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과 채소가 넘쳐나는 강하라-심채윤씨 부부의 식탁. 부부는 비건을 실천하자 먹고, 입고, 쓰고,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대신 그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남에게 강요하거나 무턱대고 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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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리를 멈추다-어느 채식부부의 고백’의 저자 강하라, 심채윤씨 부부는 매일 아침 제철 과일을 듬뿍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제철 과일을 구하기 어려워진 요즘은 사과와 감, 귤이 자주 식탁에 오른다. 아침 기온이 떨어진 뒤로는 따뜻한 음식도 곁들이기 시작했다.
11월20일 만난 강하라씨에게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어제 쪄둔 고구마에 콩물을 넣고 갈아 만든 따뜻한 고구마 스프, 사과와 감을 먹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어떤 날에는 오트밀을 끓여 견과류와 함께 먹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사과, 포도, 그리고 옥상 텃밭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한 토마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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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식탁을 치우고 변한 것
지난 10월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이들 부부를 처음 만났다. 강하라씨 가족의 과일 아침 식사는 3년 전부터 시작됐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면서 식생활을 바꾼 것이 비건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한때 이들 부부는 지금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부부는 “요리와 음식의 정점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강하라씨는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학교 경험을 비롯해 5개의 요리 관련 자격증을 땄다. 미슐랭 식당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이를 재현하는 수업을 할 정도로 요리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반려견과 산책 중인 강하라(오른쪽) 심채윤씨 부부.
그들은 화려한 식당에 걸맞는 옷을 차려 입고 성대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풍족하게 누리는 시간에 한껏 고취되어, 삶이 마치 알록달록한 풍선이 되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매일이 성찬인 나날이 이어졌지만, 더부룩한 몸만큼 마음도 그랬다. 가끔 먹어야 좋을 화려한 음식을 끼니마다 먹으니 건강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매일 피곤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던” 부부는 식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아침 식사부터 바꿨다. 제철 과일을 깨끗하게 씻어 양껏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가뿐하게 시작하자 다음 끼니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강하라씨는 “이렇게 유연하게 시작하면 점점 본인의 입맛이 바뀌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피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죠. 해산물을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나중에는 계란과 유제품도 생명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모든 육식을) 스스로 제어하게 되죠.”
강하라씨의 채식 요리. 다시마와 자투리 채소를 넣어 만든 육수에 토마토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끓인 토마토 국수는 별미다. 토마토는 의외로 젓갈이나 고깃국물에 버금가는 감칠맛을 낸다. 강하라·심채윤 제공
삶에 비거니즘이 개입하자 아침, 점심, 저녁의 식단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음식에 대한 생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먹고, 입고, 쓰는, 일상의 모든 행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와 백화점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핑크색 고깃덩이가 살아 있는 소와 돼지였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연결지어졌다. 사람들이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먹게 된 만큼 농장 동물을 잔혹하게 대하는 일도 가속화해 온 것을 알게 됐다. 그 많은 축산 농가에서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지구의 숨통을 조인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동물의 고통을 직시하니 그동안 함부로 쓰고 버리던 일회용품, 윤기 자르르 흐르던 가죽 제품 따위도 그냥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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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데, 권하지 않는 이유
이제 강하라, 심채윤씨 부부에게 비거니즘은 다른 생명에 최소한의 피해를 주며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생활도 ‘미니멀리즘’으로 바뀌었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옮기고, 생활용품도 간소화했다. 남들 보기 좋았던 스포츠카를 없애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진귀한 식재료를 사는 대신 텃밭을 일구고, 가까운 땅에서 난 제철 토종 채소와 과일을 먹으려고 애쓴다.
“비거니즘은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살아 보니 몸과 마음이 바뀌어요.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어려울 수도 있어요. 기존의 살아오던 방식을 되돌아보고, 인식을 바꿔야 하니까요.”
애호박 속을 파내고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든 호박보트는 연말 모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강하라·심채윤 제공
강하라씨 부부는 비건을 실천하자 먹고, 입고, 쓰고,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대신 그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남에게 강요하거나 무턱대고 권하지는 않는다. 다른 비건들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조언한다.
“비건이 되고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 ‘당신도 해야 해’, ‘엄격하게 지켜야 해’라는 것이거든요. 강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장벽이 생겨요. 채식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될 수 밖에 없죠.”
두 사람에 따르면 특히 한국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한다. “동물권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여요. ‘나는 여태껏 고기를 먹어왔으니 나쁜 놈이고, 너는 착한 사람이냐?’ 그런 반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거부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부부는 채식에 대한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바꾸기 위해 ‘저탄소식’이라는 말을 쓴다. “‘고기를 먹으면 안돼, 살생이야’ 이런 말보다는 공장식 축산이 문제라는 걸 짚어야 해요.”
채소를 구우면 깊은 단맛이 난다. 이렇게 가지런히 담아 내놓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식탁을 차릴 수 있다. 강하라·심채윤 제공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많다고 보고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960년~2011년까지 50년동안 전세계에서 전환된 토지의 65%가 축산업을 위한 개간이었다고 밝혔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숲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싼 값에 대량 생산된 고기가 우리 입에 들어온다는 건 (지구 파괴의) 화살이 되돌아오는 것과 같거든요.” 육식 이데올로기는 비단 동물권을 넘어 나, 우리, 지구 모두와 연결된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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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비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라
인터뷰가 끝날 무렵, 강하라씨가 우리에게 물었다. “비건이 소수인데도, 왜 다들 악착 같이 계속하는 걸까요?” 머뭇거리는 우리를 향해 심채윤씨가 답했다.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삶의 만족도가 극적으로 달라지거든요. 음식 골라 먹기 힘들고 갈 수 있는 곳도 적어지는데 어떻게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실제로 너무 마음이 편안해요.”
