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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영국 대학 구내식당에선 왜 소고기를 안 팔까?

등록 2019-11-29 10:50수정 2019-11-29 13:12

[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⑤
‘기술혁신과 국민건강’ 두 날개 달고 확산중인 외국의 채식-비건 문화
영국 런던의 채식 식당 수는 서울보다야 많겠지만, 채식 인구 대비 식당 수를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런던 사람들은 채식 식당을 갈 필요가 없다. 거의 모든 식당에서 채식이나 비건 메뉴를 팔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캠든 마켓의 한 비건 식당.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런던의 채식 식당 수는 서울보다야 많겠지만, 채식 인구 대비 식당 수를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런던 사람들은 채식 식당을 갈 필요가 없다. 거의 모든 식당에서 채식이나 비건 메뉴를 팔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캠든 마켓의 한 비건 식당. 게티이미지뱅크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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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븐스프링스 비건’이다. 뷔페식당 세븐스프링스에 가면 풀때기만 먹는다. 채소를 천천히 씹으면서 질감을 느끼면서 먹는다. 세븐스프링스에는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가 많다.(이 기사는 세븐스프링스의 협찬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간 채식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했다. 육식체제는 우리를 둘러싼 공기와 같다. 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체제에 순응하기로 했고 고기의 양을 줄이는 것으로 선회했다. 이를테면, 뷔페에 가면 채식을 하고(세븐스프링스 비건), 내 돈으로 고기는 사 먹지 않고(이코노미 채식), 덩어리 고기는 안 먹는 식(비덩주의) 같은 것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육식체제는 우리를 둘러싼 공기와 같다. 그러므로 채식 문화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신자를 회심케 하고 세례를 주는 방식보다는 그냥 어깨 한 번 툭 치는 친구처럼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나처럼 나약한 결단력의 친구들에게는, 채식은 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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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움도 문화가 되면…

채식 문화가 발달한 서구 국가의 사례는 그래서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나는 영국에서 도합 2년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영국에서 채식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가까웠다. 노릿한 고기 냄새가 나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서 채소 냄새가 났다.

영국 상당수 대학의 식당, 카페에서는 비건 메뉴를 내놓는 것은 물론 비건 식당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식당 메뉴에서 소고기와 양고기 등 붉은 고기를 퇴출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런던정경대의 비건 카페 ‘더 쇼’가 페이스북에 실은 사진.
영국 상당수 대학의 식당, 카페에서는 비건 메뉴를 내놓는 것은 물론 비건 식당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식당 메뉴에서 소고기와 양고기 등 붉은 고기를 퇴출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런던정경대의 비건 카페 ‘더 쇼’가 페이스북에 실은 사진.

한 번은 학교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다. 거창한 행사는 아니었다. 참가자는 기껏해야 20명 정도이고 샌드위치 정도를 시켜 먹는 수준의 행사였다. 딩동. 사흘 전에 이메일이 왔다. 요청 사항을 받았다. 비건, 페스코, 글루텐 프리까지 물었다. 나는 혼잣말로 말했다. “글루텐 프리까지? 어차피 시켜 먹을 거면서, 유난 떨기는….”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가 참 번거롭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됐다. 왜냐하면, 문화니까.

옥스퍼드 인근의 지인 집에 초대를 받았다. 영국인들의 초대라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잔칫상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하는 게 아니다. 평소 먹는 소박한 음식 파스타나 라자냐, 샐러드 등 을 와인에 곁들여 먹고, 매우 영국스럽게 (개를 데리고) 동네 주변을 한 시간쯤 산책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아주 캐주얼한 초대인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안 했다. 역시나. 사흘 전에 메일이 왔다. “혹시 비건 음식 필요해요?” 파스타 줄 거면서 무슨. 어쨌든 채식은 공기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채식이라고 하면, 보통 ‘채식 식당’을 연상한다. 아니면 요가를 하는 구루라든가, 다이어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 아니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같은 이미지 말이다.

미국의 푸드 스타트업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의 햄버거. 최근의 비건 열풍은 푸드테크의 기술혁신과 관련이 깊다.
미국의 푸드 스타트업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의 햄버거. 최근의 비건 열풍은 푸드테크의 기술혁신과 관련이 깊다.

