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가 반려묘 대장이와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당에 볼 일 보러 나왔던 대장이는 김 대표에게 붙들려 어쩐지 심통이 난 표정이다.
동물이 사람과 사람을, 마음과 마음을 이었다. 지난 12년간 동물책 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의 시간을 돌아보면 그랬다. 좋은 필자를 찾고, 편집하고, 배본하고, 마케팅까지 모두 혼자 하지만, 좋은 동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쉼없이 사람을 만나야했다. 책을 만들면서 동물의 고단한 삶에 시선을 확장하게 됐고, 같은 마음을 나누는 독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만들고 싶은 책만 만들며 망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목표로 만든 책이 어느새 42권이다.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유기동물, 전시 동물, 전쟁과 동물, 노령 동물, 농장동물 등으로 이어진 그의 작업 목록은 지난 10년간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작은 마당이 딸린 조용한 주택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 곳은 그가 30년 동안 살고 있는, 유년의 추억부터 반려견 찡이와의 기억이 곳곳에 스민 집이자 작업실이다.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2층 방은 이제까지 작업한 책, 번역한 책의 원본과 각종 자료로 빼곡했다.
‘내가 읽은 책을 번역해보자’
-인터뷰 직전, 하고 있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고양이 그림일기>를 낸 이새벽 작가가 아기 고양이 5마리를 임시보호하고 있어요.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다음에 내기로 한 책 작업을 중단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그 친구들 입양 보내야 하니까 돌봄 와중에 걔들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입양글 쓰고…. 사실 임시보호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인데 그 중요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임시보호자가 없으면 그 많은 유기동물들은 다음 입양처를 찾기 어려워요. 어찌보면 입양 보다 중요한 일이죠. 그 과정을 책으로 쓰기로 했어요.”
김보경 대표 작업실 한 쪽 벽에 놓인 책장. 빼곡한 책 앞에 놓인 반려견 찡이의 초상이 눈에 띈다.
-동물 책을 만들어야겠다, 마음 먹은 계기가 있나요?
“지금은 동물 책이 차고 넘치잖아요. 2004년이었나, 그 무렵에 동물책을 내야겠다 어렴풋이 마음 먹었어요. 저희 강아지 찡이가 10살을 넘기던 때였어요. 그때는 제가 잡지 기자였는데 마감 끝나고 돌아오면 집에서 하루종일 잤거든요. 어느날 지쳐서 집에 들어오는데 찡이가 다리를 구부리지도 못하고 이상한 모양으로 뻣뻣하게 걸어서 나오는 거예요. 잠이 확 달아나 급하게 병원에 달려갔더니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어요. 골육종도 의심된다고 하더군요. 골육종은 결국 아니라고 판정을 받았지만 힘든 몇 달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이 아이가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키우던 개 두 마리를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각각 떠나보냈어요. 이럴 때 찾아볼 자료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외서를 막 사다가 읽었는데, 완전 신세계였어요. 그 책 중에 하나가 초기에 작업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예요.”
-운명적으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된 셈이네요.
“아주 큰 위안을 받았어요. 그런 한편 ‘나같은 사람이 지금은 소수이겠지만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러면 책을 내자, 내가 본 책을 번역하면 되겠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찡이와 대장이
-찡이는 어떤 친구였나요?
“시츄, 19살까지 살았어요. 1993년생이니 1세대 반려견인 셈이죠. 광고회사에 다니던 언니가 광고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 온 강아지였어요. 그때는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찡이가 온 날 일곱 식구 모두가 거실에 빙 둘러 앉아 ‘너무 예쁘다’고 했어요. 퇴행성 관절염말고는 큰 병 없이 살다 떠났어요. 그래서 주변에 개를 입양하고 이름을 찡이라 붙이는 분들도 계셨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 ‘대장’이와도 잘 지냈나요?
김보경 대표가 거실에서 대장이를 쓰다듬고 있다.
“대장이는 2006년부터 우리집 마당에 와서 밥을 먹던 길고양이였는데, 이 동네 대장이라서 이름을 그리 붙였어요. 어머니가 고양이만큼은 집에 안 들일 거라고 하셨는데 찡이가 받아준 게 크죠. 대장이 찡이를 졸졸 따라다니고 찡이 옆에 가서 기대 자고 그랬거든요. 마당에서, 현관까지 들어오고, 거실로, 방으로. 개·고양이가 잘 지내는 건 개체 성향인 것 같아요. 찡이와 대장은 무척 잘 지냈지만 찡이가 떠나고 다른 길고양이나 개를 입양하려해도 대장이 받아들이질 못해요.”
-찡이가 떠나고 대장이 많이 힘들어했겠어요.
