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고 구본무 회장이 만들라 했던 ‘새 도감’

등록 2018-05-26 09:00수정 2018-05-26 13:49

[애니멀피플] 이병우의 새 보기 좋은 날
탐조인들이 새를 관찰하고 있다. 관찰 도구와 도감은 탐조의 필수 요소다.
탐조인들이 새를 관찰하고 있다. 관찰 도구와 도감은 탐조의 필수 요소다.
탐조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있다. 탐조하는 사람, 탐조하는 단체, 관찰 도구, 새들 서식지의 보존 등이 그 조건이다. 그 중에서 아주 핵심적인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도감이다. 좋은 도감의 유무를 탐조 문화 발전의 조건으로 보기도 한다.

도감(圖鑑)은 한자 뜻대로 ‘그림이나 사진을 모아 실물 대신 볼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영어로는 ‘일러스트레이티드 북’(illustrated book) 또는 ‘필드 가이드’(field guide)라고 하는데, 휴대용 도감이라는 뜻을 가진 필드 가이드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도감의 필수 조건은 휴대가 간편하면서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다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도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_________
한국 대표 조류도감의 탄생

많은 탐조인들은 2000년에 발간된 ‘야외 원색도감 한국의 새’(한국의 새)를 한국 탐조 역사에 있어 아주 큰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발간된 도감과 일부 학자들이 발간한 사진 도감을 병행해 사용했다. 사진 도감에 실리는 사진은 촬영 환경과 개체의 개성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한 종을 표준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그림 도감이 절실하던 차였다.

그때 엘지(LG) 상록재단이 ‘한국의 새’를 발간했다. 당시 한국에는 새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세밀화 화가가 없었다. 엘지는 일본의 새 도감을 그린 타니구치 타카시의 그림을 실어 도감을 완성했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서식지로서 나라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이미 좋은 새 그림을 가진 일본의 책을 활용한 것은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나라 화가를 양성하여 그렸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세계 조류 축제 중 하나인 ‘아시아 버드 페어’(ABF)에서 ‘한국의 새’ 도감을 활용하는 참가자들.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세계 조류 축제 중 하나인 ‘아시아 버드 페어’(ABF)에서 ‘한국의 새’ 도감을 활용하는 참가자들.
현장에서 도감은 새 식별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장에서 도감은 새 식별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엘지는 왜 이 도감을 만들었을까? 최근 작고한 엘지 구본무 회장이 쓴 초판 발간사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구 전 회장은 오랜 취미로 새를 관찰해온 탐조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발간사에서 “탐조 길에 오르며 외국에서 발간된 도감을 챙길 때마다 우리나라에도 간편하게 휴대하면서 참고할 수 있는 조류도감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왔는데, 마침 엘지 상록재단이 자연 생태계 보전 사업의 목적으로 우리말과 영문으로 된 도감을 만들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조류도감의 역작 ‘한국의 새’를 아시나요
탐조가였던 고 구본무 엘지 회장이
18년 전 의욕적으로 펴낸 새 그림 도감
한국 조류도감의 ‘역작’으로 떠올랐고
새는 전문가에서 대중에게 날아왔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의 발간으로 학자들의 조류 연구 수준의 새 보기 활동에서 보통의 탐조 문화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한다.

이후 꽤 괜찮은 도감들이 몇 종 더 출간됐다. 그런데 대부분 사진 도감이었고, 그림 도감 몇 종은 시장성에 맞지 않아 안타깝게도 절판됐다. 엘지 상록재단 도감도 시장에서 수익성은 없을 것이다. 한 재벌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매우 훌륭한 도감을 갖게 되었지만, 실상 자연과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결단은 결코 재벌이라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_________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엘지가 좋은 뜻으로 책을 계속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유통 문제는 풀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대형서점에 가도 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는 구매가 가능하지만 나이 드신 분이나 외국인의 경우 접근이 어렵다. 상록재단은 ‘한국의 새’ 애플리케이션을 책의 약 30% 가격인 1만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체험판은 무료인데 너무 적은 종만 볼 수 있어 도감으로서 큰 의미는 없다.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돼 활용될 수 있도록 유통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구본무 회장의 발간사에서처럼 그의 소망이, 그리고 누구나 바라는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새가 자유와 평화,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듯이 우리의 자녀들 또한 복된 미래를 누려야 할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들이 이 도감을 펼쳐놓고 더욱 많은 새의 이름과 그 생태에 관한 견문을 넓히고 나아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값진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이병우 에코버드투어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소·돼지 도살 직전까지 이런 고통 줘야 하나?…“당장 개선해야” 1.

소·돼지 도살 직전까지 이런 고통 줘야 하나?…“당장 개선해야”

[웹툰] 우린 계속 걷자 2.

[웹툰] 우린 계속 걷자

눈만 오면 펄쩍펄쩍 ‘개신나는’ 강아지들, 이유가 뭔가요? 3.

눈만 오면 펄쩍펄쩍 ‘개신나는’ 강아지들, 이유가 뭔가요?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5.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