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수의과대학이 동물학대 의혹이 제기됐던 수의산과학 과목에서 질 도말 실습을 잠정 폐지했다.
경북대 수의과대학이 동물학대 의혹이 제기됐던 수의산과학 과목에서 ‘질 도말 실습’을 잠정 폐지했다.
지난달 21일 애피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 대학 4학년 전공과목인 수의산과학실습은 암컷 개들을 이용해 반복적인 질 내 검사를 시행하고, 강제교배를 통해 실제 분만까지 이뤄져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강제교배로 낳은 강아지는 학생들 몫이었다”)
10일 경북대 수의학과 쪽은 “사회적 분위기, 여론 등을 고려해 질 도말 실습은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 실습은 앞으로도 계속 중단될 예정이고, 현재는 (수의산과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실습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당분간 산과실습에서 개를 비롯한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한 실습도 중단된다고 밝혔다.
수업을 진행한 수의학과 이 아무개 교수는 “지금까지 실험동물의 사육 환경이나 건강관리 등은 가이드라인에 맞게 관리해왔다. 다만 이번 논란을 통해 국민적인 시각과 (실험실 내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논란과 문제제기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실습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다수다. 학생들은 제보자 등 소수의 의견만 주로 다뤄진 점에 상처를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수의대 학생회 쪽은 보도가 나간 뒤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메신저 등을 통해 학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피는 설문조사 결과 및 내용에 대해 학교에 문의했으나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학생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선 ‘동물을 다루는 모든 실습이 위축될까 우려된다’는 의견과 ‘몇 번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것을 1년 내내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가이드라인에 맞춰 잘 관리했다는 교수의 답변과는 다르게 사육 환경이나 실습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학생은 “윤리적 실습이라고 하셨는데, 우선 사육 환경부터가 매우 불량하다. 보도 전 충분히 조율할 시간이 몇 년이나 있었고, 건강이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실습을 강행했다. 언제까지 학생들이 더 교수님께 조율하고 말씀드려야 하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학생들은 “설령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학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을 공통으로 표했다.
다섯 마리 실습견 중 한 마리인 ‘건강이’는 지난 6월 난소종양, 유선종양, 폐 종양 등 여러 질병이 진단됐지만 이후 한달간 질 도말 실습에 이용됐다. 사진 동물해방물결 제공
실습 폐지와 더불어 실습에 이용됐던 5마리 개들도 분양 절차에 들어갔다. 9일 수의대는 내부적으로 실습견들의 입양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의대는 동물단체들에 보낸 ‘경북대 수의과대학 질 도말 실습견 분양에 대한 답변’이라는 공문을 통해 “현재 실습견은 (그동안 관리에) 정성을 다한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분양을 할 계획이다. 그 후 입양이 안 된 실습견은 여러 통로를 이용해 엄격히 심사 후에 분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공문은 지난 6일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가 해당 동물들의 이관을 요청한 것에 따른 답변이다. 이들 단체는 지난주 수의대 쪽이 학생들을 상대로 실습견에 대한 입양 의사를 조사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개들의 소유권을 비글구조네트워크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동물단체들은 “일반적으로 반려동물, 특히 장기간 실험에 동원됐던 실험견의 입양은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며 대학 쪽에 공식적으로 이관을 제안했지만, 대학 쪽은 이를 거절했다.
수의대 쪽은 10일 애피와의 통화에서 동물단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로 “미래의 수의사들이 더 잘 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6~7개월간 개들을 돌보며 정들었던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추후 입양이 안 된 개들은 공개적으로 분양 공지를 진행하는데, 동물단체들이 개들의 이관을 원한다면 그때 지원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동물단체들은 폐렴, 심장사상충 등 질병을 앓고 있는 실습견들을 학생에게 입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다. 특히, 실습견 중 한 마리인 ‘건강이’는 난소종양, 유선종양, 폐 종양 등 질병이 진단돼 수술을 받은 바 있고 이후에도 실습에 이용되며 사람 손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앞으로 삶에서 다양한 변화가 예상되는 학생들에게 입양을 권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수년간 열악한 사육환경에서 실험에 동원되며 각종 질병에 시달려온 개들에 대한 책임을 학교가 또다시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보도 후 해당 실습을 중단하고 분양을 추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학교 쪽은 부디 수의학적 지식 뿐 아니라 동물과의 반려를 결정할 때 마땅히 고려해야 할 많은 요소를 헤아려 분양을 천천히 공개적으로 진행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