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경기도청은 공식 유튜브에서 ‘12시간 돼지고기 먹방’을 생중계 했다.
혼자 하는 비건은 꽤 할 만하다. 입고, 먹고, 쓰는 걸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1인 가구라서 집에서의 비거니즘은 나름 순풍이다. 송치 구두를 살까 말까, 울 스웨터를 입을까 말까, 콘택트렌즈를 쓸까 말까. 내적 갈등은 지속됐지만 비건이 새 기준이 되고 나서는 결정이 쉬워졌다. 두달 간 고기가 당기거나 그립지도 않았다.
다만 여럿이 모일 때면, 미묘한 지점에서 마음이 덜걱거렸다. 비건 지향 두 달, 우리는 더는 ‘건강해지려면 고기를 먹어야 돼’, ‘식물은 그럼 안 불쌍해’와 같은 노골적인 말을 자주 듣진 않았다. 최근 비거니즘이 많이 알려진 덕이다. 그런데도 비건이 채식한다는 걸 아는 사람도 어떤 음식을 먹고, 안 먹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묵도 안 먹어? 우유랑 버터도 안 먹어? 계란은? 그럼 뭐 먹어? 순수한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하면 될 일인데 어째서인지 종종 신경이 예민해졌다. 우유와 계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가 젖소와 암탉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외식 때, 어류가 들어간 국물을 허용한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이상하게 입맛이 씁쓸했다. 이런 나의 ‘지향’ 상태를 설명하는 일이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피의 ‘채식 도시락’도 종종 완벽주의 덫에 걸렸다. 우리의 이실직고는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부터 시작된다. “이건 멸치 육수를 쓴 거야”, “장모님 비지찌개인데 돼지고기가 좀 섞였어”. ‘비건’이 힙해지기 전부터 60여 년 평생을 가장 생태적으로 살아온 조홍섭 기자마저도 “겉절이 좀 갖다 놓을까? 근데 젓갈이 들어가서…”라며 조심스러워하는 식이다.
11월 어느날의 애피의 점심 도시락. 전날 반찬 준비를 못 하면 아침에 에어프라이어에 콩너겟을 튀겼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부족한 내 모습’에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도시락 준비가 어느 순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별생각 없이 현미 즉석밥을 먹다가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허둥지둥 일과를 마치고 시든 파처럼 퇴근할 때면 마트에 가기 싫어서 새벽배송 앱을 켰다. 전날 반찬 준비를 못 하면 아침에 에어프라이어에 콩너겟을 튀겼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부족한 내 모습’에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점점 도시락이 싸기 싫어졌다.
이렇게 내가 건더기와 국물, 플라스틱에 무너지고 있을 때, 11월25일 경기도청 공식 유튜브에서는 ‘12시간 돼지고기 먹방’이 생중계됐다. 여러 연예인, 방송인이 ‘먹방 주자’로 나와 삼겹살을 구웠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양돈농가를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돼지를 살리기 위해 돼지를 열심히 먹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시들시들해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29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비건 유튜버 단지앙의 한 마디가 마음에 꽂혔다. “자신을 향한 비건을 했으면 좋겠어요.” 20대 때 수영강사와 보디빌더로 활동했던 단지앙은 채식 초반 ‘완벽한 채식’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동물성 음식은 단 한 방울도 허용치 않았다. 그러다가 심한 무력감이 왔고, 사회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무려 1년간이나 그런 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나는 고작 비건 지향 2개월 남짓.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적이었다. 지구, 환경, 동물 다 생각하면서 왜 스스로한테만은 제대로 못 한다고 채찍질을 했던가. 악마는 역시 디테일에 숨어 있었다. 겨울 도시락 전투력을 키우기 위해 보온도시락을 샀다.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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