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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개들의 아우슈비츠’에서 구조돼 사람을 구하다

등록 2017-12-25 07:01수정 2017-12-25 10:09

[애니멀피플] ‘안락사 제로’ 일본 피스완코 프로젝트
가스실에서 죽는 일본 유기견들
지자체 보호소에서 데려와
사회화, 구조견 훈련으로 재탄생

‘저혈당 알림견’으로 크는 ‘아니모’
트라우마 시달린 개는 물론
사람도 생명의 공존을 배운다
버려진 개 ‘사미’는 3년 전 피스윈즈재팬에서 구조돼 현재 피스완코 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사미는 이른바 ‘위험한 개’다.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 살처분 1순위가 되는 사미와 같은 개들은 사람에게 학대받고 버려진 상처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버려진 개 ‘사미’는 3년 전 피스윈즈재팬에서 구조돼 현재 피스완코 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사미는 이른바 ‘위험한 개’다.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 살처분 1순위가 되는 사미와 같은 개들은 사람에게 학대받고 버려진 상처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체중 20㎏의 대형견 ‘사미’는 버려진 개다. 2014년 4월26일은 사미가 일본 히로시마현의 산골마을 진세키고원의 주민이 된 날이었다. 사미는 이날 히로시마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일본의 국제 재난구호단체인 ‘피스윈즈재팬’이 운영하는 보호소로 옮겨왔다. ‘동물애호센터’라고 불리는 지자체 보호센터에 며칠만 더 머물렀더라면, 사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5~6일 일본 히로시마 지역을 중심으로 유기견 보호 활동을 하는 피스윈즈재팬의 보호시설을 찾았다. 피스윈즈재팬은 유기견 구조·보호를 위해 ‘피스완코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지자체 보호소에서 살처분 공고를 받은 개들을 데리고 와 사회화 훈련, 구조견 훈련·보호·입양을 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일본의 유기견 보호센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고 기간이 지나면 개들을 살처분한다. 한가지 다른 점은 한국의 경우 사람이 직접 개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고, 일본은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가스실에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질식사시킨다. 사람이 직접 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반복할 때 오는 심리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3분간 개들은 가스실에서 발톱으로 문을 긁고 울부짖는다. 취재하며 만난 일본 사람들은 이곳을 ‘개들의 아우슈비츠’라고 표현했다.

3년 전 길을 떠돌다 발견된 사미도 가스실이 설치된 유기견보호소를 거쳐 피스윈즈재팬이 운영하는 피스완코 보호소로 옮겨 왔다. 피스완코 보호소는 검역소·입양센터·보호소 등으로 나뉜 1~4견사로 구성돼 있는데, 사미는 이 가운데 사나운 개들만 수용된 4견사에서 지낸다. 4견사에 머무는 개들을 이곳 사람들은 ‘광견’이라고 표현했다. 사나운 개, 흥분하는 개라는 뜻이다. 사미를 관리하는 피스완코 매니저 하야시 유키는 “위험한 개는 사람이 만든 개”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개, 학대의 경험이 있는 개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성을 띤다”고 덧붙였다. 날 때부터 사람 손에 길들지 않은 들개는 오히려 사람과 접촉 경험이 없어 사람이 오면 피하거나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므로 ‘위험한 개’는 정확하게 말하면 ‘상처받은 개’들이다. 하야시는 사미에 대해 “주인에게 맞았거나 버려진 기억 때문에 사나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점차 사람과 지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은 전국적으로 개 약 4만1000마리, 고양이 약 7만2000마리를 살처분했다. 10년 전 살처분된 개가 13만마리에 이르렀던 것에 견줘 많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매주 2000마리 이상의 개, 고양이가 살처분되고 있는 셈이다. 2010년 ‘피스완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히로시마현은 일본에서 살처분 동물 개체 수가 가장 많았다. 4마리에서 출발한 유기견 구조 프로젝트는 현재 약 1800마리를 보호하는 데 이른다.

동물전문 매체 ‘애니멀피플’이 방문한 지난 6일은 마침 피스윈즈재팬 활동가들이 지자체 유기견보호소에서 개들을 데리고 오는 날이었다. 히로시마현 미하라시에 있는 히로시마현동물애호센터에서 이날 피스완코 보호소로 이주하는 개들은 총 6마리였다.

4개의 구획된 철창으로 이뤄진 보호소에는 같은 공간에 개들이 살처분되는 가스실도 함께 있었다. 철창에 붙은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철창이 점점 좁아지며 개들을 한쪽으로 몬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개들은 움직이는 철창에 의해 천천히 가스실 방향으로 밀려나고, 가스실 문이 닫히면 개들은 죽음에 이른다. 공고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남은 개들은 그 현장을 철창 너머로 고스란히 지켜봐야 한다. 피스완코의 아베 마코토 매니저는 “조금 전까지 같은 철창에 머물던 개가 가스실에 들어가 낑낑거리며 죽어 나오는 걸 지켜본 개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센터 사람들도 살처분 업무에서 벗어난 이후로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일본 히로시마현 미하라시에 있는 히로시마현 동물애호센터에서 피스윈즈재팬의 활동가로 일하는 아베 마코토(왼쪽)가 개들을 구조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히로시마현 미하라시에 있는 히로시마현 동물애호센터에서 피스윈즈재팬의 활동가로 일하는 아베 마코토(왼쪽)가 개들을 구조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스완코 보호소에서 개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3년 이상 사회화 훈련을 받으며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게 교육받는다. 훈련을 특히 잘 받는 개의 경우 재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구조견으로 길러지기도 한다. 피스완코의 마스코트 격인 구조견 ‘유메노스케’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메노스케는 생후 4개월에 구조돼 훈련을 받은 뒤, 히로시마 산사태, 네팔 지진 현장에 투입돼 사람을 구했다.

최근에는 일상적 구조 활동에도 개들을 투입하기로 했다. 제1형 당뇨 환자를 위한 저혈당 알림견을 키우는 것. 제1형 당뇨병을 앓는 경우 환자가 의식하지 못한 채 혈당이 서서히 떨어지다 저혈당 쇼크가 올 수도 있다. 의식을 잃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 저혈당 알림견으로 훈련받은 개들은 사람이 저혈당 쇼크로 쓰러지기 전에 호흡에서 나는 미묘한 냄새를 감지한다. 냄새를 맡으면 짖어서 환자에게 상태를 알려 저혈당 쇼크를 방지한다.

지난가을 임신한 어미 개의 뱃속에서 구조돼 보호소에서 태어난 개 ‘아니모’가 피스완코의 첫 저혈당 알림견으로 키워질 예정이다. 강아지 시절부터 보호소에서 길러진 개들은 사람과 익숙해 일상에 투입되는 데 어려움이 적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살처분되며 세상의 잉여로 취급되던 떠돌이 개들은 이렇게, 제2의 생을 얻어 오히려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개로 길러지고 있었다. 피스윈즈재팬 오니시 준코 프로젝트 매니저는 “2020년까지 일본 전체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피스윈즈재팬은 내년께 한국에서도 ‘살처분 제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히로시마/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피스윈즈재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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