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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살처분 매몰지 찾아 2년…죽음을 삼킨 땅에게 묻다

등록 2019-03-30 10:00수정 2019-03-31 14:08

[애니멀피플]
AI·구제역 매몰지 100곳 사진으로 기록한 문선희 작가
시커먼 땅에 동물의 앙상한 뼈만 남았다. 콩밭이 된 이 땅엔 죽은 돼지들의 뼈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시커먼 땅에 동물의 앙상한 뼈만 남았다. 콩밭이 된 이 땅엔 죽은 돼지들의 뼈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살처분, 기묘한 단어였다. 의미가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엄중한 행정절차라는 뉘앙스만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 우주를 탐사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시대에 우리가 전염병에 대처하는 수준이 고작 멀쩡한 동물까지 몽땅 파묻는 것이라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묻다’ 57쪽)

착잡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보던 작가는 3년 후인 2013년 전국 4799곳의 매몰지가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을까?” 걱정스러운 생각에 집에서 가까운 매몰지를 한 번 들러본다는 것이 ‘제의’의 시작이 되었다.

“물컹한 땅 위에 올라서니, 그 미안함이 피부로 와 닿았어요.” 지난 3월27일 서울역 인근에서 ‘애니멀피플’과 만난 문선희 작가가 6년 전 그날을 되돌아봤다.

“그 땅 위에 올라서면 눈물이 뚝뚝 나요. 아래 있는 동물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뭐든 하고 싶었어요.”

그 길로 문 작가는 2014~2015년 100곳의 살처분 동물 매몰지를 돌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사진전을 열고, 책을 쓰고, 그 책과 사진을 들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작업들까지. 모두 파묻힌 생명을 향한 일련의 제의 활동이었다.

죽음을 토해내는 땅. 문 작가는 살처분 매몰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찍었다”고 말했다.
죽음을 토해내는 땅. 문 작가는 살처분 매몰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찍었다”고 말했다.
6년째 이어지는 제의가 되었어요.

“처음 작업할 때만 해도 (살처분이) 이렇게 해마다 반복될 줄 몰랐어요. 2014년 봄 작업을 시작하고, 이듬해 여름에 발표하면 끝일 줄 알았거든요. 전시를 보신 분들이 초대를 거듭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어요. 저는 전시를 하면서 두려웠던 게, 사람들이 싫어할 줄 알았어요. 이 사진들이 얼핏 봐선 매몰지인지 알 수 없잖아요. 풀이고 땅이긴 한데, 좀 이상해 보이는 땅, 그런데 사실은 끔찍한 현장인 거니까. 속았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미안해하고, 눈물을 흘렸어요.”

100곳은 어떻게 선정한 건가요?

“무작위로 선정했어요. 매몰지가 1만 곳이 넘어요. 수치로만 보면 감이 없잖아요. 지도를 펼쳐서 빨간색 점을 찍어보면 수도권은 그냥 피바다예요.”

_______
텅 빈 땅에서 오리 냄새가 났다

직접 눈으로, 코로, 귀로 확인한 매몰지는 어땠나요?

“처음 매몰지에 도착했을 때, 잘못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텅 빈 비닐하우스에서 오리 냄새가 나는 거예요. 3년이 지났다는데, 오리도 없는 곳에서 오리 냄새가 너무 많이 나니까 착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어서 본 다른 땅들은, 어떤 곳은 땅이 부풀었는지 덮인 비닐을 돌로 눌러놓았어요. 어떤 곳은 환삼덩굴이 다 덮고 있어서 아예 보이지 않았어요. 땅을 덮은 비닐 아래에 하얗게 변해서 죽은 풀이 있기도 했어요. 싱크홀처럼 푹 꺼진 곳도 있었고요. 농사를 시작한 곳은 하나같이 농사가 안됐고, 흙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죠.”

회복된 땅도 있었나요?

“회복이라기보다는, 주차장 등으로 용도를 바꿔 버린 땅이 있었고요. 인상적이었던 곳은, 주민들이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땅이 있었어요. 제가 찾은 대부분의 매몰지는 습하고 어둡거나 물이 지나가는 곳 같은 피폐한 자리가 많았는데, 무덤을 쓸 때처럼 양지바른 곳에 매몰지를 마련한 동네가 있었죠. 그 위에 풀만 자라 있었는데, 그 정도가 그나마 나은 곳이었어요.”

매몰지를 클로즈업해 촬영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 작업에서 중요한 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한편으로는 보시는 분들이 뭔지 모르고 보게 하고 싶어서, 미학적으로 찍었어요. 욕을 많이 먹을 각오로, 가장 아픈 부위를 가장 미학적인 구도에서 찍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보고 기억하게 하는 장치가 되었으면 해서…. 저는 이게 제의라고 생각했어요.”

문선희 작가.
문선희 작가.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사람들이 화를 낼 줄 알았거든요. ‘낚였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응은 ‘어떻게 됐는지 너무 걱정스러웠는데,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힘들었을 텐데 직접 찾아가 알려줘서 고맙다’였어요. 저는 이 반응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세상이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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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죽음에 내 책임도

작업을 하며, ‘공범’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고요.

“제가 이 사건의 목격자나 증언자가 아니라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동의한 적은 없지만 값싼 고기를 먹었던 저도, 이들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거죠. 사진을 찍고 돌아가면 동물들이 제 뒤를 쫓는 것만 같았어요.”

책값의 6%를 전북 익산에 있는 참사랑동물복지농장에 기부한다고 했어요. 이 농장은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한 첫 번째 농장이기도 하죠. 어떤 인연이 있나요?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참사랑농장이 살처분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외로운 선택이었을지 공감했어요.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책과 사진을 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네루다의 시 중에 ‘아무리 꽃을 꺾어도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는 구절이 있어요. 예전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됐어요. 도대체 언제, 무슨 봄이 온단 말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봄이라는 게 손에 잡히지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면 언젠가 오는 것 같아요. 이 문제에서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던 분들은 이미 봄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뿐 아니라 이 사태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 축산업자, 공무원 등이 봄이 오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주면 좋겠어요. 저는 이 작업의 사진전을 다시 열지 않는 날을 꿈꾸면서 전시를 했거든요. 어서 빨리 그런 시간이 오면 좋겠어요.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대’라고 말하는 시간. 그리고 이 책이 쓸모없는 책이 되어버리는 그런 시간요.”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책공장더불어·문선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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