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물떼새(왼쪽)와 불편한 이웃사촌인 장다리물떼새. 흰물떼새는 둥지 주위를 오가는 ‘꺽다리 이웃’이 둥지와 품고 있는 알을 밟을까봐 불안하기만 하다.
장다리물떼새가 충남 천수만에서 번식했다. 2년 전 간월호 주변 유수지 공사장에서다. 간월호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대형 유수지에 빗물이 고여 새가 번식할 환경이 됐다. 군데군데 드러난 모래톱에 흰물떼새와 꼬마물떼새도 둥지를 틀었다. 아주 가깝게 둥지를 만든 곳도 있었다. 장다리물떼새가 알을 품다 일어서면 흰물떼새의 둥지 안이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덩치 작은 흰물떼새는 알을 품을 때마다 옆집 장다리물떼새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꺽다리 이웃’이 둥지를 드나들며 자신의 둥지 옆을 지나갈 때는 혹시 해를 입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이웃사촌이지만 온갖 미운 정이 들 정도였다.
올봄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초봄부터 내린 잦은 비에 유수지 바닥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둥지를 틀 만한 장소가 아예 없어졌다. 주변에서 새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흙을 쌓아 둥지 터를 만들었지만, 새들은 사람 발길 뜸한 논두렁 한켠을 찾아 둥지를 짓고 있는 중이다.
천수만은 장다리물떼새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1998년 처음 여기서 둥지를 발견하기 전에 장다리물떼새는 나그네새로만 알려져 있었다. 봄가을에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갈 때 잠시 우리나라에 들르는 줄 알았다. 번식이 처음 확인되고 대표적 여름철새가 된 셈이다.
천수만에서 새들이 둥지를 짓기 시작한 것은 간척지의 특이한 환경 때문이다. 볍씨를 항공기를 이용해 뿌리는 직파 농법을 사용하고 논을 갈거나 수확할 때는 초대형 농기계를 이용했다. 직파한 씨앗은 불규칙하게 자랐고 대형 트랙터는 일반 논처럼 논을 고르게 갈지 못했다. 새들이 도래하는 4월말에서 5월초 논은 마치 새들이 좋아하는 습지처럼 모가 불규칙적으로 자랐고 군데군데 흙더미가 물 밖으로 드러났다. 사람 출입이 거의 없는데다 논의 물 수위도 일정하게 관리되는 편이다. 논에서는 장다리물떼새의 중요 먹이인 깔따구도 집단으로 번식했다.
지금은 천수만도 많이 변했다. 농지를 일반 매각하면서 일반 논과 같은 방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모내기를 하고 논마다 곱게 써레질을 하면서 논 안엔 둥지를 지을 장소가 없어져 버렸다. 주 먹이인 깔따구 수도 급격하게 줄었다. 사람들 출입도 잦아져 새들에 대한 간섭도 심하다. 서식지가 변하니 장다리물떼새 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글·사진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머리와 몸통의 길이에 비해 두 배 이상인 긴 다리를 가지고 있는 장다리물떼새.
흰물떼새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먹이를 잡는다.
장다리물떼새가 나타나면 흰물떼새는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흰물떼새가 작은 나뭇가지로 은폐한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다.
장다리물떼새가 기다란 다리를 뽐내듯 걷고 있다.
짝짓기를 마친 암수가 서로 부리를 X자로 만들고 목을 길게 빼고 잠시 걸으며 인사를 하듯 헤어지는 의식을 보인다.
알을 품고 있는 둥지 옆으로 흰물떼새가 접근해도 장다리물떼새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알만 있는 빈 둥지에 흰물떼새가 접근하자, 이웃 장다리물떼새가 경계를 하고 있다.
흰물떼새 부부가 장다리물떼새 주변으로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