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수원시 영통구에서 열린 ‘2022 로컬문화 콘텐츠 직거래 장터 수문장’ 행사에서 탐조책방 ‘수원 새산책’ 참가자들이 원천호수의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수원문화재단 제공
“지금 들리시죠. 피리 소리처럼 ‘삐로로로로로로~ 삐로로로로로~’. 이게 울새예요.”
‘서울의새’ 이진아 대표가 울새 울음소리를 듣더니 걸음을 멈췄다. 공원을 같이 걷던 6명의 일행도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소리를 쫓아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자 5~6m 앞 풀숲 사이로 자그마한 울새가 바닥에 앉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먼저 포착한 사람이 방향을 가리키자 참가자들이 각자 지참한 쌍안경과 카메라로 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5월11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에 시민탐조모임 ‘서울의새’ 회원들이 공원 내 야생 조류를 관찰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은 일종의 ‘번개 모임’으로 관찰 도구를 필참하지 않아도 되는 소리 탐조로 진행됐다. 소리 탐조는 말 그대로 새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해 조류를 관찰하는 것이다. “새를 동정(어떤 종류의 새인지 구분하는 것)하는 방법은 직접 관찰, 새소리 듣기, 둥지 모양 등 여러 가지입니다.” 2019년부터 모임에 나오고 있다는 직장인 오형준씨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5월11일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에서 ‘서울의새’ 탐조모임 참가자들이 새를 관찰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도심 공원에 무슨 새가 그리 있을까 싶었지만 참가자들은 서너 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멈춰섰다. 새소리가 나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쌍안경이나 카메라 렌즈로 모습을 확인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대포 렌즈’를 단 카메라를 든 대학생 이주혁씨도 쉬지 않고 카메라에 새를 담고 있었다. 홍콩에서 유학하다가 잠깐 귀국한 상태라는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새를 좋아했다. 새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따라다니다 보니 덩달아 탐조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탐조라고 흔히 값비싼 장비와 먼 섬여행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최근엔 도심공원이나 하천, 주변 산에서 새를 관찰하는 도시 탐조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진아 대표는 “저희 활동 목표는 우리 동네, 내 집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새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모임을 하면서 정말 많이 들은 얘기가 ‘서울에 새가 있어?’라는 말이다. 그러나 눈 여겨 보면 서울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새가 많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5월11일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에서 ‘서울의새’ 이진아 대표(가운데)가 탐조모임 참가자들에게 울새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서울의새’ 효창공원 소리탐조에 참가한 이주혁씨가 관찰 중이던 새를 촬영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그는 2019년 여름 대륙검은지빠귀의 서울 번식을 최초로 기록한 것과 24년 만에 중랑천을 다시 찾은 붉은부리흰죽지를 올해 3월 포착한 것을 ‘서울의새’ 활동의 성과로 꼽았다.
서울의 새는 2018년부터 매주 목요일 서울 올림픽공원, 창경궁, 여의샛강생태공원 등에서 야생조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과학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기적으로 같은 장소를 찾아 새의 종과 숫자 관찰하고 기록해 온라인 자연활동 플랫폼인 ‘네이처링’과 코넬대학에서 개발한 어플 ‘이버드’(eBird)에 기록한다. 이들이 꼼꼼히 수집한 자료는 매년 서울의새 소책자로 발행되며, 기후변화생물지표 조류 모니터링(K-BON) 등에도 활용된다.
서울의 새가 도심 야생조류의 생태환경 프로젝트라면 ‘탐조책방’은 탐조를 좀 더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경기상상캠퍼스 안에 있는 탐조책방은 국내 1호 탐조 전문 책방으로 수원 시내 탐조 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수원 새산책’ 프로그램에는 9개월간 3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수원 새산책은 광교산, 수원 화성, 일월저수지, 경기상상캠퍼스 안 등을 산책하며 새들을 관찰한다.
5월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진행된 ‘서울의새’ 정기 탐조모임에서 참가자 양수영씨가 대륙검은지빠귀를 촬영한 사진을 보이고 있다. 김지숙 기자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는 “최근 탐조에 매력을 느끼고 책방을 찾아오는 초보 탐조인들이 늘고 있다. 수원 새산책에 참가하시는 분들도 거의 입문자들이 오시는데 연령대가 10대부터 20~40대까지 다양하다. 40대는 주로 자녀들과 함께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 요인으로 유튜버 ‘새덕후’의 영향와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한 이동 제한 등을 꼽았다.
유튜브
‘새덕후’는 20대 탐조인 김어진씨가 운영하는 채널로 구독자 수가 34만명에 이르는 인기 채널이다. 주로 한국의 다양한 야생 조류와 탐조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유명 탐조지뿐 아니라 가까운 산이나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을 소개해 호응을 얻었다.
5월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진행된 서울의 새 정기모임에 참가한 대학생 박서연씨도 새덕후 채널의 팬이라고 했다. 탐조모임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박씨는 “탐조라고 하면 어딘가 멀리 나가야 할 걸로 생각했는데 새덕후는 우리가 집 주변의 산책로, 공원 혹은 주변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새를 알려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수원시 영통구에서 열린 ‘2022 로컬문화 콘텐츠 직거래 장터 수문장’ 행사에 참가한 탐조책방 박임자 대표가 서점 부스에 앉아있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국내 최초 탐조전문 생태관광업체 ‘에코버드투어’ 이병우 대표도 새로운 인구의 유입을 체감한다고 했다. 이병우 대표는 “5년 전과 비교하자면 초보 탐조인들이 20~30%는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에는 투어에 참가하는 2030대 참가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면 요즘은 예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층만 늘었다기 보다는 전체적인 초보 탐조인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탐조 트렌드’가 실제 탐조 인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입문자를 교육하고 탐조인들의 구심점이 될 조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국내 탐조 인구는 1000여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워낙 소수이다 보니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호회, 네트워크 등이 활동 중이지만
협회 차원의 조직은 결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탐조인들은 야생 조류보호와 서식지 보존을 위해서라도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