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꿀물 한입에 주사 맞고·마시멜로에 약 꿀꺽…사육곰은 훈련 중

등록 2021-10-07 13:49수정 2021-10-07 22:12

[애니멀피플] 생크추어리 이주할 화천 사육곰 13마리
동물단체 건립 예정인 생크추어리 입주 위해 채혈·이동 훈련
전례없는 ‘곰 트레이닝’…달달한 간식으로 3일 만에 성공
지난 3일 강원도 화천군 곰 사육농장에서 U1이 먹이를 먹고 훈련을 받고 있다. 화천 농장의 13마리 곰들은 동물단체가 구조해 내년 건립 예정인 생크추어리 입주가 정해졌다.
지난 3일 강원도 화천군 곰 사육농장에서 U1이 먹이를 먹고 훈련을 받고 있다. 화천 농장의 13마리 곰들은 동물단체가 구조해 내년 건립 예정인 생크추어리 입주가 정해졌다.

▶▶ 애피레터 무료 구독하기 https://bit.ly/36buVC3
▶▶ 애니멀피플 카카오뷰 구독하기(모바일용) https://bit.ly/3Ae7Mfn

온몸이 새카맣지만 가슴에 흰 반달 무늬를 지닌 곰, 지리산 반달곰과 같은 종이지만 철창에 갇힌 멸종위기종, 가끔은 농장을 탈출해 사살되고야 마는 생명, 한때는 웅담채취를 위해 산 채로 쓸개즙을 착취 당했던 동물. 우리가 아는 사육곰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올해 3월 환경부에 따르면 이렇게 지내고 있는 국내 사육곰은 총 398마리다. 조금 다른 길이 열린 사육곰들도 있다. 국내 최초로 곰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호소) 건립을 발표한 동물단체들이 구조한 곰 13마리다. 지난 40여 년간 그들이 처한 환경이 먼저 부각된 탓에 우리는 곰들을 제대로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실제로 사육곰은 어떤 동물일까.

_______
25년 콘크리트 생활에 하얗게 까진 발

10월3일 개천절, 강원도 화천의 한 곰 사육농장으로 이들을 만나러 갔다. 이곳에 사는 13마리의 곰들은 지난 7월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사육을 포기한 농장주로부터 구조한 개체들이다. 두 단체는 내년 4월 생크추어리 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매주 주말 곰들을 찾아가 보살피고 있다.

동물단체 카라,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매주 주말 농장을 찾아 곰들을 보살피고 있다.
동물단체 카라,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매주 주말 농장을 찾아 곰들을 보살피고 있다.

이날 오전에도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1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활동가들은 급여 준비로 분주했다. 화천으로 오는 길에 공수한 과일과 각종 야채, 사료들이 저울 앞에 차례로 놓였다. 토마토, 사과, 멜론, 고구마, 밤 등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차례로 양동이에 나뉘어졌다. 흠집이 있는 이들 과일들은 백화점에 납품하는 한 업체로부터 기부 받았다.  

곰들은 완만한 구릉 위에 지어진 사육장에 위 아래로 나뉘어 있었다. ‘농장주가 새끼 때부터 키워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던 곰들의 나이는 도축 연한(10살)이 한참 지난 17~25살 가량이었다. 반달가슴곰의 평균 수명이 20~25년 인 것을 고려하면 노년의 곰들이었다. 한 칸이 7평 남짓한 사육장도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듯 바닥 곳곳이 파이고, 녹슬어 있었다.

이날 활동가들은 3개조로 나뉘어 각각 청소·급여, 개체 관찰, 훈련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날 활동가들은 3개조로 나뉘어 각각 청소·급여, 개체 관찰, 훈련 등의 활동을 벌였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는 탓에 발 건강이 좋지 않은 곰들이 있었다. 곰 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는 탓에 발 건강이 좋지 않은 곰들이 있었다. 곰 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콘크리트 바닥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관절이나 발 건강이 좋지 않은 곰들이 많아요.” L4의 건강을 체크하던 이형관 수의사가 설명했다. 곰들은 사육장의 위치에 따라 아래 줄(Lower)은 L 1~7, 윗줄(Upper)은 U1~5로 불렸다. 그의 말처럼 몇몇 곰들은 발바닥이 하얗게 까져있거나 뒷다리를 끄는 것이 눈에 띄었다.

_______
사육장에 까나리 액젓을 뿌린 이유

배식 준비가 끝나자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가 이날 할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총 3개조로 나뉘었다. 청소·급여조, 개체 관찰조, 훈련조 등이었다. 먼저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곰들이 내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곰들은 활동가들이 오자마자 넣어준 땅콩을 까먹는 데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행동풍부화의 재료로 까나리 액젓이 등장했다. 활동가들은 청소 뒤 액젓을 사육장의 바닥이나 철창에 액젓을 뿌렸다.
행동풍부화의 재료로 까나리 액젓이 등장했다. 활동가들은 청소 뒤 액젓을 사육장의 바닥이나 철창에 액젓을 뿌렸다.

동물 트레이너인 이순영 활동가가 밤을 내실 안 쪽으로 던졌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곰들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곰이 자리를 옮긴 순간, 내실의 문이 닫히고 빗자루와 물청소 호스를 든 5~6명의 활동가들이 재빠르게 청소를 시작했다.

깨끗해진 바닥에 신선한 먹이가 놓였다. 색다른 재료도 더해졌다. 바로 까나리 액젓이었다. “액젓 뿐 아니라 커피, 계피, 후추, 식초 등 여러 냄새를 곰 우리 안에 뿌려주고 있어요.” 최 대표는 이것이 사육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지루할 곰들을 위한 행동풍부화라고 말했다. 그는 “커피를 넣어준 날은 곰이 향기를 몸에 묻히려는 듯 철창에 온몸을 비비는 모습도 관찰됐다”며 흐뭇해했다.

