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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고양이, 조선의 임금님 되고 저잣거리 상인이 되다

등록 2018-08-03 14:13수정 2018-08-03 16:52

[애니멀피플] 고양이 책 작가 ‘아녕’ 인터뷰
책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의 고양이들
조선시대에서 개성 풍부한 얼굴로 살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모여 물건을 사고 파는 고양이들의 모습. 아녕 작가는 이 그림을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꼽았지만 고양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흥미롭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모여 물건을 사고 파는 고양이들의 모습. 아녕 작가는 이 그림을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꼽았지만 고양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흥미롭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경기도 양주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녕’(본명 안영숙·37)씨는 하루에 10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아침 먹고 그리고, 점심 먹고 그리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산책하러 나간다. 그럴 때면 인기척을 알아채고 아파트 단지 안 저쪽 구석에서 마중 나오는 아이가 있다. 3년째 정을 쌓아오고 있는 길고양이 순심이. 순심이의 별명은 ‘버선발’이다. 만날 때마다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버선발로 나와 반겨주기 때문이다. 순심이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엉킨 작업이 스르륵 해결되곤 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 다시 집을 나선다. 길고양이들 밥을 주며, 어제와 같거나 다른 오늘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그의 작업 중 일부다.

그렇게, 매일 같은 일과가 쌓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책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위즈덤하우스)는 고양이 얼굴을 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조선견문록’이다. 고양이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옛 시절로 보낸 연유는 무엇일까. 1일, 의정부시 한 카페에서 아녕 작가를 만나 책 작업의 뒷얘기를 들었다.

지난 1일 의정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를 그린 아녕 작가. 그는 이 책을 통해 “늘 숨어 지내는 고양이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지난 1일 의정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를 그린 아녕 작가. 그는 이 책을 통해 “늘 숨어 지내는 고양이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여성과 꽃을 주로 그리다가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고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언제, 어떤 고양이와의 만남이 지금에 이어진 건가.

“2014년 동네에서 아픈 고양이를 봤다. 피눈물이 고여 있었는데, 당장 고양이 먹이로 줄 것이 없어 햄 같은 걸 꺼내서 줬다. 흰색과 검은색 털이 얼룩덜룩 섞여 있어 ‘흰까미’라 이름 붙였다. 그 친구 치료하고, 사료 주면서 매일 만나다 보니 아파트 단지 안의 다른 고양이들도 알게 됐다. 흰까미가 밥을 먹을 때마다 자꾸 새 친구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조선 시대로 보낸 이유는.

“2015년 길고양이 사진가 김하연 작가의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한 ‘동상이몽’전을 열었었는데, 그때 작품들을 보고 출판사에서 제안을 해왔다. 길고양이라고 하면 어두운 데서 갑자기 튀어나오고, 사람 경계하는 존재라고 여겨지는데, 이 친구들의 세계에도 낭만이 있고 우정이 있다. 힘든 삶 속에 자기들만의 행복이 있더라. 그림에 보이는 고통 없이 밝은 모습이 사람들이 가진 길고양이의 편견을 지워주리란 생각,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친구들을 책에서나마 주인공으로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조선을 배경으로 고양이 얼굴을 한 주인공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때부터 고양이는 사람과 공존하는 이웃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하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사람들이 고양이를 특별히 예뻐하지 않더라도, 그냥 자연스럽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에 돌이 있고 꽃도 있듯이 길고양이들도 있는 것이다.”

-등장하는 30마리 고양이에게 모두에게 이름을 붙였더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비슷한 얼굴의 고양이들도 있던데….

“잘 들여다보면 무늬의 방향이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각각의 개성을 찾아 이름 붙여준 거라 기억하지 어렵진 않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발랄했던 명랑이나, 자기보다 약한 애들 오면 먹을 것을 양보하는 순심이, 호기심이 많아 늘 골똘히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똘방이… 이런 식이다.”

-35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그림이 있나.

“고양이들이 꽃상여 싣고 가는 그림. 인간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 있지만, 길고양이는 더욱, 너무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가는 길이라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예쁜 하늘, 예쁜 꽃길을 배경으로 그렸다.”

고양이가 꽃상여 타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 작가는 험하게 사는 길고양이들이 가는 길만은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고양이가 꽃상여 타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 작가는 험하게 사는 길고양이들이 가는 길만은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고양이들이 저잣거리에 모여 있는 그림은 한 달도 넘게 작업했다. 시장이란 곳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다 보니, 고양이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그려야 했다. 시장에 놓인 물건들도 최대한 그때의 모습을 재현해서 그렸다. 책에는 작게 나왔지만 비녀 등 패물도 사진 자료 등을 찾아보고 그렸다.” -임금, 양반 등 권위 있는 캐릭터는 유독 얼굴이 동그랗고 통통하더라. 그렇게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고양이들이 유독 얼굴이 크다. 골격 자체가 큰 편인데, 한때 우리 동네 대장이었던 보스, 보스를 몰아내고 새 일인자가 된 띵이가 그렇다.”

-현실감 있는 고양이들의 표정도 인상적이다.

“평소 찍어둔 사진을 보고 그렸다. 다양한 고양이 표정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재밌는 작업이었다.”

-계속 고양이를 주제로 작업할 계획인가.

“경성을 배경으로 한 2권을 준비 중이다. 경성은 조선보다 배경이 화려하고 복잡해 작업 계획을 2년 정도로 잡고 있다.”

글·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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