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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너구리야, 다음번엔 차 없는 곳에 태어나렴

등록 2018-04-05 10:00수정 2018-04-05 10:09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내 이웃의 동물들
새끼 셋과 마을 헤매는 너구리 가족
환경 적응력 뛰어난 동물이지만
먹을 것 찾다 큰 개에 위협당하고
로드킬과 질병 시달리는 고단한 삶
아무 데나 잘 살고, 아무 거나 잘 먹는 너구리는 적응력이 좋은 동물이다. 주로 산에 살지만 굶주림에 사람이 사는 곳 근처로 내려왔다가 ‘유해동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아무 데나 잘 살고, 아무 거나 잘 먹는 너구리는 적응력이 좋은 동물이다. 주로 산에 살지만 굶주림에 사람이 사는 곳 근처로 내려왔다가 ‘유해동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날은 유독 날이 맑았다. 하늘이 파랬고 강물도 푸르렀다. 이웃 언니와 함께 나선 강변 산책길은 그날따라 매우 가벼웠다. 한창 혈기 왕성한 반려견 천둥이가 그 큰 덩치로 사방천지로 날뛰지만 않았다면 더욱 경쾌했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 달려가는 천둥이에게 끌려가다시피 따라가느라 연신 헉헉댔다. 그러던 중 녀석은 어느 곳에서 난데없이 풀숲을 쏘아보며 귀청이 떨어지도록 짖는 게 아닌가.

“천둥아, 왜 그러니? 풀숲에 뭐가 있는 거야?” 이웃 언니가 천둥이를 달래며 흥분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풀숲에 새라도 있나 봐요. 역시 사냥개의 후손이 맞네요.” 리트리버종인 천둥이는 물속에서도 사냥감을 회수해 온다는 수렵견종이다. 그쪽에 무언가 있지 않고서는 저토록 맹렬하게 짖어댈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줄을 단단히 잡고 길을 지나치려 해보았지만, 역시나 천둥이는 짖기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금방이라도 풀숲으로 달려들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풀숲 속에서 동그란 두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너구리였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나니 한편으론 반가웠다. 그런데 그런 마음도 잠시, 너구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입을 씰룩거리며 쏘아보는 눈빛이 우리 쪽을 금방이라도 공격하려는 태세였다.

아! 이유가 있었다. 너구리의 뒤로 작은 동물들이 두세 마리 어른거렸다. 녀석은 새끼를 지키려는 거였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언니! 천둥이 꼭 잡아! 아니, 안아 올려!”

“왜! 무슨 일인데? 위험한 동물이라도 있어?”

“아기들을 데리고 있는 너구리야. 천둥이 때문에 무척 겁을 먹었어. 천둥이가 달려들면 너구리도 달려들 거야.”

틀림없이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렵 본능이 살아난 천둥이가 너구리들에게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어미 너구리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천둥이와 싸우려 들 게 뻔했다. 끔찍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 때문이 아니라도 일단 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구리는 갯과의 동물로 광견병, 디스템퍼, 개선충증 등을 개에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야생 너구리와 개의 접촉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천둥이를 안아들고 얼른 자리를 떴다.

그리고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너구리와 마주쳤다. 며칠 뒤, 마을의 길냥이 급식소 근처에 너구리 가족이 나타났다. 어미 너구리와 뒤로 따르는 새끼가 3마리인 걸 보니, 그때 봤던 그 너구리 가족인 듯했다. 아마도 먹이가 부족해서 길냥이 급식소에 남은 고양이 사료를 먹으러 온 모양이었다.

또 얼마 후에도 너구리 가족을 보았다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그리고 기어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안타깝게도 새끼 중 한 마리가 마을을 지키는 큰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이웃 언니가 집에 와 말했다. “차라리 산이 더 낫지 않나? 산에 있었으면 개에게 물려 죽지 않았을 텐데….”

이웃 언니는 너구리에 마음이 많이 쓰인 듯했다.

“아마도 산에 먹이가 부족해 약한 어미가 마을로 내려왔을 거예요. 좀 자라면 아기들도 독립하면서 산으로 돌아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게. 내가 뭐 해줄 게 없네. 길고양이 급식소에 너구리 몫으로 사료 그릇을 하나 더 늘려주긴 했는데, 너무 불쌍해.”

너구리에게 사람 사는 동네는 위험한 것 투성이다. 새끼 너구리가 로드킬을 당했다.
너구리에게 사람 사는 동네는 위험한 것 투성이다. 새끼 너구리가 로드킬을 당했다.
다행히 한동안 너구리 가족은 그런대로 잘 살아가는 듯했다. 한참 지나서 봤을 때는 새끼 너구리도 거의 어미 크기만큼 자라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도로에 누런 털 뭉치가 하나 보였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어 쳐다보지 않고 싶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냥 빗자루뭉치나 짚단을 내가 잘못 본 것일 거야.’ 자동차로 지나쳐 가려는데, 도로 옆집에 사시는 한 이웃이 그 털 뭉치를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면서 투덜거리셨다. “에이, 저거 어쩌지. 더럽고 징그럽고… 누가 좀 치워야 할 텐데.”

차를 멈추었다. 수의사로서 공중방역상의 문제도 알면서 눈을 감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또한, 그냥 두면 다른 차들이 그 주검을 또 치고 갈 수도 있었다. 두 번 고통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서 자세히 보니 그 새끼 너구리였다. 가슴팍엔 부스럼이 난 것이 개선충증에 감염된 듯했다. 개선충증은 피부에 감염되는 기생충증으로 심하면 온몸이 부스럼으로 딱딱한 갑옷처럼 굳는다. 몹시 가려워서 긁다 보면 피가 나고 심한 염증 등으로 고통이 심하다. 어린 나이에 독립하는 과정에서 먹이를 찾아 길을 헤매던 중에 감염으로 약해진 몸이 차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너구리의 주검을 수습하여 산속 양지바른 곳에 깊이 묻었다. 혹시 다른 동물들이 파헤치다 질병에 옮을까 봐 깊숙이 묻은 후 큰 돌로 눌렀다.

둘째아이가 나를 따라와서 기도해주었다. “너구리야, 다음에 태어나면 병도 없고 큰 개도 없고 차도 없는 먹을 것이 많은 좋은 세상에서 꼭 태어나렴!”

아이가 세상을 떠난 너구리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다음 생엔 부디 위협 없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길.
아이가 세상을 떠난 너구리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다음 생엔 부디 위협 없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길.

내 이웃의 동물 알아보기

너구리는 산에서 주로 살며 열매를 주워 먹거나 , 나뭇잎을 뒤져 벌레를 잡아먹고 삽니다 . 때론 죽은 동물의 썩은 사체도 먹어 치워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고마운 동물입니다 .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살며 , 다른 짐승보다 사람들이 덜 잡아대는 덕분에 우리나라의 너구리의 수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 하지만 , 광견병 , 개선충증 , 디스템퍼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밀렵꾼들이 설치한 쿷과 올무 , 도로의 로드킬로 많은 수가 다치거나 죽습니다 .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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