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쪽의 주이드회크 뉘우쿱 마을에 설치된 박쥐 친화적인 가로등. 시그니파이 제공
세계 최초로 박쥐에 친화적인 가로등이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 설치됐다.
조명업체 시그니파이(전 필립스조명)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쪽의 주이드회크 뉘우쿱 마을에 지속가능한 주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박쥐 친화적인 가로등을 제작·설치했다”고 밝혔다.
이 가로등은 거리에 충분한 밝기를 제공하면서도 박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특수 제작됐다. 시그니파이는 네덜란드 생태연구소와 와닝겐대학과 함께 박쥐가 인공조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고, 그 결과로 이 가로등을 내놓았다.
박쥐는 밤에 먹이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야행성 동물이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박쥐는 밤을 선택했으며, 대신 초음파를 내보내고 반송파를 받아 위치를 파악하는 ‘반향정위' 능력을 갖추게 됐다. 기존 연구 결과를 보면, 박쥐는 가로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나트륨등 등 인공조명을 회피하는 것으로 관찰된 바 있다.
윗수염박쥐는 붉은색 조명을 회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그니파이 제공
시그니파이가 설치한 박쥐 친화적인 가로등은 붉은빛을 띤다. 하얀빛이나 초록빛 전구를 박쥐가 싫어하지만, 붉은빛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서다. 네덜란드 생태연구소의 카미엘 스포엘스트라 박사 등 연구진은 지난해 5월
학술지 ‘영국왕립학술원 생물과학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에서 “윗수염박쥐(Myotis)와 토끼박쥐(Plecotus)의 종은 녹색과 하얀 조명을 회피했지만, 붉은 조명에서는 어두울 때나 밝을 때나 같은 수준의 밀도를 보였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
박쥐 친화적인 가로등의 붉은빛 조명은 약간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띤다. 하지만 다른 가로등과 달리 벌레가 많이 꼬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 마을은 박쥐를 비롯해 여러 희귀 동물과 식물의 서식지에 가깝다. 유럽연합이 희귀종의 번식을 위해 지정한 자연보호구역 ‘나투라 2000' 근처여서, 빛 공해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박쥐 친화적 가로등이 얼마나 멸종위기종 보호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 이 기사가 참조한 논문: Spoelstra, Kamiel, et al. "Response of bats to light with different spectra: light-shy and agile bat presence is affected by white and green, but not red light." Proc. R. Soc. B 284.1855 (2017). DOI: 10.1098/rspb.2017.0075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