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늙고 병든 길고양이 돌보는 보호소에도 평화가 감돈다
늙고 병든 길고양이 돌보는 보호소에도 평화가 감돈다
‘수영이’. 콧수염 난 중후한 얼굴과 다르게 살뜰하게 새끼 고양이들을 돌보는 경묘당의 ‘대모’다.
대리모가 된 ‘하악질’ 고양이 14일 오후, 경묘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젖소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 등을 보이며 앉길래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니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치켜세웠다. “그 아이가 경묘당 터줏대감 수영이에요.” 2017년부터 경묘당을 운영해 온 오경하 경기길냥이연합단장이 말했다. “모든 동물이 그렇겠지만 여기 있는 고양이들도 얘깃거리 없는 애들이 없죠. 수영이도 그렇고요.” 경묘당 고양이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다시 길로 돌아가거나 입양처를 찾아 새 가정을 찾지만, 어디로도 가기 어려운 몇몇 고양이들은 수영이처럼 이곳에 남는다. 수영이는 자기 배로 낳지 않은 새끼들을 거두다 경묘당에 뿌리를 내렸다. 수영이는 코 옆으로 먹물로 찍은 것 같은 검은 털이 있는 고양이다. 엉뚱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수영이는 사람을 무척 경계했다. 사람이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신경질을 내며 ‘하악’거렸다. 구조 당시 수영이는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모유가 여전히 돌고 있는데, 살아남은 새끼는 1마리밖에 없었다. 수영이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탯줄을 떼지도 못한 새끼 고양이 4마리가 쉼터에 들어왔다. 오단장은 고민 끝에 아기 고양이들을 수영이에게 부탁했다. “아깽이들을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서 수영이 쪽으로 보이게 해서 밀어넣었어요. 저한테는 앞발로 차고 칵칵거리더니 처음 보는 새끼들을 바로 끌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젖을 물렸어요.” 수영이에게서 배운 덕분에 경묘당 사람들은 이후 구조 때마다 엄마 고양이들과 협업해 새끼 고양이들을 살렸다. “암컷 고양이들은 아기 고양이들을 가까이 두면 다 키워요. 대리모가 돼 주는 거죠. 저희가 분유 먹이고, 고양이들이 아기들 핥아주고 품어주면 생존율이 확 올라가요.” 쉼터 사람들은 오랜 길 생활로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들어온 고양이들이 새끼 고양이 수십 마리를 살려내는 걸 보고, 삶과 죽음이 경계에 불과하다는 걸 느낀다.
교통사고로 뒷다리를 모두 잃은 ‘동구’.
의지하며 지내는 경묘당 고양이들.
쉼터 붙박이가 된 고양이들 수영이 말고도 쉼터 붙박이 고양이들이 있다. 모두 아프거나 상처를 가진 이들이다. 장모 샴고양이인 ‘뭉실’이는 경묘당 창립 고양이라 할 수 있다. 유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뭉실이는 하수구에서 숨어 살았다. 경계심이 강해 어두컴컴한 곳에서 눈만 반짝이고 있어 밥 주는 사람조차 한참 동안 너구리인 줄로 오인할 정도였다. 구조를 했으나 백내장이 심하고 성질이 사나워 입양처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임시 보호처를 전전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경묘당 관계자들은 눈이 안 보이는 뭉실이를 오래 보호할 공간을 고민하다 지금의 쉼터 자리를 구했다. 지난 달 쉼터에 들어온 ‘몽쉘’이도 쉼터에 오래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몽쉘이는 학대를 받고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단장은 “얼굴 한쪽만 안구 함몰, 동공수축 등이 보이는 호너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외상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치료 때문에 철창에서 격리돼 지내고 있는 몽쉘이는 좀처럼 철창에서 꺼내달라 표현을 하지 않는다. “다른 고양이 같으면 앞발로 문을 열고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지나가면 열어달라고 울기도 하는데 얘는 여기 있는 게 너무 편해 보이는 거예요. 번식용 종묘로 철창에 갇힌 채 살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심한 구내염과 신부전을 앓고 있는 ‘삼색이’는 사람이 좋은지 아픈 몸을 이끌고 카페 한 가운데 나와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흘렀다. 삼색이는 지난해 8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버텨내고 있다. “삼색이 같은 애를 지켜보고 있다보면 딜레마에 놓여요. 관리를 해서 연장할 수 있는 수명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짧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을까. 애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수 없으니까 적당히,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면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삼색이를 보며 오단장이 말했다.
‘뭉실’이와 오경하 경기길냥이연합단장.
손님이 많으면 난리나는 ‘고양이 카페’ 아프고 약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이 곳은 카페를 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걸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오단장은 “손님이 많이 오면 자원봉사자들 모인 카톡방이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많이 오시면 감사하지만 불안하기도 하거든요. 손님이 많으면 얘네들 몸살 나요. 그냥 하루에 몇 분이라도 찾아와서 사람 좋아하는 애들이랑 시간 보내고 가시는 게 제일 좋아요.” 드나드는 사람이 적어 절간처럼 조용한 경묘당에 길가의 소음이 새어 들어왔다. 실내에는 간간히 얕은 고양이 울음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와서 본다면 사람 세상과 고양이 세상이 섞이는 경계 지점을 이곳이라 볼 법도 했다. 그런 곳에서 고양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아 최선을 다해 생을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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