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총을 맞은 새끼호랑이 사이한. WWF러시아 제공
우리 가족은 참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진 숲에 살고 있었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리는 매우 추운 곳이다. 하지만, 사슴이나 멧돼지 등 먹이가 제법 많아 살기가 괜찮았다. 그리고 인간들이 주변에 없어 우리 아무르호랑이들이 터를 잡고 지내기 좋았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100년 전만 해도 아무르호랑이는 저 아래 큰 강을 지나 몇날며칠을 달려 태산같이 높은 산이 있는 곳까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태산같이 높은 산이 있는 곳은 인간들이 한반도라고 부르는 곳인데, 그곳은 여기보다 좀 더 따뜻하고 고라니, 멧돼지 등 먹이가 아주 풍부해 뭇짐승의 왕인 우리 호랑이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야생에 얼마 남지 않아 같은 종족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사냥을 간 사이 잠시만 산책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아기 호랑이들아, 절대 보금자리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인간들이 우리를 항상 노리고 있단다.”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의 털가죽이 아름답다고, 혹은 몸의 일부분이 약이 된다면서 총, 올무, 덫 등 밀렵도구로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귀가 따갑게 한 말을 생각하며 나름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뛰어가는 토끼를 다가 그만 인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탕! 정신없이 달려 도망가는데, 코와 눈 부분이 화끈거리며 뜨거운 액체가 흘렀다. 고통스러웠다. 일단 최대한 도망가 풀숲에 숨었다. 나에게 총을 쏜 인간들은 더 이상 나를 아오지 못했지만, 결국 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인간들 소리가 났다.
‘아!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던 중에도 나는 발버둥쳤다. 하지만 인간들은 나를 검은 상자 속에 가두었다. 그리고 무수한 바늘로 마구 찔러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도 잠깐, 편안했던 숨이 다시 가파졌다. 그러던 나를 바라보던 인간들은 푸른 옷을 입은 다른 여러 인간들을 불렀다. 그리고 나를 아주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몽사몽 눈을 뜨니 나와 비슷한 한 살이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암컷 호랑이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반가워! 난 라조라고 해! 재활센터에 온 것을 환영해!”
“난
사이한이야.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재활센터라니?”
“여기는 사람들이 너나 나처럼 다친 호랑이들을 데려다 치료하고 보호해주는 곳이야.”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라조가 말했다.
“밀렵꾼 총에 맞은 너를 보호구역직원들이 발견해서 이곳으로 데려왔대. 넌 정말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고? 그러면 나를 잡아 검은 상자에 넣은 인간들이 나를 구해줬다는 건가?
“게다가 너 얼굴에 총을 맞고도 살았다며? 엄청난 수술을 견뎌냈다던데, 정말 대단한 걸.”
내 코와 눈 주위에 난 상처를 냄새 맡던 라조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어쩐지 나를 돌봐주던 푸른 옷을 입은 인간들은 눈빛이 선했다.
“인간들은 참 이상해, 그치? 어떤 이들은 총을 쏘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치료해주고, 알다가도 모르겠지 뭐야.”
라조가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라조는 지난겨울 엄마가 사고로 죽은 뒤 배고파 헤매다가 인간들의 쓰레기장에서 구조되었다고 했다. 발바닥을 다친 라조는 인간들의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둘 다 가족을 잃어버리고 다쳤던 공통적인 기억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았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난 뒤 우리는 바깥에 있는 넓은 수풀이 있는 방사장으로 옮겨갔다. 방사장에 오고선 선한 눈의 인간들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샌가 우리 모르게 먹이를 놓고 가곤 했다. 가끔은 마치 엄마호랑이처럼 살아있는 먹이를 사냥훈련을 위해 넣어 주기도 했다. 라조와 나는 놀다가 싸우다가 때론 먹이사냥연습을 하면서 함께 커 나갔다.
