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갈매기가 먹이를 선택할 때 인간의 행동을 참고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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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 고민할 때, 비슷비슷한 캠핑용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할 때, 괜찮은 한국 소설을 보고 싶을 때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선택을 참고한다. 맛집, 판매량 1위,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해변에서 사람들의 간식을 가로채고 날아가는 갈매기는 어떨까. 갈매기도 사람이 먹는 과자에만 손을 댄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영국 서섹스대학의 프란치스카 파이스트 연구원과 동료들은 2021년 5~6월과 2022년 3~5월 5개월 동안 영국 브라이턴 해변의 재갈매기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24일(현지시각)
과학저널 <뉴사이언티스트>에 공개했다.
영국 서섹스대학의 프란치스카 파이스트는 “많은 사람이 갈매기가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절취기생(다른 동물이 얻은 먹이를 빼앗아 먹는 행위)은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시사하기 때문에 재갈매기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국 해안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갈매기는 해변에서 사람의 간식을 낚아채 ‘음식 날치기’라는 악명을 얻고 있다. 재갈매기는 우리나라 동해안에 찾아오는 대표적 겨울 철새이기도 하다.
파이스트 연구원과 동료들은 갈매기 무리가 있는 해변에 파란색(치즈양파 맛)과 초록색(사워솔트 맛) 감자칩 봉지를 놓아두고 5m 뒤에서 새들의 행동을 촬영했다. 실험은 실험자가 앉아서 카메라로 갈매기를 지켜보는 것과 두 종류의 감자칩 중 한 가지 색의 봉지에서 과자를 꺼내 먹는 경우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영상을 분석한 결과, 갈매기들이 실험자의 행동을 참고해 선택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 실험자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는 과자 봉지에 접근하는 갈매기가 5분의 1(18.75%)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험자들이 과자를 먹었을 때, 갈매기의 48%는 실험자 곁으로 다가왔고 이 중 45%가 감자칩을 쪼았다. 감자칩을 건드린 갈매기의 95%는 실험자가 먹었던 것과 같은 색의 과자 봉지를 선택했다.
갈매기들의 48%는 연구자가 과자를 먹는 것을 보고 날아와 봉지를 확인했다. 이런 접근의 45%는 과자를 쪼아먹는 것으로 끝났으며 이 중 95%는 연구자가 먹었던 과자 봉지를 선택했다. 프란치스카 파이스트 영국 서섹스대학 제공
연구자들은 갈매기가 먹이를 선택할 때 사람을 참고하는 것은 갈매기가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춘 동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음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행동은 주로 인간과 오래 생활한 개나 말 등의 가축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동물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지거나 가리키는 곳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다. 재갈매기는 인간과 상호작용한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이러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재갈매기가 습득한 지식을 서로 배운다는 추정도 나왔다. 연구자들은 “갈매기 무리 안에 인간의 먹이에 대한 전문가가 있고, 개체 간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엑서터대학 재갈매기 전문가 마들렌 구마스 박사는 “이번 연구는 갈매기가 먹이가 있는 곳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의 종류에 대해서도 학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인간의 가공식품은 야생동물의 식단에 최근에 추가된 것으로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분명하다. 부정적 영향으로 종의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갈매기의 먹이 사냥을 다룬 이 연구는 생물학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렸다.
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 10.1098/rsbl.2023.0035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