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2021년까지 14년간 경찰기마대로 활동한 퇴역마. 서울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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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시민을 위해 봉사했던 경찰기마대 말들이 은퇴 뒤 승마장, 사슴농장으로 팔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이력 관리·보호 체계가 없는 가운데 매각된 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거나, 과거 아사 직전까지 말을 방치했던 농장주의 소유가 돼 있었다.
동물자유연대는 5일 서울경찰기마대가 최근 5년간 대원으로 활동했던 말 8마리를 퇴역 처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단체가 기마대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보면, 퇴역한 말 8마리 중 7마리는 각각 승마장, 사슴농장, 개인에게 매각됐다. 나머지 1마리는 질병으로 인해 안락사됐다. 퇴역 사유는 노쇠, 질병, 대인기피, 기력 저하, 악벽(몸을 흔들거나 뒷발을 차는 등의 나쁜 버릇) 등이었다.
경찰 홍보, 공원 순찰 등의 임무를 해온 경찰기마대에서 퇴역한 말들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퇴역한 말들은 주로 경주마로 이용되는 서러브레드(더러브렛)종으로 각각 5개월~14년 동안 임무를 수행했다. 서울경찰기마대는 1964년 창설돼 치안을 담당해왔으나 본래 역할이 축소되며 현재는 대내외 행사, 경찰 홍보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서울경찰청 홍보 영상을 보면, 경찰기마대의 주요 임무는 △국가 행사 지원 및 혼잡 경비 등 방범활동 △정상회의, 취임식 등 행사장 주변 안전활동 △한강공원, 서울숲 공원 등 계절별 순찰 △시민대상 승마 체험 등이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정부 기관과 시민 사회를 위해 일하던 동물이지만 퇴역 이후의 복지나 관리는 전무했다. 동물자유연대가 경찰기마대에서 매각된 말들의 처우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경기, 충남 일부 현장을 방문한 결과, 말들은 현재 행방이 묘연하거나 부적절한 사육환경에 놓여있었다.
동물자유연대 강재원 사회변화팀 활동가는 “놀랍게도 퇴역마 2마리는 지난해 9월 아사 직전에 구조된 말 2마리가 구조된 ‘충남 부여 폐축사 말 학대사건’ 소유주가 운영하는 농장으로 매각됐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했을 때 퇴역마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말 1마리를 매입한 다른 곳은 적절한 마사도 없어 말들이 비를 맞으며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충남 부여의 한 폐목장에서는 퇴역 경주마가 아사 직전에 구조됐다. 경찰기마대에서 활동했던 말 2마리는 당시 이곳에 말들을 방치했던 농장주가 운영하는 농장으로 매각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부여 말 학대사건은 지난해 한 폐축사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퇴역 경주마와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방치된 말 등 2마리가 발견되어 단체가 구조한 일을 말한다. 당시 현장에는 총 4마리의 말이 버려졌으나 2마리는 죽고, 2마리만 아사 직전에 구조됐다. 당시 농장주는 쓸모가 다한 말들을 데려와 약재나 반려동물 사료 등으로 활용하거나 체험용·승마용으로 되팔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가 구조한 말 ‘별밤’과 ‘도담이’는 이후 국내 유일 말 보호소인 ‘제주 곶자왈 말 구조보호센터’로 이동해 보호 받았으나, 외상이 심했던 도담이는 지난해 12월 건강 악화로 결국 사망했다.
단체는 “서울경찰청이 기관 홍보 등을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다가 마치 물건 폐기하듯 말을 매각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동물자유연대는 “기관에서 쓸모를 다했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물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기마대는 말들을 매각하면 끝이라는 태도를 거두고, 지금부터라도 마필 매각을 중단해야 한다. 또한 기관을 위해 헌신한 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서 활동이 어려워진 말들의 위한 복지체계 마련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경찰 홍보, 공원 순찰 등의 임무를 해온 경찰기마대에서 퇴역한 말들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경찰 유튜브 갈무리
경마, 기관 등에 이용되다 퇴역하는 말이 매각된 뒤 이력 관리·보호 방안이 부실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력 관리·보호에 대한 관련 법과 제도도 없다 보니 경찰 기마대도 말 매각 이후에는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바닥에 고꾸라진 뒤 사망한 말 ‘까미’가 과거 경주마였던 사실이 드러나며 퇴역 경주마를 위한 복지·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한국마사회가 말복지 증진 기본계획과 말복지 중장기 전략(2022~2026년) 등을 발표했지만, 말 복지 정책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유관기관 협력, 입법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마사회, 동물단체들이 지난해부터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제도 마련에 힘써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현재 경찰기마대를 운영하는 곳은 서울경찰청과 제주경찰청 두 곳으로, 서울경찰기마대에서는 10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