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코끼리에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일까?’
영국인 피아니스트 폴 바튼은 생각했다. 평생 인간을 위해 ‘노예 코끼리’로 살다 늙고 병든 코끼리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사죄할 수 있을지.
태국의 코끼리 보호 시설인 엘리펀트 월드(Elephant world) 구역에는 코끼리 3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은 삶의 대부분을 통나무를 운반하거나 관광지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보냈다.
’노예 코끼리’의 삶은 가혹했다. 영양이 부실한 채로 가파른 산에서 나무를 끌다 다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공연장에서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쇼를 하다가 시력을 잃기도 했다. 말 못하는 코끼리들의 희생은 대를 이어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보호받는 코끼리들은 대부분 앞이 보이지 않는 등 각종 장애와 부상을 안고 있다.
코끼리들의 아픔에 공감하던 폴 바튼은 시설의 동의를 얻어 직접 피아노를 챙겨 들고 코끼리 보호 시설로 향했다. 2018년 4월20일 처음으로 코끼리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날, 그의 손끝에서 ‘Send In The Clowns’ 선율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간절한 위로와 사과가 조금이라도 전해졌을까, 코끼리들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피아노 주변을 맴돌았다.
폴 바튼은 이후 지속적으로 코끼리들을 방문해 베토벤, 바흐,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다양한 곡을 연주했다. 코끼리들은 커다란 귀를 천천히 펄럭이거나 묵묵히 눈망울을 껌뻑이며 집중하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교감하는 듯했다. 관계자에 의하면 평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코끼리들도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차분해진다고 한다.
영상을 보며 연주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코끼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록 짧은 몇 분의 연주가 코끼리들이 겪었을 아득한 세월을 다 치유해 줄 수는 없겠지만, 평생 지옥 같은 세상만 보다가 까맣게 꺼져갔을 그들의 두 눈 대신, 저 무연한 두 귀에라도 일말의 아름다운 세상을 담아줄 수 있기를.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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