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사자가 갈비뼈를 드러낸 채 마른 모습이 공개돼 동물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학대방지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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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이 동물학대 논란 속에서 시민들의 폐쇄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동물원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사자,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난 양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해 비판을 받고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의심됐던 나이 든 사자 한 마리는 곧 공영동물원으로 이송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김해시청 누리집 ‘김해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을 보면, 부경동물원의 폐쇄와 동물보호를 요청하는 시민들의 게시글 30여 건이 올라왔다. 시민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동물원의 개선을 촉구하는 민원을 게시하고 있다.
시민들은 사자와 호랑이가 햇볕이 들지 않은 전시장에 갇힌 모습과 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여러 동물을 사진을 첨부하며 “부경동물원 사자의 삶은 누구 책임인가” “동물원이 명백한 동물학대를 하고 있다. 고통을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난 동물원의 양. 김해시청 게시판 갈무리
한 시민은 “양은 1년에 두 번 털깎기를 해줘야 하는데 얼마나 오래 방치된 건지 모르겠다. 60년대를 떠올릴 만큼 후진적 동물원이 김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시민은 “여러해 전부터 같은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없다. 아무리 사유 재산이라지만 동물은 생명인데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냐”면서 김해시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부경동물원의 동물 복지 문제는 2013년 개장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사자, 호랑이, 늑대, 하이에나 등의 동물을 햇빛이 완전히 차단된 실내 사육공간에 전시할 뿐 아니라 2014년에는
일본원숭이를 짧은 목줄에 묶여 먹이 체험 행사에 동원해 지탄을 받았다.
2020년 코로나 확산으로 관람객이 줄어들자 경영난을 사유로 시설 투자나 관리 인원을 줄여 상황은 더 열악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환경부의 ‘동물원 보유동물 서식환경 현황조사’에서도 조사 대상 88개 동물원 중 환경 조건이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실내외 사육장에 호랑이, 사자, 원숭이 등 30여 종 100여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 부경동물원은 경영난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동물들이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학대방지연합 제공
많은 문제 제기에도 개선은 왜 이뤄지지 않았을까. 김해시는 동물들의 서식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법령으로는 개선 조치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해시청 환경정책과 이정언 과장은 “기존 동물원 관련 법은 적당한 서식환경에 대한 기준이나 벌칙 조항이 없어 과태료나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매월 1회 수의사와 동행해 동물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고 큰 문제는 없었다”고 전했다. 김해시는 운영자에게 6월 중으로 동물원을 폐쇄하거나 이전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김해 부경동물원이 열악한 사육장과 부실한 먹이 급여 등으로 동물학대 논란을 받고 있다.부산학대방지연합 제공
그러나 동물단체는 김해시청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지난달 중순 김해시청과 함께 조사를 벌이려고 했으나 시청은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열악한 동물원에 방치된 동물들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없는 걸까. 지난해 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은 기존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종별 사육기준을 마련해 동물원의 환경을 개선하도록 했다. 종별 사육기준이나 방사장 규모는 추후 구체화될 예정인데 사자, 호랑이 등 맹수는 야외 방사장이 있는 동물원에서만 사육이 가능할 전망이다.
김해 부경동물원이 열악한 사육장과 부실한 먹이 급여 등으로 동물학대 논란을 받고 있다. 부산학대방지연합 제공
개정 법안이 12월부터 시행되지만 부경동물원의 사자가 당장 방사장으로 나갈 확률은 낮다. 기존 사업자에게는 방사장 부지 확보 등을 위해 5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개정법에서 새로 시행되는 전문 검사관 제도가 유예기간에는 사육 환경을 감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검사관 제도는 기존 시설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동물원에 방문해 사육, 건강 상태 등을 점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간 부경동물원의 열악한 동물복지가 개선되지 않은 원인으로 동물보호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동물원수족관법은 어디까지나 동물원 시설, 사육 기준을 정하는 법이다. 개별 동물의 복지와 건강은 동물보호법으로 보호해야 하는데 현행 법은 동물이 죽거나 상해를 입은 경우만 학대로 보고 있어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제라도 김해시청이 동물들의 고통을 살펴 긴급 격리조치나 동물학대 여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사자 한 마리는 청주동물원에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동물원은 최근 부경동물원에 사자의 이관을 요청했다. 청주동물원에 있는 늙은 사자와 합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주동물원 관계자는 14일 <애니멀피플>에 “동물원 운영자가 논란이 된 나이 든 사자의 이관 요청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왔다. 빠른 시일 내에 동물원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이송과 관련한 행정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청주동물원은 환경부 ‘생물자원보전시설 설치사업’ 지원을 받아 갈 곳 없는 동물들을 위한 야생동물 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논란이 됐던 사자는 청주동물원으로의 이관이 논의 중이다. 청주동물원 야생동물보호시설 모습. 청주동물원 제공
부경동물원 운영자는 김해와 대구에 동물원을 운영하는 전문업자로 앞서 대구 체험동물원에서 키우던 낙타가 병들어 죽자, 사체를 다른 동물의 먹이로 급여해 지난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돼 처벌받은 바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