런던의 채식 식당 수는 서울보다야 많겠지만, 채식 인구 대비 식당 수를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런던 사람들은 채식 식당을 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식당에서 채식이나 비건 메뉴를 팔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맥도널드에는 베지테리언 버거가 있고, 직장인들이 점심을 때우는 샌드위치 가게 ‘프레타망제’나 슈퍼마켓의 레디밀(완전조리식품) 코너에는 아보카도 샐러드 같은 비건 메뉴가 상비 되어 있다. 저녁 약속을 해도 서로 불편함이 없다. 식당에는 채식 메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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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학에서 확산하는 ‘붉은 고기 추방’

지난 몇십 년 동안 채식은 몇 차례 유행을 타고 번지며, 차례로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 최근의 비건 열풍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센데, 두 가지 점에서 과거의 열풍들과 다르다.

첫째는 푸드 테크에서 발원한 흐름이다. 미국의 ‘비욘드 미트’, ‘임파서블 푸드’ 같은 푸드 스타트업이 기술혁신으로 육즙까지 재현한 대체육을 내놓고 있다. 고기 없는 세상을 향한 과감한 도전장이자, 여전히 고기를 그리워하는 우리 유전자에 대한 위로다.

서구의 채식주의는 문화로 커왔다. 동물의 생명과 고통에 귀 기울이는 윤리학이 여전히 한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힙하다’고 느끼는 문화적 자부심, 함께 사는 동물과 지구에 대한 미안함,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채식 문화를 주류로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구의 채식주의는 문화로 커왔다. 동물의 생명과 고통에 귀 기울이는 윤리학이 여전히 한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힙하다’고 느끼는 문화적 자부심, 함께 사는 동물과 지구에 대한 미안함,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채식 문화를 주류로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둘째는 정부와 기관이 육식을 줄이는 정책 대안을 내고 실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인데,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붉은 고기(소 돼지, 양 등)를 각각 발암물질 1군과 발암 위험물질 2A로 지정한 데서 나온 덕이 크다.

영국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육식을 줄이는 정책이 활발하다. 케임브리지대는 캠퍼스 식당과 카페 그리고 각종 행사에서 붉은 고기를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케임브리지대는 음식 1㎏당 탄소 배출량을 33% 줄였다고 밝혔다.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는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를 중단했다. 동시에 교내에서 파는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에 병당 10페니의 환경부담금을 추가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9월 기사에서 “누군가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옳은 일”이라는 닉 화이트 케임브리지대 급식부장의 말을 전했다.

최근 채식에 대한 논의는 고기세로 옮아갔다. 고기의 과다 섭취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여 사회적으로 보건비용을 증가시키므로, 세금 부과를 통해 소비를 줄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첫번째 논쟁지역은 독일이다. 독일은 소시지를 좋아하는 나라답게 고기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7%로, 다른 상품 19%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에 따라 녹색당과 사회민주당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고기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연합에서는 붉은 고기(소, 돼지, 양) 소비를 억제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붉은 고기의 암 관련성을 인정한 데다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인식되어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연합에서는 붉은 고기(소, 돼지, 양) 소비를 억제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붉은 고기의 암 관련성을 인정한 데다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인식되어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원래 고기세를 제안한 건 시민단체 독일동물보호연합(GAPA)이었다. 토머스 슈뢰더 회장은 ‘유로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깃값이 너무 싸고 가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된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복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가격 압력은 농부들로 하여금 더 작은 공간에서 더 많은 가축을 키우도록 한다.”

옥스퍼드대의 마르코 스프링맨 등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고기세를 도입할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지 시뮬레이션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학술지 ‘플로스원’에서 붉은 고기에 4%, 가공육에 16% 세금을 부과할 경우, 가공육 소비가 16%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주 두 끼의 가공육 섭취가 줄어드는 꼴이다.

반면, 붉은 고기의 소비량은 가공육 가격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옮아와 줄지 않을 것으로 봤다. 또한, 고기세 부과 이후 전 세계에서 매년 22만2000명의 사망자 수가 줄고 410억 달러의 보건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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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커온 채식주의

나는 비건이냐 아니냐에 대해 과도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에 속한다. 이것은 자본주의라는 공기 안에서 사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이 허무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우리는 육식체제의 공기 안에서 산다. 비건이 아닌 사람을 육식체제의 공모자라고 공격한다면, 미래에 함께 싸울 잠재적 동지들을 잃는 꼴이 될 것이다.

서구의 채식주의는 문화로 커왔다. 동물의 생명과 고통에 귀 기울이는 윤리학이 여전히 한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힙하다’고 느끼는 문화적 자부심, 함께 사는 동물과 지구에 대한 미안함,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채식 문화를 주류로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독일에서 탈원전 운동과 함께 대체 에너지 산업이 발달했듯이, 탈육식은 이제 ‘비건 경제’의 발달로 이어질 것이다. 케임브리지대는 2025년까지 탄소 중립이 목표다. 조만간 고기세를 도입하는 지자체나 중앙정부도 나올 것이다.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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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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