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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까막딱따구리 서식지에 웬 태양광 발전

등록 2019-04-23 14:28수정 2019-04-23 15:45

[애니멀피플]
경북 봉화 산속에 대규모 태양광 단지…“법적으로 문제없다”는데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훼손되는 문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이 갈라지고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농민 문종호 씨가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인근의 까막딱따구리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새가 뭘까 궁금했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새가 뭘까 궁금했다.
저는 봉화군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사람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백두대간에서 아주 가까워 소백산 국립공원이 인접에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1㎞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백두대간은 물리적 지형이기도 하지만 문화를 가르고 동·식물이 움직이는 생태통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까막딱따구리라는 새가 삽니다. 처음 이 새를 만난 것은 2014년 겨울이었습니다. 동네 뒷산을 거쳐 백두대간까지 오르는데 처음 보는 새가 낙엽송에 앉아서 ‘따르르륵 따르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낙엽송은 목질이 단단해서 제대로 마르면 못도 잘 들어가지 않는 나무인데, 그런 나무에 큰 구멍을 낸 새가 궁금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그 장소로 가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마에 붉은 띠가 선명한 것을 보니 수컷 까막딱따구리였다.
이마에 붉은 띠가 선명한 것을 보니 수컷 까막딱따구리였다.
2019년 다시 까막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녹음한 소리를 틀어서 그 녀석(머리 부분에 빨간색 띠 모양이 긴 것으로 보아 수컷입니다)을 유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을 2만5000㎡가 넘는 터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모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되었다. 우리가 분명히 보호종인 까막딱따구리를 보았다.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주장하여 대구 지방환경청에서 이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되었다 해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법적 절차에 문제가 없으면 까막딱따구리 같은 천연기념물이 있어도 개발행위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봉화군청은 말합니다. 멸종위기종을 위한 피해 저감방안 조처를 한다 해도 그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은 사과농사가 주 작목이라 벌과 같은 수분 매개곤충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환경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는 없고 겨우 이야기하는 것이, 세종시에서 태양광 발전시설 밑을 자전거가 지나갈 때 자전거 속도계가 오작동하는 민원이 있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관한 연구를 해보니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자료가 있을 뿐이라고 알려줍니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 환경에 끼칠 영향에 대해 미리 조사된 것은 거의 없었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 환경에 끼칠 영향에 대해 미리 조사된 것은 거의 없었다.
중요한 국가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도 없이 무분별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니 답답합니다.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정도라니 참으로 씁쓸합니다.

까막딱따구리는 천연기념물 242호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딱따구리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큰 종이라고 합니다.

조류 전문가에게 ‘멸종위기종 새라도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사는 장소가 최적의 장소이며, 그들이 최선을 다해 일구어낸 삶의 터전”이라고 합니다(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대표). 다른 곳에 가서 자리를 다시 잡으려면 그 지역에 있는 다른 종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쓸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다른 종을 없애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쓸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다른 종을 없애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까막딱따구리는 수컷이 때가 되면 스스로 가슴 쪽의 털을 뽑아 체온을 올려 알을 품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키운 어린 새가 첫 비행에서 호반새의 공격을 받아 눈가에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얼마나 치열하고 힘겹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김성호, ‘까막딱따구리 숲’). 우리 마을에서 만난 까막딱따구리도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소리를 내는 까막딱따구리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제가 만난 그 까막딱따구리는 아마 혼자인 것 같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저 새가 죽으면 아마 우리 마을에서 까막딱따구리를 또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인간만을 위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다른 종을 없애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에너지라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환경 곧, 그 안에 사는 생명체를 해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글·사진 문종호/경북 봉화군 물야면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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