“정말 많이 힘들어했죠. 찡이와 대장이 제가 자는 방에 와서 함께 잤어요. 찡이 화장하러 떠나기 전날 밤에 찡이를 그 방에 눕혀두고 가족들이 오가며 인사했거든요. 그런 모습을 대장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찡이가 그 다음날 없어졌잖아요. 찡이가 그 방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주 오랫동안 찡이가 마지막으로 있던 그 방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잠도 거실에 내려가 혼자 따로 자고. 다시 들어오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동물에 대해 달라지지 않는 시선
-첫 책을 내고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처음 책을 만들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동물, 인간의 동반자>라는 책을 쓴 미국의 수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임스 서펠이 이 책의 개정판을 10년 만에 내면서 거기 서문에 10년 사이에 미국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는 요지의 글을 썼어요.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은 동물원 기사가 나오면 ‘동물원에 사는 애들 불쌍해, 다 풀어줘’ 이런 댓글이 달리잖아요. 동물권 문제에 대한 사람들 생각이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 느끼죠. 지난 12년간의 책 목록 또한 동물을 보는 시선이 확장된 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을까요?
“사람들이 동물에 보이는 일관성은 딱 하나인 것 같아요. 비일관성. 여전히 이중적인 시선이 있어요. 사람들이 강아지 공장을 보면 기절할 듯 하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순종 강아지를 찾죠. 공장식 축산을 싫어하면서도 고기가 비싸지는 것은 싫고요. 한국 사회에서 동물은 여전히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물건이잖아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식탁이나 의자와 같은 지위를 갖고서는 학대하지 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동물의 법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폭력이 행해지죠.
“폭력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동물에 대한 폭력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동물 폭력이 나중에 인간 폭력으로 간다는 것 맞는 얘긴데, 저는 이게 인간까지 오지 않더라도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를 폭력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40여권의 책 목록 중에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책이 있나요?
“예전에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없어’라고 했어요.(웃음)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기보다 아주 좋은 책인데 왜 사람들이 몰라주나 싶은 아픈 손가락 같은 책은 있어요. <버려진 개들의 언덕>이라는 책인데 대만의 한 생태작가가 한 동네에서 떠도는 개들을 2년 간 관찰해서 쓴 것이에요. 이 개들이 우정이 대단해서 공동육아를 하는 등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재밌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대만에서 유기견 정리를 해서 몰살당하는데 정말 슬퍼요. 책이 안나가니까 사람들이 이런 비극보다 행복한 얘기를 원하는구나, 생각하기도 했죠.”
‘절판하지 말자’
-반려동물부터 전시동물, 농장동물… 혼자서 많은 영역을 다루면서 오는 부침은 없나요?
“잡지 기자일 때도 그랬지만 제가 전문가일 필요보다는 새롭게, 잘 이야기해 주실 분을 찾는 게 중요해요. 사람 만나고 지식과 관심사를 나누는 걸 좋아해요. 전문 출판사라서 더 좋은 건, 좋은 동물책이 있으면 이제 역자들이 먼저 ‘이런 책 있다’고 얘기해줘요. <햄스터> 같은 경우는 저자가 찾아온 사례예요. 햄스터를 주제로 책을 내고 싶었는데, 국내에는 햄스터 전문 수의사를 찾기가 어려워서 외서를 찾던 중이었거든요. 햄스터가 중요한 게, 아이들이 어릴 때 가장 싸고, 쉽게 구해서 키울 수 있는 동물이거든요. 학대의 사다리 제일 밑에 있는 동물이에요. 설치류라 번식을 순식간에 하다보니 아이들이 부모님한테 혼날까 봐 변기에 내려서 버리고, 믹서기에 갈고, 아님 교실에서 힘을 과시하려고 친구들 보는 앞에서 던지고, 밟아죽이기도 하고. 국내 정서에 맞는 햄스터 책을 내고 싶었는데 마침 저자가 먼저 연락을 주셨죠. 얼마 전에 6쇄를 찍었어요. 이 책 이후로 초등학생 독자들이 많이 늘었어요.”
-6쇄나 찍는데도 망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요.
“1인 출판으로 계속하자, 망하지 말자가 목표예요. 한 때는 출간된 책 종이 많아지면 매출이 오를 줄 알았어요. 2014년 쯤 매출이 쭉 오르길래 ‘아, 이제 옛날 10년 전 연봉 만큼은 되겠네, 앞으로 이만큼만 하면 되겠어’ 했는데 오산이었죠. 그래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밥 먹고 살면 그게 특권층이라면서요. 저희 책 절판하지 말고 가자는 목표를 깨지 않을만큼 하려고 해요.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생기지 않게, 그리고 100% 제가 하고 싶은 책 만든 거니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