사이한(왼쪽)과 라조가 바위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WWF러시아 제공
자연방사지로 옮겨지는 사이한. WWF러시아 제공
다시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자 인간들은 갑자기 우리를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수 시간 덜컹거리는 상자 속에 갇혀 이동한 뒤 잠에서 깨어나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라조는 그저 신난 듯 했다.
“사이한! 이곳은 꽤 넓은데! 한참을 마구 뛰어 다닐 수도 있어.”
울타리 뒤로 진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들어봐! 진짜 늑대 울음 소리야!” 내가 말했다.
며칠 뒤 울타리문이 열리자, 우리는 주저 없이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진짜 사냥감들이 있었다. 그동안의 사냥 훈련을 기억하며 나는 첫 사냥에 성공했다. 늑대였다.이후로도 난 수차례 사냥을 성공하며 어른 수컷 호랑이로서 이 숲을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오늘도 난 내 영토를 둘러보면서 숨을 들이마신다. 아쉽게도 내 영토 한쪽 편 끝으로는 숲이 끊어지고 인간들의 구조물들이 가득해 건널 수가 없었다.
라조가 물었다.
“저 곳을 넘어가면 무엇이 있을까?”
“글쎄, 혹시 그 곳이 한반도일까?”
멀리보이는 강을 보니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엄마는 아주 큰 강을 따라가면 태산처럼 높은 산이 있는 한반도로 이어진다고 했다.
“한반도라고?” 라조가 물었다.
“우리 호랑이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곳이래. 날씨도 따뜻하고 커다란 산이 있어서 대륙사슴 등 먹이감이 풍부하다더라.”
태산같이 높다는 그 산의 봉우리와 숲을 상상하며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사이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살면 참 좋을 것 같아.” 라조가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두만강 생태통로 프로젝트 지도. 현재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개체 수를 늘린 호랑이가 영역을 넓혀 두만강 넘어 백두산을 통해 한반도에 돌아오도록 생태통로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다. 범보전기금 제공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아무르 호랑이
우리나라에서 살던 한국호랑이는 중국 아무르지방을 지나 시베리아까지 퍼져 살았습니다 . 일본의 해수구제사업 , 전쟁 , 무분별한 수렵 등 불행한 우리의 역사로 인해 남한에서는 이미 호랑이가 절멸되었지만 , 그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같은 종류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 )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1930년경 20~30마리밖에 남지 않았던 아무르호랑이는 러시아당국의 적극적인 노력 덕에 현재 500여 마리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 특히 어미를 잃은 새끼를 구조해 짝을 이루게 하여 서식지로 재방사하는 프로젝트는 성과가 컸습니다 . 이중 사이한과 라조 커플은 올해 초에 성공적으로 방사된 사례입니다 . 러시아의 뒤를 이어 중국도 동북지역 호랑이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 또 최근 우리나라 두만강과 백두산 지역으로 생태통로를 잇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어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호랑이가 복원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생태계의 우산종, 호랑이
우산종이란 우산처럼 생태계 피라미드의 하위 동물을 감싸안아 생물다양성을 지켜주는 종을 말합니다 . 호랑이는 생태계의 최상위 꼭지점에 있는 동물로서 생태계의 조절자 역할을 합니다 . 최근 한국에서 멧돼지나 고라니 피해가 극심해지는 큰 이유는 생태계 질서를 지켜주는 호랑이 , 표범 등 조절자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실례로 유럽에서 늑대를 복원하자 생태계 조절 역할이 살아나 이하 동물들의 생물다양성이 더 풍부해 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 연해주에서 수렵생활을 하는 ‘우데게이’라는 부족은 호랑이가 숲의 질서를 유지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 어쩌면 그들의 믿음대로 수백만 년간의 자연의 질서를 지켜온 호랑이들이 짧은 시간 안에 자연을 망가뜨려버린 우리 인간들보다 더 믿을 만한 조절자이지 않을까요 ? 호랑이 복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