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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야생 동물 생태 통로 위에 관광 통로를 낸다고요?

등록 2019-01-28 10:45수정 2019-01-30 11:01

[애니멀피플]
지리산 19번 국도 위 생태 통로에 ‘관광 길’ 공사 한창
올무도 곳곳에 포진, 야생 동·식물 생태 연결 배려 없어
생태 통로에 설치된 올무에 걸려 죽은 멧돼지의 머리 뼈.
생태 통로에 설치된 올무에 걸려 죽은 멧돼지의 머리 뼈.
지리산은 섬이다. 도로에 둘러싸인 섬. 우리나라 어느 산인들 섬이 아니겠는가?

산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에게 도로는 목숨을 담보로 건너야 하는 강이다. 이들의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하여 도로를 가로질러 만든 구조물을 우리는 ‘생태 통로’라고 부른다. 생태 통로는 도로, 댐 등 인공적인 구조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드는 생태적 공간을 말한다.

19번 국도 남원의 밤재에서 구례 자연드림파크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생태 통로가 하나 있다. 이 근방은 지방도, 국도, 고속국도까지 세 개의 길이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막고 있는데, 사람과 차를 피해 동물들 다니라고 낸 길이 이 생태 통로인 셈이다. 이 생태 통로는 2004~2006년 조사 당시 야생 동물 로드킬이 가장 많은 곳에 세워진,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든다고 해서 지난 23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데크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생태 통로를 통과하는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봤다. 관목 사이로 구멍이 뚫려 있고 바닥은 풀이 없고 골이 팬 게 야생동물의 왕래가 빈번하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올라가 보니 고라니가 쉬어가 맨땅이 드러난 자리가 있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고라니 똥들이 보인다. 좀 아래로 내려오니 큼지막한 멧돼지가 며느리발톱까지 남겼고, 반대쪽에는 먹이활동으로 땅을 파헤친 곳도 서너 군데 보였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발자국이 두 갈래로 남아 있었다. 왼쪽으로 오르다 보니 나무에 묶인, 와이어로 만든 올무가 바닥에 깔렸다.커다란 발자국을 따라 올무를 놓은 게 고라니보단 멧돼지를 겨냥한 듯싶다.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 19번 국도 위쪽 생태 통로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를 공사하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위축된 동물들이 이 곳을 지나기 어려워진다.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 19번 국도 위쪽 생태 통로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를 공사하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위축된 동물들이 이 곳을 지나기 어려워진다.
같이 온 일행이 저쪽 멀리에서 하얀 뼈를 들어 보이며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멧돼지 상악골(머리 위쪽 뼈)이다. 어디서 발견했냐 물으니 두 갈래 길 중에 저 아래 쪽이란다. 가서 보니 하악골과 제법 커 보이는 뼈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올무에 걸려 죽은 건 아닐까? 뼈 위쪽으로 이어지는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니 올무가 두 개나 보인다. 두 개 모두 자신의 소임을 마쳤는지 조여진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바로 옆에는 멧돼지가 엄니(송곳니)로 소나무를 긁어 거기에 몸을 비벼 기생충을 떼어낸 나무를 일컫는 ‘베개목’ 흔적도 보였다. 올무가 묶인 나무 위쪽 표면은 긁혀 있었다. 비탈에서 올무에 걸린 멧돼지가 빠져나오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것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곳은 동물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만든 생태 통로다. 그곳에 올무가 세 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에 걸린 멧돼지가 올무에 걸린 채 말라 죽었다. 두개골과 큰 뼈 몇 조각이 올무 바로 아래 남아 있었다. 조그만 뼈들은 다른 야생동물들의 먹이활동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생태 통로가 만들어지면서 야생동물들은 이곳으로 빈번한 왕래를 시작했을 것이다. 인근에 구례자연드림파크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한쪽으로 몰린 동물들은 이 길을 더 자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야생동물을 노리는 사람에게도 올무를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길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야생동물들의 길인 생태 통로 바로 가까이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데크까지 설치하고 있다. 생태 통로를 가로질러 동물들이 다니는 길 위로 사람들이 다닐 길을 설치했다. 생태 통로 위에 사람 통로로 육교를 만든 꼴이다.

생태 통로 위로 데크를 설치했다고 야생동물이 이 길로 다니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굳이 생태 통로 가까이 길을 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득이 주변에 사는 주민 몇 명이 밭에 가려고 거기를 이용한다면야 옛말처럼 동물 좋고 사람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이동할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다는 건 결코 이 곳에 사는 야생 동·식물을 배려한 처사가 아니다. 길이 있으니 거기에 사람 길을 얹겠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글·사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지리산 사람들 운영위원, ‘지리산 시민 과학자’ 하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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