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새를 꼽자면 아마도 두루미가 아닐까?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두루미는 강원도 철원의 민간통제구역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 철원에서는 두루미 약 1천 마리, 재두루미 약 6천 마리가 겨울을 난다.
그래서 두루미 하면 철원이지만, 다른 종류의 두루미 무리가 머무는 곳이 있다. 흑두루미가 머무는 전남 순천만이다. 흑두루미는 전세계적으로 1만4천여 마리로 추정된다. 겨울이 되면 일본에서 1만 마리, 중국에서 천 마리 정도가 계절을 보낸다. 순천만에서는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하여 이번 겨울에는 3천여 마리가 겨울을 났다. 순천만의 생태 환경이 좋아지면서 일본 이즈미에 집중되던 개체 수가 월동지 부하를 줄이고 분산했다.
3월은 겨울 철새가 떠나고 여름 철새가 이동을 시작하는 시기다. 남쪽에 머물던 무리가 중부지방에서 더욱더 큰 무리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반면에 중부의 무리가 먼저 떠나고 남부의 새들이 오지 않으면, 공허한 들판만을 보고 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시기 탐조의 성과는 복불복이다.
그러나 흑두루미에 집중한다면, 매우 환상적인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수도권 탐조인들에게 순천만 흑두루미를 보러 가는 길은 거리상 부담이 되게 마련인데, 지난 3월은 이들에게 축제 같은 시기였다. 순천만을 떠난 대규모 흑두루미 무리가 충남 천수만에 잠시 들르기 때문이다.
조성된 먹이터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흑두루미들.
이 흑두루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여러 해, 건강한 자연 상태를 회복시키는데 들인 노력의 산물이다. 순천시는 갈대 습지와 더불어 흑두루미 월동지 여건 조성에 매우 큰 공을 들였다. 사례를 들자면, 순천시는 흑두루미 먹이 활동 장소인 논 근처에 있는 전봇대를 모두 지하로 매설했다. 덩치 큰 두루미가 날아가다 전깃줄에 부딪혀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다. 순천시청과 시민들은 흑두루미 무리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규정된 먹이를 공급해 안정적인 겨울 서식지가 되도록 힘을 쓰고 있다. 10년 전 순천만을 찾아오는 두루미는 몇십 마리에 불과했는데, 월동 개체가 갈수록 늘었다. 지난겨울 3천 마리가 넘었고, 순천을 거쳐 일본으로 가기도 한다. 기착지의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는 뜻이다.
천수만은 순천만과 비교하면 흑두루미 무리가 머무는 시기가 짧지만, 머무는 동안 강렬한 느낌은 매우 크다. 천수만에는 천수만 지킴이인 김신환 수의사(김신환 동물병원장)가 있다. 그는 흑두루미가 천수만에서 먹이를 충분히 먹고 잘 쉬고 갈 수 있도록 헌신한다. 간월호 수위가 높아 잠잘 곳이 마땅치 않은 흑두루미들에게 무논을 조성해 잠자리를 제공하고, 1톤 트럭 1대분의 볍씨를 3월 내내, 3일에 한 번씩 공급했다. 처음에는 천수만에서 월동하는 작은 무리를 위한 것이었는데,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중심의 동쪽 이동 경로가 파괴돼 흑두루미들이 경로를 서쪽으로 바꾸면서 김 원장의 봉사 규모도 더 커졌다.
흑두루미 먹이터에 볍씨를 뿌리는 사람들. 흑두루미가 놀라지 않게 해가 진 다음 작업을 한다.
한편 이런 노력과 반대로 3월은 일부 예의 없는 사진가들의 독선적인 잔치가 벌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작품에만 집중한다. 흑두루미가 쉬거나 먹이 활동을 하는 장소에 거리낌 없이 근접해 새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넓은 매립 농경지에서 이런 상황을 관리·감독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멸종위기 물새를 모니터링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물새네트워크에서는 천수만 흑두루미의 잠자리와 먹이터 출입 금지 현수막을 설치하고 사진 촬영에 예의를 지켜달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을 찾는 흑두루미는 일부 지자체와 개인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해왔다.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관리라고 하는 게 꼭 누가 누구를 힘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면 좋지 않을까. 지켜야 할 것을 자연스럽게 지키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 아름다운 자연을 대대손손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병우 에코버드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