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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동물들의 고독한 수용소에 갔다

등록 2017-09-14 14:37수정 2017-09-14 19:28

[애니멀피플] 실내체험동물원 방문기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자, 원숭이…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소비되는 동물들
이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체험’할까
A체험동물원의 16살 암사자가 우리에 앉아 있다.
A체험동물원의 16살 암사자가 우리에 앉아 있다.
소풍의 계절, 나들이 공간으로 인기가 많은 실내체험 동물원을 찾았다. 9월13일 실내체험 동물원 두 곳을 방문했다. A체험동물원은 어린이집, 유치원, 각종 기관에 직접 동물들을 데리고 가는 ‘이동동물원’을 겸하는 곳이고, B체험동물원은 인근 가정과 유치원 등에서 ‘생태 체험’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고인 물을 핥던 사자

박제된 것 같은 동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9월13일 경기도에 위치한 A체험동물원 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가 우리를 맞았다. 동물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분변 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복도와 계단은 깨끗했지만, 사육장에는 철창에 털 뭉치가 뒤엉켜 있고, 유리창은 안이 일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오염돼 있었다. 토끼 한 무리가 인형을 여러 개 쌓아둔 것처럼 울타리 구석에 꼼짝 않고 모여 있었다. 거북이가 시멘트 바닥 위를 느릿느릿 걸었다. 닭과 공작과 비둘기가 한 사육장 안에 모여 있었다. 이구아나는 복원한 공룡 화석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암사자 한 마리가 철창 안 타일에 엎드린 채 지루한 듯 바닥에 고인 물을 핥고 있었다.

A체험동물원은 실내체험장과 야외체험장이 나뉘어 있었다. 1천원에 판매하는 채소스틱을 사서 동물들에게 나눠주는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한 무리의 기니피그들이 관객이 들고 흔드는 당근에 반응해 우르르 모였다. 야외 우리에 있는 동물들은 겨우 그늘을 찾아 몸을 뉘었다. 일본원숭이는 화가 난듯 이따금 철창을 흔들었다. 코아티는 가로 80㎝ 남짓한 철창 안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정형행동(사육시설에 격리된 야생동물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 “코아티나 너구리 같은 동물들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들이다. 이렇게 갇힌 공간에서 지내며 특히 정형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동행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 전채은 대표가 말했다.

실내에는 친칠라, 앵무새, 스컹크, 설가타 거북이, 악어, 미어캣, 새끼 일본원숭이, 사자 등이 있었다. 16살의 암사자는 국내 다른 동물원에서 태어나 이곳까지 와 평생을 철창 안에서 지냈다. 차가운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가로 1.5m, 세로 2m 가량의 나무 침대가 한 개 놓여 있었다. 유리 한장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봤다. 사자 등 고양이과 동물은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도전으로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변하지만, 이곳의 사자는 미동도 없이 순하게 앉아 있었다. 유리창 옆으로는 철창이 쳐져 있었다. 사육사가 철창에 손을 가까이 대자 사자가 가까이 다가와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볐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사육사에게 “사자가 외로워하지 않냐”고 묻자 사육사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동물이지만 어쩔 수 없죠”라고 대답했다.

사자는 이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이 동물원에 사는 일본원숭이 부부가 새끼를 낳으면서 인기가 새끼 원숭이에게 옮겨갔다. 새끼 원숭이는 실내의 작은 장에 들어 있다가 궁금한 듯 바깥을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태어난 지 90일 정도 됐다는 새끼 원숭이는 “젖을 떼기 위해” 부모와 떨어져 있었다. 전채은 대표는 “포유류들은 1달 남짓 만에 젖을 떼지 않는다. 원숭이들은 사람과 비슷하게 모유를 먹는다. 아기 원숭이가 인기가 많으니 엄마와 떨어져 실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궁금한 동물은 만져 볼 수 있어요”

B체험동물원의 환경은 비교적 깨끗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도 없었다. 계산을 하고 나니 동물원 주인이 친근하게 얘기했다. “궁금한 동물 있으면 얘기하세요. 웬만한 친구들은 다 꺼내서 만져 볼 수 있어요.”

실내에 있는 포유류들은 거의 다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다. 동물원 주인은 커다란 뱀을 꺼내 만져보라고 권했다. 야외에는 코아티, 토끼, 돼지, 흰공작, 미어캣, 프레리독, 라쿤, 너구리, 과나코 등이 있었다.

B체험동물원의 프레리독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먹이를 낚아챘다.
B체험동물원의 프레리독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먹이를 낚아챘다.
사육장 가까이 다가가자 동물들이 우르르 몰렸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사람들과 마주했다. 옆에 있는 한 어린이 관람객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배가 많이 고픈가 봐. 자다가도 먹을 게 나오니까 달려오네.” 당근을 던져주자 동물들은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먹이를 차지했다. 밥그릇엔 흙먼지가 들어앉아 있었고 동물들은 굶주려 보였다. “이렇게 당근을 잘 먹어도 밥을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라요. 밤에 사료를 듬뿍 줘요.” 사육사가 말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과 사육사의 관계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A체험동물원에서 사자는 사육사가 철창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렸다. 사육사가 먹이를 한가득 들고 움직이자 어쩔 줄 모르며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기도 했다. B동물원의 사육사는 동물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동물들은 순한 눈으로 그가 부르자 철창으로 우르르 몰렸다. 그들은 친근해 보였다.

동물들을 보는 내내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동안 그림책이나 사진, 영상물에서 봐왔던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동물들은 어디 있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 것만 같았다. ‘왜 저 아기돼지는 우리가 주는 당근을 이토록 허겁지겁 먹는 거지?’ ‘왜 이 원숭이는 엄마, 아빠와 같이 있지 않는 거지?’ ‘왜 저 코아티는 좁은 우리에 갇혀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왜 이 친구들은 책에서 본 것처럼 들판을 뛰놀지 않고 유리장 안에 갇혀 있는 거지?’ 어떤 질문에도, 우리 어른들은 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글·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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