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사육 농장의 닭들은 좁은 케이지 안에서 평생을 살며 달걀을 생산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1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 39개국 40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산란계 케이지 프리(cage-free·밀집사육으로 생산되지 않은 축산품) 선언'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번 시위는 밀집사육 산란계의 해방을 촉구하는 국제 동물보호단체 ‘오픈윙얼라이언스’의 주도로 열렸고, 한국의 동물단체인 동물자유연대도 참여하면서 시위가 국내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케이지 프리 달걀이어야 하고, 수많은 식음료 기업 가운데 왜 스타벅스 앞이었을까요?
21일 체코 프라하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각국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케이지 프리 달걀 전환 선언’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알려졌다시피 좁은 케이지에서 밀집사육되는 닭들은 한 마리에 주어진 공간이 A4 용지 한 장 크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밀집사육 산란계의 문제는 지난해 8월 ‘살충제 달걀’ 문제가 터지며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기온이 오르는 계절이 되면 닭들을 괴롭히는 진드기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습도가 높아지면 더 합니다. 흙에 몸을 문지르며 진드기를 털어내야 하는데,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는 공간에서 불가능한 일이지요. 닭들은 항생제를 맞고, 온몸에 뿌려지는 진드기 퇴치제를 견디며 기계처럼 달걀을 생산합니다. 이런 달걀이 닭들은 물론이고 인간의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살충제 달걀 사태 이후로도 국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공장식 밀집사육 금지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지난해 가을 발의됐지만 폐기됐습니다.
미국의 경우 2015년을 기점으로 향후 10년 안에 케이지 프리 달걀로 전환하겠다 선언한 기업이 수백개에 달합니다.(축산물 케이지 프리를 선언한 글로벌 기업의 리스트는 다음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goo.gl/oeEmoL) 캘리포니아, 메사추세츠 등 주별로 밀집사육 산란계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를 가진 지역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2014년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를 겪으며 가금류 수출액이 곤두박질치면서 축산업계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여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식품 업체들도 변화가 불가피했습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스타벅스도 그런 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케이지 프리 달걀로 전환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전문기업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글로벌 기업입니다. 제대로 실행만 되면 밀집사육 되는 닭들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 크래프트하인즈, 서브웨이 등 거대 식품 회사들이 2025년까지 케이지 프리 전환을 선언한 것에 비하면 5년이나 앞당긴 것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동물단체들은 스타벅스 앞에 모였을까요?
흙밭에 방사된 ’케이지 프리’ 닭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1일 프라하 스타벅스 앞에서 함께 시위에 나선 장병진 동물자유연대 선임 간사는 “△전 세계 지점을 대상으로 케이지 프리 선언을 명확히 할 것 △생 달걀부터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가공식품까지 모든 계란 사용 제품이 케이지 프리에 해당하는 것인지 명확히 밝힐 것 △동물단체들의 꾸준한 대화 시도에 응답해줄 것” 등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음식을 사먹을 때, 케이지 프리 달걀으로 만든 제품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될까요?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 가운데는 밀집사육 산란계에게서 생산된 달걀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일상에서 익숙한 외식·식품 대기업은 아직 한 곳도 없습니다. 한편 스타벅스 코리아 관계자는 25일 “한국 지점의 경우도 포함되는지 미국 본사에 공식 문의한 결과, ‘케이지 프리 달걀 사용 100% 전환은 세계 77개국 스타벅스 직영점에 해당한다’고 전해왔다”고 알려왔습니다. 스타벅스는 프라하 시위 다음날 동물단체들에 만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