그래서 부부는 자신들처럼 ‘행복한 비건’을 보면서, 조금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라고 조언한다. “당장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거니즘을 실천하라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고기를 일주일에 다섯 번 먹다가 세 번 먹는 식으로 줄여보는 거죠.”
그들은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방법 중 하나”라고도 말했다. “그동안 매스미디어의 덫에 걸려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잖아요. 촘촘히 짜여진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비건을 실천하며 살기 한 달 전 즈음에 두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인터뷰를 정리하며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다. 비건 지향의 생활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비건에 대해 ‘하면 안돼’가 많은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무언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는 것이 비거니즘이었다. 그것도 비인간동물과 지구에 최소한의 피해를 끼치면서.
한달 전만 해도 우리는 “난 그래도 생선은 포기 못해” “가족들에게는 말하기 곤란해” “기획 주무자인 너라도 실천해봐”라며 미루거나 떠넘겼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서서히 녹아들고 있다.
먹는 것에서 출발해 요즘은 입는 것, 쓰는 것에도 관심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우리를 걱정하며 “너네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힘들어보인다. 고기 좀 먹어라”고 말하지만, 앞으로 우리 팀의 행복한 항해는 지속될 것 같다.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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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신소윤 김지숙 기자 yoon@hani.co.kr
#5회는 나라 밖 채식 문화의 변화를 영국 런던에서 경험한 체험담과 함께 전해드립니다.
분명 참치회 같았는데, 비건식이라고?_신소윤의 비건일기
비건 기획 이후 즐거운 채식 식당 탐방이 시작됐다. 왼쪽부터‘부토’의 비트 사시미, ‘베이스이즈나이스’의 옥수수밥과 우엉·참나물국, ‘소식’의 버섯 요리.
식사를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편하게 허기를 때우고 최소한의 영향소만 섭취하면 된다는 쪽과 한 끼라도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화가 나는 쪽. 나는 후자다. 비건을 시작하며 들었던 걱정 중 하나는 갈 수 있는 식당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거니즘은 식탐이 있는 자에게도 열린 세계였다. 아니, 새로운 세계였달까. 그동안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건이 식도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비건은 사실 엄청난 음식 애호가야!” 비건 레스토랑 ‘소식’을 운영하는 안백린 셰프의 책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에 쓴 말인데, 나는 여기에 마음 깊이 공감한다.
기획을 시작한 이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일터와 가까운 마포, 이태원 등지의 비건 레스토랑을 두루 섭렵했다. 일반 식당에서는 주인공 취급을 받지 못했던 재료들인 우엉, 연근, 당근, 참나물 따위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획 초반이었던 10월21일 이태원의 ‘부토’라는 식당에서 신선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 이 식당의 핵심 메뉴가 ‘베지테리언 사시미’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비트를 참치회처럼 요리했다는 메뉴를 시켰다. 김, 와사비, 아보카도, 그리고 참치 뱃살인지 비트인지 구분하기 힘든 붉은 조각들이 나왔다. 참치회를 먹듯, 김 위에 비트를 한 조각 얹고 간장에 찍어먹었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동안 우리는 속아왔던 거야?” 익숙했던 참치회 맛의 8할이 김과 와사비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비트를 씹으며 분개했다. 물론 참치 본연의 감칠맛이 거기에 다 녹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은 2할을, 깊은 바다에 사는 그 크고 멋진 물고기를, 수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잔혹하게 사냥해서 채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29일 점심, 회사 동료와 함께 한 식사에서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뜰 일이 생겼다. 마포역 인근의 채식 식당 ‘베이스이즈나이스’에서 내어준 맑은 국 한 그릇 때문이었다. 식당 주인은 “우엉을 우려낸 국물에 참나물로 향을 더한 국”이라고 설명했다. 별 생각 없이 국물을 한 입 떠 넣은 우리는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우엉을 우려내 이 맛이 난다고요?!”
그리고 11월13일, 해방촌 ‘소식’에서 취재원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어릴 적 탐독했던 <미스터 초밥왕>에서 최고의 맛을 본 심사위원들이 머릿 속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게 이런 기분이었을까. 작두콩, 호랑이콩, 능이버섯, 배추, 당근, 연근 같은 채소들이 이토록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니! 진짜 버터보다 고소한 견과류로 만든 비건 버터는 어떤가. 죄책감이 들 정도로 감칠맛이 느껴지는 대체육 요리는 또 뭐란 말인가.
비건 가운데 자연에 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연식물식, 생채식 등을 하기도 한다. 제철 재료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섭취하는 방식이다. 나의 비건 미식 기행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땅에서 난 재료만으로 이렇게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 ‘아무튼 비건’을 쓴 김한민 작가는 비건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여러 부류에 대해 썼다. 그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있다. “논리는 알겠는데, 어쨌든 육식이 맛있어서 못 관둬.” 나도 이쪽에 가까웠다.
동물뉴스팀에서 일하며, 그리고 비건 기획을 하며 덩어리 고기를 만지거나 생선 머리를 치는 일은 마음 깊이 꺼려졌다. 하지만 불판 위에서 고소하게 익어가는 고기 앞에서는 그 감각을 잊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기를 대신할,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알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