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소냐 힐레마허 제공
거울 속 내 모습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 같지만, 그렇게 간단치 않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거울 실험’은 동물이 자기 인식 능력을 갖췄는지 알아보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 왔다. 지금까지 침팬지 보노보 등 유인원, 코끼리, 돌고래, 까치,
아델리펭귄 등 일부의 동물만 거울 속 자신을 알아봤다.
이제 그동안 지능 낮은 동물이란 오랜 편견을 받아온 닭도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최근 독일 본 대학 소냐 힐레마허 박사와 연구진이 수탉을 대상으로 거울 자기 인식 실험을 실시한 결과, 수탉도 다른 동료와 자신을 구별하며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진은 “수탉은 하늘에 매나 다른 포식자가 나타나면 동료에게 이를 알리는 울음소리를 낸다. 이런 습성을 이용해 실험했더니 수탉은 다른 닭과 있을 때는 경고음을 냈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는 25일(현지시각)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두 가지 버전으로 실행했다. 첫째는 전통적인 거울 자기 인식 실험으로, 닭의 몸에 분홍색 가루로 표시하고 닭이 거울을 통해 표식을 알아보는지 살피는 ‘마크 테스트’였다. 두 번째는 수탉을 다른 닭과 함께 혹은 홀로 실험 공간에 두고, 칸막이에 거울을 추가하여 행동을 살피는 ‘청중 테스트’를 진행했다.
연구자들이 실험을 다른 버전으로 진행한 이유는 기존의 거울 자기 인식 실험이 동물의 습성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거울 자기 인식 실험은 1970년대 심리학자 고든 갤럽에 의해 개발된 이후, 동물의 자의식 여부를 알아보는 가장 권위 있는 실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10년간은 실험 결과가 가변적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수탉의 자기 인식 여부를 실험하기 위해 4가지 조건(A, B, C, D)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왼쪽)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주변에 알리는 수탉의 습성을 이용해 동료와 거울 속 자신을 구분하는지를 알아봤다. 오른쪽은 각 조건에서 수탉이 경고음을 낸 횟수. 소냐 힐레마허 제공
두가지 방식의 실험을 진행한 것에 대해 소냐 힐레마허 박사는 “동물이 표식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표식을 알아보려는 자연스러운 동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동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행동으로 실험하면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과학저널 뉴사이언티스트에 밝혔다.
실험 결과, 수탉들은 고전적인 거울 실험에는 통과하지 못했다. 수탉들은 침팬지와 달리 가슴에 찍힌 분홍 점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만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친숙한 상황을 도입한 ‘청중 테스트’에서는 거울 속 모습을 자신으로 인식했다.
청중 테스트를 위해 연구진은 실험실 가운데를 철망으로 나눈 뒤 각각 △홀로 있는 경우 △칸막이에 거울이 있는 경우 △옆 칸에 동료 수탉이 있는 경우 △거울도 있고, 동료도 다른 수탉도 있는 경우 네 가지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각 조건에서 포식자의 위협을 모방하기 위해 공중에 매의 그림자를 투사했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주변에 알리는 본능을 이용해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동료인지 구별하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수탉 68마리는 각각 한 마리씩 실험 공간에 투입됐고, 실험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한 마리당 약 60분간의 적응 시간이 주어졌다.
수탉들은 다른 닭이 옆 칸에 있을 때는 위험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냈지만 혼자 있거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는 적게 울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결과, 수탉들은 다른 닭이 옆 칸에 있을 때는 위험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냈지만 혼자 있거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는 훨씬 더 적게 울었다. 혼자 있을 때와 거울이 있을 때의 울음 횟수는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 다른 수탉이 있지만 거울로 시야를 가렸을 때도 닭들은 울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이 수탉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수탉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며, 닭이 청각이나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서로를 감지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일본 오사카공립대학 생물학자 고다 마사노리 박사는 “이 연구는 닭의 자기 인식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보여준다. 닭 울음소리처럼 동물의 생태학적인 행동을 자기 인식 연구에 더 활발히 활용한다면 앞으로는 더 정확한 실험이 가능할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인용 논문:
Plos One, DOI:10.1371/journal.pone.0291416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