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규씨가 밥을 주는 ‘난봉이’(오른쪽)와 노란 줄무늬 고양이. 최진규 제공
내 집 앞 길고양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면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어떨까. 올해로 5년 째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캣맘’ 최진규(56)씨가 있다. 그는 현재 고양이 25마리의 ‘전용 캔따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최씨는 길고양이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반려견 산책을 시키다 음식물 쓰레기를 흠뻑 뒤집어 쓴 채 먹을 것을 찾는 고양이 가족을 만나고 밥을 챙기기 시작했다. 밥 주기에서 시작된 캣맘 활동은 길고양이 동네 급식소까지 만들어줄 정도의, 동네 캣맘들의 대모가 되었다.
-고양이 25마리면 기억해서 이름 부르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색깔로 구별하고 불러요. 깜둥이, 얼룩이 이렇게요. 병원에 데려 갈 때도 길냥이1, 2, 3… 이런 식으로 말해요. 아, 이름을 붙인 애가 딱 한 명 있는데 ‘난봉이’예요. 동네에 있는 암컷들을 죄다 괴롭혀서 난봉꾼에서 따 그렇게 부르게 됐죠.”
-난봉이처럼, 고양이도 저마다 성격과 특징이 있지요?
“별별 일이 다 있어요. 고양이들이 정말 영리해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젖 뗄 때가 되면, 제 앞에 새끼들을 쭉 보여 줘요. 나보고 먹여 살리라고 하는 것처럼요. 그리고는 자기는 마실을 나가요. 지금도 4개월 된 새끼 세 마리를 전담해 챙기고 있죠.”
-고양이들이 선생님을 무척 신뢰하는 것 같네요.
“고양이들이 어떻게 제 집을 알았는지, 평소 새벽에 제가 밥 주는 시간보다 늦게 나오면 집 앞 1층으로 몰려와 있어요. 제가 나타나면 막 쫓아오기도 하고요. 영리한 아이들은 밥을 먹으려기보다 제게 (같이 사는 걸) 선택 받으려고 쫓아오거든요. 제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가 딱 돌아가요. 3일 정도 되면 포기를 하더라고요. 안쓰러운 마음이 크죠.”
-한 마리 정도는 거둬서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푸들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한 마리 데려오면 두 마리가 될테고… 그렇게 하다 보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 같아서, 선뜻 데려오지 못하죠.”
-평소 강아지를 키우셔서 고양이도 관심을 가지시게 됐나 봐요.
“처음에 저는 길고양이를 싫어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엄청 창피한데, 강아지한테 세균을 옮길까 싶어서 무섭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5년 전 겨울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어미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음식물 쓰레기 통 앞에서 뒤범벅이 된 걸 본 거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때 생각이 달라져서 단지 내 길고양이들을 챙겨주기 시작했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 가족. 이들이 최진규씨를 캣맘의 길로 이끌었다.
-캣맘 활동에 어려움도 무척 많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민원이 무서워서 애기들 물도 못 줬어요. 지금은 성격이 완전 과격해졌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올해 2월 즈음에 구청 직원이랑 싸웠어요. 추위를 피하려고 지하 주차장에 들어 온 친구들에게 밥을 줬다고 누가 구청에 민원을 넣었나 봐요. 직원이 ‘왜 길에서 살다가 죽는 애들한테 밥을 주냐’고 이야기하길래 제가 화가 나서 난리를 쳤죠. ‘유기 동물에 신경써야 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요. 이후 구청장한테 항의 메일을 써서 구청장에게도 사과를 받아냈어요. 그렇게 싸우면서 지금은 오히려 평화를 많이 찾은 상태죠. 처음에는 혼자 시작한 활동인데, 지금은 함께 하는 캣맘이 네 명 정도 늘었어요.”
-지금은 능숙하게 길고양이 급식소도 지어주시고 있다고요.
“작년에 처음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이즈가 괜찮은 삼단 서랍장이 재활용 처리장에 나오면 주워다가 만들어요. 비 올 때 사료가 젖기도 하고, 평소에 벌레가 꼬이기도 해서 고심을 한 거죠. 개미가 꼬이지 않게 분필로 된 약을 주변에 발라서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밥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현재 네 개 설치했어요.”
-아파트 단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동물과 공존하기 어려운 아파트 공간에 대한 문제점도 알게 되셨다고.
“아파트를 지을 때 의무적으로 1층 아래에 공간을 만들었음 좋겠어요. 겨울에 고양이들이 굴 같은 걸 파서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길고양이만의 전용 공간인 셈이죠. 결국엔 사람이랑 공존해서 살 수밖에 친구들인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예은 교육연수생,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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