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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눈에 안 보이는 울타리, 동물들은 행복할까?

등록 2022-04-29 04:59수정 2022-05-02 09:43

[애니멀피플]
가상 울타리 만들어 스마트폰으로 가축 행동 유도
덴마크 논문 “노펜스, 동물복지적으로 문제 없어”
뉴질랜드 애그테크 스타트업이 개발한 ‘홀터’는 소나 양 등 가축에 지피에스 목걸이를 채워 스마트폰으로 이동을 유도할 수 있다. 홀터 제공
뉴질랜드 애그테크 스타트업이 개발한 ‘홀터’는 소나 양 등 가축에 지피에스 목걸이를 채워 스마트폰으로 이동을 유도할 수 있다. 홀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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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소를 방목해 키우는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육우 98%는 일생을 초지에서 지내고, 브라질에서는 이 비율이 90%에 이른다. 미국 육우의 80%는 방목으로 키워지다가 비육 기간(120~200일)에만 실내에서 사료를 먹는다. 사계절 푸른 영국과 아일랜드는 젖소 95% 이상이 초지에서 풀을 뜯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풀 뜯는 소들을 관리하는 목장주는 그러나 이미지만큼 한가하지 않다. 매년 울타리를 정비하고, 소가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목초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북돋워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상 울타리로 인한 장기적 행동 변화 없어”

노르웨이 애그테크(agtech·농업기술) 스타트업 ‘노펜스’는 세계 최초로 가상 울타리 솔루션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농장주는 노펜스 앱에서 가축을 가둘 방목 지역을 설정하고, 가축에 건 지피에스(GPS) 목걸이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행동을 제어한다. 미리 설정해 둔 가상 울타리에 가축이 접근하면 경보음과 함께 전기자극을 보내, 가축이 원래 설정한 방목 지역으로 돌아가게 하는 식이다.

올보르대의 마그누스 에어저 등 덴마크 연구팀은 노펜스 앱을 이용해 소 여러 마리를 가상 울타리에서 관찰한 결과를 과학저널 <애니멀즈>에 25일 실었다.

연구팀은 덴마크 파노섬에 앵거스 품조의 소 12마리를 139일 동안 가상 울타리에 가두었다. 소가 가상 울타리에 가까이 가면 목걸이를 통해 전기자극과 경고음을 들었다. 실험 결과, 각각의 소는 11~26번의 전기자극(0.2J, 3㎸, 1초 동안 지속)과 92~302번의 경고음(80㏈, 1m 근처)을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람이 약간 통증을 느끼고 지하철 소음을 듣는 것과 비슷한 스트레스다.

노르웨이의 애그테크 스타트업이 개발한 ‘노펜스’의 개념도. 경고음과 전기자극을 주면서, 가축이 가상의 울타리에 적응하게 한다. 노펜스 제공
노르웨이의 애그테크 스타트업이 개발한 ‘노펜스’의 개념도. 경고음과 전기자극을 주면서, 가축이 가상의 울타리에 적응하게 한다. 노펜스 제공

연구팀은 “소 12마리가 동시에 가상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고, 한 번은 8마리가 공황 상태로 뛰쳐나간 사건 등이 있었”지만, 가상 울타리가 설치된 직후 발생한 것으로 소들이 점차 적응했다고 밝혔다. 가상 울타리를 더 넓게 조정하면, 소들은 새로운 초지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떼가 소란을 일으킨 것은 네 번이었다.

연구팀은 전기자극과 경고음 직후 소들이 놀랐지만 장기적인 행동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며, “전기 울타리 대조군과 비교하진 않았지만, 이것만 봤을 때 동물 복지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동물이 로봇이 된다고?

노르웨이 기업 노펜스는 이 제품이 동물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좁은 축사에 갇혀 있는 가축에게도 노펜스를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방목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 울타리를 설치하면 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방목 장소를 옮길 수도 있고, 울타리 설치가 어려운 숲이나 산악지대에서도 방목이 가능하다.

최근 주목받는 야생동물 방사와 재야생화(rewilding)에도 가상 울타리는 잠재력이 있다. 유럽에서는 초지와 숲에 초식동물을 풀어놓고 동식물의 자생적 활동을 통해 식생을 북돋게 한다. 그동안 전기 울타리는 야생동물의 이동을 막는 물리적 장벽이 됐기 때문에 재야생화의 걸림돌이 되어 왔다.

애그테크 스타트업 노펜스와 홀터는 ‘동물복지’를 지향한다. 최근 논문에서 장기적인 행동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좀 더 광범위한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펜스 제공
애그테크 스타트업 노펜스와 홀터는 ‘동물복지’를 지향한다. 최근 논문에서 장기적인 행동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좀 더 광범위한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펜스 제공

가축을 ‘원격 조종’하는 애그테크의 또 다른 기업은 뉴질랜드의 ‘홀터’(Halter)다. 홀터는 가상 울타리는 물론 원하는 방향으로 가축을 몰 수 있는 기능까지 제공한다. 물론 가축이 목걸이를 찬다고 해서 로봇처럼 움직이는 건 아니다. 교육과 적응 기간을 거쳐 가축의 이동을 유도할 수 있다.

노펜스는 2020년 말 노르웨이에서만 약 1만7000개의 노펜스 앱과 목걸이을 보급했다고 밝혔다. 홀터는 지난해 4월 290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화제가 됐다.

감금에서 해방이냐, 신체의 자유냐

“우리는 동물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습니다.”

홀터가 자사 홈페이지에 내놓은 비전이다. 최근에는 기존 숲을 벌목하지 않은 선에서 이뤄지는 ‘방목형 소 사육’이 기후변화 영향을 저감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어, 노펜스와 홀터의 기술혁신이 더욱 주목되는 상황이다.

노펜스와 홀터는 전통적인 인간-동물 관계를 바꿔놓는다. 동물을 스마트폰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제동물단체는 이러한 가축 유도 기술에 대해 아직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 감금 우리로부터의 해방 ’ 과 ‘ 인간의 조종으로 침해되는 신체의 자유 ’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해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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