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불가사리의 유전자 발현 과정을 3차원 구현 다른 동물들의 머리에 해당하는 구조 발견돼
애니메이션 스폰지밥 주인공 스폰지밥과 불가사리 뚱이(오른쪽). 니켈로디언 코리아 유튜브 채널 갈무리
불가사리는 불가사의한 동물이다. 몸의 일부가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데다가 독특한 별 모양의 신체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사리의 진화는 오랜 시간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한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그동안 불가사리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교 연구진은 1일(현지시각) “첨단 분자 및 게놈 분석 기술을 이용해 불가사리의 유전자 발현 과정을 살펴본 결과, 우리가 그간 불가사리 등 극피동물의 ‘몸’이라 여겼던 신체 부위가 실제로 ‘머리’에 가깝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불가사리의 몸이 사실은 머리에 가깝다는 연구가 나왔다. 사우샘프턴대학교 제공
극피동물은 바다에 사는 동물의 한 무리로 불가사리류와 성게류, 해삼류 등이 포함되며 몸이 방사형을 이루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극피동물은 신체 부위가 동일한 5개의 부분으로 배열된 ‘5방사 대칭형’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좌우대칭을 보이는 인간 및 수많은 다른 동물과는 아주 다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후구동물은 수정란의 배아 발생 때 처음 생긴 관이 항문이 되고 나중에 입이 만들어지는 생물을 말한다. 그와 반대로 입이 먼저 만들어지는 생물을 선구동물이라고 한다. 후구동물은 척삭동물(b 왼쪽), 반삭동물(b 가운데), 극피동물(b 오른쪽)으로 나뉘는데 불가사리는 대표적인 극피동물이다. 인간은 척삭동물에 포함된다. c는 그동안 극피동물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를 다룬 네 가지 가설. 사우샘프턴대학교 제공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사우샘프턴대학 제프 톰슨 박사는 “극피동물의 특이한 신체 구조는 다른 동물들의 일반적인 구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했다. 좌우대칭 동물들의 신체는 머리, 몸통, 꼬리 등으로 나뉘어있는 한편, 불가사리는 그저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각 부위가 어떻게 몸을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에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자 크리스 로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협력해 불가사리와 그 외 후구동물의 분자 표지(molecular markers)를 비교했다. 후구동물은 극피동물을 포함하는 더 넓은 동물 분류로, 대칭 구조를 지닌 인간 등 척추동물도 포함된다. 인간과 불가사리는 계통학적으로 굉장히 멀게 느껴지지만 같은 후구동물로, 선구동물인 문어 오징어 곤충 보다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극피동물과 척추동물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므로, 이들의 발달 과정을 비교함으로써 어떻게 극피동물이 독특한 신체 구조로 진화하게 됐는지 알아봤다. 일단 첨단 분자 및 게놈 분석 기술을 통해 불가사리의 발달과 성장 과정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펴봤다. 마이크로 시티(CT) 스캐닝 등을 통해 동물의 형태나 구조에 대해서도 자세히 조사했다. 그런 다음 알엔에이(RNA) 단층 촬영을 통해 유전자 구조에 대한 3차원 구조를 만들어, 발달 과정 중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기록했다.
알엔에이(RNA) 단층촬영을 통해 알아본 불가사리의 신체 구조(a). 회색은 골격, 노란색은 소화관(입), 보라색은 수관계, 파란색은 중추신경계를 나타낸다. 불가사리의 신체 구조를 알아보기 위한 영역 구분(b). 사우샘프턴대학교 제공
이를 극피동물과 아주 밀접하지만 좌우대칭 구조를 지닌 장새류, 그리고 척추동물과 비교했다. 그랬더니 장새류와 척추동물은 머리와 몸통의 유전자 구조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였지만, 불가사리의 유전자에서는 대부분 대칭동물의 머리에서 활성화되는 유전자 구조만 발견됐다.
제프 톰슨 박사는 “불가사리에게는 몸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불가사리의 유전자를 대칭 구조인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몸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불가사리의 외피에서는 발현되지 않았다. 극피동물의 신체 구조에서 몸은 곧 다른 동물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가사리도 완전한 성체가 되기 전까지는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애벌레로 삶을 시작한다. 연구자들은 성체 불가사리의 중앙에서 뻗어져 나온 ‘다섯 팔’이 문어의 촉수 같은 신체 영역이 아닌 머리의 연장선이라고 했다.
불가사리를 해부학적 구조로 요약하자면, 머리에 다섯 개의 돌기가 있으며 입은 땅을 향하고, 항문은 위쪽을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극피동물이 진화하는 어느 시점에서 몸통 유전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 화석 기록에서 중간 단계를 가진 동물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가사리는 몸이 중심부에서 뻗어 나간 다섯 개의 구조 아래 많은 관족들이 달려있다. 관족으로 이용해 이동하고, 먹이를 움켜쥔다. 게티이미지뱅크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서스턴 라칼리 박사는 이 연구가 불가사리와 같은 5방사 대칭형 체형이 어떻게 진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면서 “간단히 말해 불가사리는 입술로 해저를 걷는 것이다. 먹이를 입으로 가져가는 원래의 기능이 변형돼 입술 가장자리로 걷기를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영국 가디언에 밝혔다.
불가사리는 신체 중앙부 아래(배)에 입이 있고, 위쪽(등)에 항문이 있다. 배에는 각 방사형 구조를 따라 많은 관족이 술처럼 달려있다. 심장이나 뇌는 없지만, 순환계가 진화하지 않은 대신 독특한 수관계(물을 몸속에 넣어 이것을 이용하는 기관)를 통해 호흡과 배설, 이동과 먹이 수집을 하고 있다.
인용 논문: Nature, DOI:doi.org/10.1038/s41586-023-06669-2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