사과나 일부 먹이들은 찾아먹기 어렵게 창살에 끼워지거나 해먹 위로 던져졌다.
사과나 일부 먹이들은 찾아먹기 어렵게 창살에 끼워지거나 해먹 위로 던져졌다.

사과는 철창에 끼워지고, 먹이의 일부는 소방호스를 재활용해 만든 해먹 위로 던져졌다. 먹이를 찾아먹기 어렵게 해 급여의 단조로움을 줄인 것이다. 이날 행동풍부화의 재료로 추가된 것은 도토리였다. 이맘 때 야생의 곰들이 즐겨먹는 먹이였다.

뭉툭한 발을 지닌 곰들이 밤, 땅콩, 도토리를 잘 까먹을 수 있을까. 기우였다. 길쭉한 주둥이 속으로 사라진 견과류들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_______
사육곰도 꿀을 좋아했다, 아기곰 푸처럼…

새삼 놀라운 건 곰들이 꿀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벌통을 훔치려 말썽을 피우는 디즈니 만화 ‘아기곰 푸’처럼 말이다. 이순영 활동가는 개체 관찰조와 청소 급여조가 일을 끝낸 곰사 앞에서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분무기, 다른 손엔 지시봉을 쥐고 입에는 호루라기를 문 채였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며 방향을 지시하자 U1이 지시봉을 따라 발을 갖다댔다. 즉시 곰의 입으로 꿀물이 분사됐다.

생크추어리 입주를 앞두고 곰의 건강관리, 이동을 위해 훈련이 진행됐다. 꿀물을 급여하고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생크추어리 입주를 앞두고 곰의 건강관리, 이동을 위해 훈련이 진행됐다. 꿀물을 급여하고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수차례 방향이 바뀌었다. U1은 이제 별로 어렵지도 않다는 듯 이 활동가가 가리키는 방향을 찾아갔다. 봉을 짚고 나서는 분무되는 꿀물을 찾아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타기팅’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철창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개체들이잖아요. 생크추어리 입주하려면 이동이나 건강 관리가 수월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덜한 방식으로 곰들의 행동을 이끌어 내야 했어요.”

전례없는 ‘곰 트레이닝’을 시도하게 된 배경이다. 이 활동가는 기본적인 학습원리는 다른 동물과 같다고 했다. “곰이 좋아하는 것을 보상하고 특정 행동을 이끌어 내는 거죠. 다만 곰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르니 곰들이 뭘 더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 여러 방식으로 시도를 해야 했어요.” 가령 꿀도 한 가지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곰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향을 준비해 실험을 거쳐야 했다.

이순영 활동가는 “곰들이 아주 영리하다”면서 채혈, 이동을 위한 훈련은 3일 만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순영 활동가는 “곰들이 아주 영리하다”면서 채혈, 이동을 위한 훈련은 3일 만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곰들은 이제 채혈을 위해 철창 앞에 손을 고정하거나 이동 케이지에 수월히 드나들게 됐다. 실제로 이날 채혈 자리를 검사해야 했던 U3는 이 활동가가 사육장 앞으로 가 앉아 나무막대기를 앞에 놓자, 자연스레 다가와 왼발로 나무토막을 쥐고 꿀물을 받아먹었다. 그 사이 이형관 수의사가 U3의 앞발을 살폈다. 그사이 복약이 필요한 U6은 약을 숨긴 마시멜로를 즐기고 있었다.

_______
“곰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이순영 활동가는 사육곰들이 아주 영리한 동물이라고 했다. “곰들은 이 훈련을 3일 만에 해냈어요.” 이 활동가는 시민단체의 사례를 보고 공적 영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국내 동물원에서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지만 인력난, 현실적 여건 탓에 활발하지 못한 형편이다.

화천 곰들은 내년 경기도 고양시에 지어질 생크추어리 입주를 앞두고 있다. 카라·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화천 곰들은 내년 경기도 고양시에 지어질 생크추어리 입주를 앞두고 있다. 카라·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수의사, 훈련사, 동물단체 활동가로 구성된 이들은 공통적으로 곰을 돌보며 인간과의 상호작용, 환경풍부화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최태규 대표는 생크추어리 건립의 중요성으로 이런 지점을 꼽았다. “실제로 곰들을 보게 되면 시민들의 생각도 많이 바뀔 거예요. 철창 속 사육곰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들이 사육곰이 어떤 동물인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겁니다.”

이들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부지를 마련하고 내년 3월 첫 입주를 목표로 생크추어리 필요성을 알리는 펀딩, 주민 공청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글·사진 화천/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에헴” 지팡이 짚고 선 담비는 지금, 영역표시 중입니다 1.

“에헴” 지팡이 짚고 선 담비는 지금, 영역표시 중입니다

‘안락사 공지’ 명단에...그 이름이 있었다 2.

‘안락사 공지’ 명단에...그 이름이 있었다

학대 피해 여성들 위로한 말리, ‘올해의 고양이’ 되다 3.

학대 피해 여성들 위로한 말리, ‘올해의 고양이’ 되다

꼬마물떼새, 호랑지빠귀, 등포풀…‘이젠 우리도 서울 시민’ 4.

꼬마물떼새, 호랑지빠귀, 등포풀…‘이젠 우리도 서울 시민’

관심 끌겠다고 물 뿌리고 물건 던지고…태국 아기 하마 ‘인기가 괴로워’ 5.

관심 끌겠다고 물 뿌리고 물건 던지고…태국 아기 하마 ‘인기가 괴로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