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남 여수 한화 아쿠아플라넷에서 12살 벨루가(흰고래) ‘루이’가 폐사한 뒤 남은 두마리 벨루가의 방류 촉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쿠아플라넷 여수 조련사가 벨루가와 함께 있는 모습. 아쿠아플라넷 여수 누리집 제공
고래 친구들의 죽음 소식이 많은 한주입니다. 지난 20일 전남 여수 한화 아쿠아플라넷에서 12살 벨루가(흰고래) ‘루이’가 세상을 떠난 것에 이어, 22일 울산 남구 고래생태체험관에서도 큰돌고래 ‘아롱’이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경남 거제씨월드의 ‘돌고래 라이딩 체험’ 논란이 채 해결도 되기 전에 날아든 비보에 스스로 인간종임이 부끄러워진 한주였습니다. 야생 벨루가의 평균 수명은 30여년인데, 이들은 절반도 못 산 것이지요. 안녕하세요, 디지털부에서 비인간동물 뉴스를 전하는 ‘애니멀피플’의 김지숙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2014년 루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수 여행을 갔다가 아쿠아플라넷 여수를 찾은 것이지요. 난생처음 보는 벨루가 모습에 넋을 놓고 수조 안을 살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수조에는 두마리의 벨루가가 있었는데요.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수컷 벨루가 두마리가 그동안 한 수조에서 생활해왔다고 하니, 틀림없이 한마리는 루이였던 것입니다. 늦었지만 루이에게 사과하고 싶네요. ‘기념사진 찍겠다고 유리창 두드린 몰지각한 인간을 용서하렴.’
루이는 2012년 한국에 ‘팔려왔습니다’. 루오(수컷, 현재 11살), 루비(암컷, 10살)와 함께였죠. 세마리 벨루가의 고향은 러시아입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연구와 전시의 목적으로 반입됐습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은 당시 희귀종 보존 방안, 인공 사육 상태에서의 번식 가능 여부를 연구하기 위해 벨루가들을 데려오게 됐다고 밝혔죠. 더구나 벨루가들이 쇼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전시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벨루가는 돌고래만큼 인기가 많은 동물입니다. 흰 피부에 빙긋이 웃는 인상, 온화하고 친근한 성격 때문입니다. 특유의 아름다운 울음소리 또한 신비로움을 더하죠. 야생에서 벨루가는 주로 북극해와 오호츠크해, 베링해, 그린란드 주변 등 찬 바다를 오가며 생활합니다. 보통 수심 20~50m 내에서 활동하다가, 깊게 잠수할 때는 700m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하루에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보통 10~20마리의 대가족이 무리 지어 생활합니다. 지능이 뛰어나 냉전시대에는 러시아 첩보작전에 이용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던 벨루가가 고작 수심 6~7m 수조 안에 갇히게 된 겁니다. 연구 목적이든 전시 목적이든 벨루가에게는 그저 감옥일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거죠. 벨루가들은 어쩌다가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대한민국 수족관에 갇히게 됐을까요?
러시아의 프리 다이버 가야네 페트로샨은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 <자유로이 뛰놀 바다>(Born to be free, 2016)를 통해 폭로합니다. 야생에서 포획돼 수족관에 오는 벨루가들은 아직 어린 새끼들입니다. 무리 생활을 해서 포획당하는 당시 그물에는 벨루가 가족 전체가 잡히지만, 업자들은 이동이 용이하고 길들이기 쉬운 새끼들만을 포획합니다.
어미와 생이별을 한 어린 벨루가들은 수족관에 도착하기 전 이미 절반 이상이 폐사합니다. 열악한 이동 환경 탓입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육로로 운송되는 벨루가들은 척추가 부러지거나 지느러미가 찢어지고, 저온의 바닷물로 보호받던 흰 피부는 온몸에 화상을 입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고향인 루이 또한 이러한 ‘고래의 길’을 거쳐 우리 곁에 왔을까요. 야생 벨루가의 평균 수명은 30여년입니다. 포획된 절반은 죽어나가는 험난한 여정을 견디고 먼 타국까지 왔지만, 수명의 절반도 못 채우고 수조 안에서 스러진 겁니다. 수족관 고래들의 사인은 대부분 패혈증, 폐렴입니다.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세균을 못 이겨 생기는 병들이죠.
벨루가의 죽음은 지난해에도 큰 논란이 됐습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사육 중이던 벨루가 두마리가 3년 새 연이어 폐사하자, 동물단체들은 남은 벨루가들의 방류를 요구했습니다. 야생에서의 서식 환경을 고려하면 고래에게는 수족관 사육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주장이었죠. 롯데월드는 지난해 마지막 남은 벨루가 ‘벨라’의 방류를 결정하고, 최근 2021년까지 방류 적응장으로 이송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다시 한화와 해양수산부의 결정에 촉각이 모이는 이유입니다. 아쿠아플라넷에 남은 두마리 벨루가의 방류를 촉구하는 12개 시민사회단체는 24일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도 수족관에서 고통받고 있는 고래들의 딱한 사정을 알렸습니다. 현재 서울, 거제, 여수, 울산 등 전국 수족관에 남아 있는 고래류는 모두 30마리(벨루가 7마리)이고, 최근 10년간 국내 사육시설에서 죽어나간 고래 또한 30여마리입니다. 아시아 최초로 돌고래 ‘제돌이 방사 성공’이라는 훌륭한 선례를 지닌 한국이라면, 남은 절반의 생명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숙 디지털부 ‘애니멀피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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