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 감독의 비건 오픈 샌드위치. 맨 위에 올라간 쑥갓은 ‘셰프의 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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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11월21일. 계절이 겨울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려가던 터라 해가 매일같이 짧아지고 있었다. 점심쯤 시작한 황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치니 하늘은 온통 컴컴했다.
일을 마쳤단 생각이 들어서인지 갑작스레 허기가 졌다. 당시 비건 지향 한달 차, 비건 ‘쪼렙’(초보 레벨)인 나는 배가 무척 자주 고팠다. 고기보다 소화가 잘되는 채소와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데 뱃고래는 늘지 않아서인지 금세 허기가 졌다.
“서울 도착하면 한밤중일 텐데 저녁 먹고 가세요.” 황윤 감독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다. 괜찮다, 아니다 실랑이도 없이 홀린 듯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비건 버거 어때요? 쌀가스를 얹어서…. 저도 쌀가스 버거는 처음 해보는데, 맛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황 감독이 냉장고에서 채소, 빵, 캐슈너트 따위를 주섬주섬 꺼냈다.
처음 하는 요리라길래 나도 옆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보조 역할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좀 도울...” 황 감독이 손을 휘저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곧이곧대로 멀뚱히 앉아 있다 황 감독의 아들 도영이가 반려견 해리를 산책시키러 나간다길래 냉큼 따라나섰다. “한 15분만 산책하고 오세요.” 채소가 품 안에 가득한데 15분 만에 요리가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니 황 감독이 눈치를 챈 듯 얘기했다. “후다닥하는 게 일상이어서요.”
산책을 나서기 전 흘끔 본 황 감독은 마치 주방을 장악한 셰프 같았다. 믹서기에 오일과 소금, 캐슈너트를 넣고 후루룩 갈아 샐러드드레싱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채소를 다듬고, 쌀가스를 튀기고 빵을 굽는 일을 동시에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장작불 난로에 올려 데운 두툼한 바게트 위에 샐러드와 쌀가스, 케일, 쑥갓, 비건 치즈, 구운 버섯과 양파 등을 얹고 캐슈너트 소스를 뿌렸다. 빵을 버거처럼 겹치려니 너무 두꺼워서 우리는 오픈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야무지게 베어먹었다. 아삭거리는 채소와 쌀가스의 바삭하고 쫄깃함, 캐슈너트 소스의 고소함과 샐러드의 새콤한 맛까지… 식감이며 맛 모두 풍성하고 조화로웠다.
체면 차릴 틈 없이 부지런히 빵을 깔고 채소와 소스를 얹어 먹었다. 허기가 채워지고 식탐이 잦아들었을 무렵 ‘아, 이 채소는 뭐지? 뭔가 익숙하긴 한데 왜 이렇게 미묘하고 특별한 맛을 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쑥갓이었다. 매운탕에나 들어가는 줄 알았던 쑥갓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캐슈너트 소스를 만나자 한층 고급스러운 맛을 냈다. 루콜라나 바질 같은, 알량하게 포장해 비싸게 파는 허브만큼이나 이날 메뉴에 매우 잘 어울렸다. 그날은 내가 태어나 생쑥갓을 가장 많이 먹은 날이었던 것 같다.
황 감독의 허락을 얻어 이날 풍성했던 식사의 레시피를 아래에 싣는다.
yoon@hani.co.kr
황윤 감독이 비건 메뉴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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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쌀가스 오픈 샌드위치 레시피
① 냉장고 사정에 따라 샐러드용 채소를 씻어 준비한다. 이날 황윤 감독이 쓴 채소는 케일, 상추, 그리고 ‘셰프의 킥’이었던 쑥갓.
② 두유, 캐슈넛, 올리브오일, 소금, 레몬즙, 마스코바도 설탕을 갈아 소스를 만든다(캐슈넛 대신 다른 견과류도 상관 없음).
③ 버섯, 피망을 썰어 소금을 넣고 볶는다. 버섯은 충분히 익히고 피망은 식감이 살아있도록 살짝 익힌다.
④ 양파는 얇게 썰어 놓는다.
⑤ 쌀가스나 콩가스를 굽는다.
⑥ 우리통밀 빵을 두툼하게 썰어 토스트기에 굽는다. 이때 비건 치즈를 얹어 함께 굽는다. (비건 치즈가 없다면 생략)
⑦ 구워진 빵 위에 준비한 생 채소와 구운 채소, 쌀가스, 소스 등을 얹어서 먹기! (취향에 따라 사과를 얇게 썰어 얹거나 토마토를 살짝 구워 올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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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채소 들깨 드레싱 샐러드 레시피
① 각종 쌈채소를 씻고 썰어 준비한다.
② 생들기름 또는 생협에서 파는 현미유 등 식물성 기름, 간장, 채소 효소(없으면 배즙), 레몬즙(없으면 식초) 등을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이날 황윤 감독이 쓴 채소 효소는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에게 직접 구매한 케일 발효액).
③ 썰어놓은 야채에 ②의 드레싱을 섞어 버무린다.
④ 취향에 따라 과일, 견과류 등을 추가해도 된다.
⑤ 들깨가루를 뿌려 마무리하고, 생협 등에서 파는 잡곡 튀밥을 얹으면 바삭한 식감이 한층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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