 했을 때, 하룻밤 새 무려 6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소원이를 위해 후원금을 보내왔다. 소원이가 세상을 떠나고 모금캠페인 중단을 공지했을 때도 사람들은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돈으로 울진 산불로 다친 동물들을 살려달라는 댓글이 계속 달렸다. 소원이의 죽음을 알리고 환불 신청 시트를 열었지만, 환불을 요청한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소원이는 이 세상의 아주아주 작은 것이 되어 새싹으로도 자라고, 몇 갈래의 바람이 되고, 어쩌다 다시 무언가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소원이는 이 세상의 아주아주 작은 것이 되어 새싹으로도 자라고, 몇 갈래의 바람이 되고, 어쩌다 다시 무언가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소원이를 살리고자 시작한 모금 캠페인인만큼 남겨진 기부금은 울진의 동물구호 활동에 쓰였다. 30마리 개들을 구조했고, 다친 고양이들을 치료했고, 야생동물을 위한 씨앗과 열매를 뿌렸다. 남은 금액은 구조한 동물들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소원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생명이 다른 동물들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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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 표식을 떼어내며…

언젠가 우리는 또 다시 소를 살릴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모두가 소 돼지 닭을 고기로만 보고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현실에서, 다친 한 마리의 소일지언정 생명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비록 고통 속에 잠들었지만 소원이가 남겨두고 간 이 바람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산불로 인해 다쳤던 소, 도살을 기다렸던 소, 그러나 결국엔 존엄한 생명으로서 눈을 감겨줄 수 있었던 소원이의 명복을 빈다.

글 김나연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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