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법무법인 원의 고문 사무실에서 강금실 사단법인 선 이사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생태 위기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고 자체를 지구와 생명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신소윤 기자
“2011년 구제역이 유행할 때, 아침에 신문을 펼쳤다가 본 사진의 충격을 잊지 못해요. 집에서 0.5㎞ 남짓 떨어진 임진강 인근 살처분 매몰지에 독수리 떼가 몰려든 사진이었는데, 파국의 예감 같은 느낌이 들었죠.”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강금실 사단법인 선 이사장은 7년 전 아침, 신문에서 본 섬뜩한 광경이 아직 뇌리에 생생하다. 그날의 충격은 강금실 이사장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지난 9일에는 국회에서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을 진단한 ‘생명을, 묻다' 토론회를 열어 법적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환경단체나 동물보호단체가 아닌 화우공익재단, 재단법인 동천, 사단법인 선 등 공익법률재단이 주도한 프로젝트다. “여러 로펌, 국회의원 등이 모여 가축 살처분 문제와 관련해 입법과 제도 개선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이사장이 생명 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2015년 포럼 지구와사람을 창립한 이후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을 다니면서 생태문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긴 공부 끝에 생태문명 모색을 기치로 내세운 포럼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 포럼 대표이기도 한 그는 “여러 회원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이렇게 생명을 다루고 있는 것(가축 대량 살처분 등)조차 눈감아 버린다면 공부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년간 가축 살처분이 이뤄지면서 대두됐던 대량살상 문제에 더해 앞으로는 매몰지 오염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축 살처분 문제에는 중요한 열쇳말 두 개가 숨어 있어요. 폐기물 문제와 생명의 대량살상. 지금 우리가 어쩌지 못하고 실려 가고 있는 산업 문명의 급격한 성장 속도를 (그래프로 그리면) 70도 정도의 각도라고 하면, 그 선 아래 쌓여 있는 엄청난 이면이 이 두 가지이죠. 지구와 생태계의 리듬을 깨고, 엄청난 생명 쓰레기를 만들었다는 것.”
2011년 1월 경기 이천의 한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돼지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는 대량생산 체계에서 분절화된 산업으로 인해 주목하지 못했던 생태 위기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고 자체를 지구와 생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온전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인류 문명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동물도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처럼, 법 제도에서 보호 대상을 지구 전체로 넓히자는 것이다. “저도 사실 법대 다니며 공부할 때 아무 문제를 못 느꼈어요. 근대법에서 동물은 물건이라고 보거든요. 인간이 주체이고 나머지를 사유재산으로 보는, 당시에는 개개의 측면에서 사유에 대한 성찰이 가능한 혁명적인 내용이었겠지만, 이 법체계 하에서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는 걸 이제 모두 알잖아요.”
강 이사장은 일렁이는 변화의 증거로 독일, 스위스 등이 내세운 동물의 권리, 뉴질랜드 원주민이 오래 투쟁해 얻은 강의 권리 등에 대해 말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권리를 인정했을 때, 그가 기대하는 변화는 어떤 것일까. “다양성이 회복되지 않을까요? 효용성과 쾌락을 줄이는 대신, 어떤 것에 대한 ‘다움'도 인정되는 거죠. 모든 것을 사물화해서 일률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돼지는 돼지다움, 소는 소다움, 나무는 나무다움을 얻는 거죠. 설령 가축으로 태어나 도축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그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퇴행이 아니라 넘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각성한 인간으로서 이 다음 걸음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하며 인류가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과문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한 그였지만, 20년 가까이 동물과 아주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푸들 ‘복희’와 믹스견 ‘복실이’는 그의 오랜 반려견이었다. “21살, 19살… 그래도 천수무강을 누리고 가셨어요. 어릴 때는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하기도 했었는데, 키우면서 보니 인간 못지않게 깊은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더라고요.”
복희와 복실이를 말하며 강 이사장은 여러 장면을 떠올렸다. 조카 손자가 어릴 적 놀러 왔을 때, 개가 손님을 배려하는 듯 자기 장난감을 아이 옆에 갖다 주던 모습, 애가 울면 운다고 부엌을 찾아와 알려주던 모습, 마지막을 아픈 노인처럼 고생하다 간 시간 같은 것들. “개가 떠나고 우리 집 정원에 아이들을 뿌렸는데, 이 개들을 자주 돌봐주던 내 조카뻘 언니가 아이들 뿌린 자리에 꽃이 피었다고. 이게 과학적으로는 무식한 소리겠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그런 정서, 동화적 세계가 좋기도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런 인간성의 회복이, 지금의 과학기술과 결합하면 아비규환 같은 현재의 황폐함이 회복되리라는 낙관이 있다. “플라스틱 문제가 대두하자 영구불변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이 나오는 것처럼, 오래전 여성이, 지금 동물이 투쟁하면서 권리를 얻은 것처럼 그 과정에서 상당한 재난과 어려움이 따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봐요.”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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