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동물보호소에서 지내는 한 개가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환경영화제 제공
흔들리는 자동차, 터널을 지나며 오락가락하는 불빛,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공간 속에서 동물들은 불안한 눈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동물들이 당도한 곳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빈 동물보호소. 그곳은 도시에서 사람과 살아가다 다치고, 학대당하고, 길을 잃고 헤매던 동물들이 오는 거대한 미아보호소다. 빈 보호소는 120명의 직원과 100명의 자원봉사자, 1400여 마리의 동물이 들고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보호소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의 플라비오 마르체티 감독을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만났다. 영화는 23일까지 열리는 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연출한 플라비오 마르체티 감독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첫 연출 데뷔작이라고 들었다. 첫 영화의 배경으로 동물보호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제작자로 일하고 있어서 이 영화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다. 동물은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나의 할아버지, 삼촌, 사촌은 도축업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앵무새, 고양이 등과 함께 살았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어떤 때는 깊은 공감으로 이어졌다. 6년 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기도 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한 마리 더 입양하고 싶어서 검색을 하다 보니 이 보호소가 나왔다. 160년 전 한 시인이 설립해, 현재는 동물권단체인 빈 동물보호협회가 운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전체에서 동물 관련 문제가 생기면 이 보호소에 도움을 요청한다. 헝가리나 체코에서 협조를 구해올 때도 있다. 이곳을 통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영화는 단 한 마디의 설명도, 자막도 없이 동물보호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기만 한다.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
“보호소의 상황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어떤 동물의 사연만 알려주려 해도 설명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관객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듯 모든 정보를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어떤 동물 문제가 있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유기동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다음 단계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방식에 대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예컨대 본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앵무새처럼 수명이 80년 가까이 되는 동물을 노인이 키우려고 한다면, 그 새가 유기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도 동물권을 가르친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보호소에 들어오나.
“어떤 날은 두 마리, 어떤 날은 새가 한 트럭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다를 수밖에 없다. 최종본에 담진 못했지만 소방관이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서 95마리의 토끼를 데려온 적도 있었다. 애니멀호더였다.”
빈 동물보호소 직원들이 다친 새를 치료하기 위해 몸을 살피고 있다.
빈 동물보호소에 사는 침팬지가 보호소 직원에게 비스킷을 받고 있다. 환경영화제 제공
-개, 고양이를 비롯해 뱀, 토끼, 새, 침팬지, 비버 등 야생동물이 구조돼 보호소에 오는 것이 놀라웠다.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과 공존하는지 궁금하다. 빈 동물보호소에는 어떤 동물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오나.
“빈에는 다뉴브 강이 흐르고 있고, 크고 작은 숲과 공원으로 둘러싸야 있어 여우, 멧돼지, 늑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사람 사는 곳까지 흘러들어왔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기르지 않거나, 야생에서 발견되기 어려운 특이한 동물이 보호소에 머물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악어 같은 동물이다. 어떤 사람이 아파트에서 악어를 기르다가 너무 커져 감당이 안 되니 보호소 주차장에 버리고 간 적이 있었다. 침팬지도 두 마리가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초반 빈 공항에서 밀수되다 경찰이 압수한 개체들이다. 총 9마리였는데 6마리는 몇 시간만에 사망하고 3마리가 살았다. 알고 보니 대형 제약회사에서 동물실험 용도로 몰래 들여오려던 것이었다. 10년에 걸친 소송 끝에 동물단체에서 이들을 데려왔고, 한 마리는 독일의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그 침팬지가 철장을 요란하게 흔들다가, 포도를 받아먹고는 잠시 평온해졌다가 다시 철장을 부술듯한 기세로 흔드는 모습은 마치 수용소처럼 쓸쓸했다.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사해서 더했다. 그들을 보호소에서 관리하는 방식이 과연 그들을 도와주는 것인가 옭아매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진 못했다.”
-보호소에서 치료를 마치고 방사되는 까마귀 한 마리가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그런데 새가 날아갈 생각은 없이 낯선 곳을 한참 탐색하는 모습에서 영화가 끝났다. 사람의 손을 탄 야생동물이 자연에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보호소에서 야생동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방사되나.
“우리는 그 까마귀가 날아가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런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떠날 생각을 않더라. 촬영이 끝나고 보호소 사람과 생물학자에게 물어보니, 새로운 환경을 꼼꼼하게 탐색하고나 자기가 합류할 수 있는 다른 까마귀 그룹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더라. 보호소에서는 동물들이 인간과의 접촉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최대한 동물과 거리를 두고 일을 한다.”
글·사진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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