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백로. 봄은 백로가 번식해 새끼를 기르는 시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반가운 손님을 도심의 한 대학에서 만났다. 로빈은 동물복지운동가인데,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국의 사육곰 문제를 두고 심각한 토론을 하다 마음이 꽤 무거워졌다. 기분전환을 위해 봄꽃을 보러 잠시 호숫가 산책에 나섰다.
“오, 아름다워요. 여섯번째 한국 방문인데, 이번이 가장 아름답네요.” 로빈이 말했다.
“그렇죠? 이 시기에 온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연둣빛 나뭇잎이 돋아나고 봄꽃이 만개해 곳곳이 색색으로 물들거든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기념 삼아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호숫가 산책로로 갔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꾸룩꾸룩꾸룩! 삐익 빽!”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곧이어 로빈 옆으로 하얀 물체까지 뚝 떨어졌다. 새똥이었다. 얼른 위를 살펴보니 하얀 백로 두 마리가 우리를 경계하며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봄은 백로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번식기다. 백로는 둥지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경계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도심에 백로라니! 자연이 살아나 새들이 도심까지 진출한건가.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위를 바라보는데, 백로는 연이어 우리에게 소리를 질러대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어머, 미안해. 얼른 비켜줄게. 너희를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로빈과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비켜 산책로를 따라 십여 걸음을 피해갔다. 그런데 또 백로가 소리를 질렀다. “꾸룩꾸룩꾸룩! 꾸루룩!” 또 다른 백로 둥지였다. 옆에도, 또 그 옆에도… 호숫가 나무 위는 백로 둥지로 가득했다.
결국 우리는 한참 걸어가 머리 위에 나무가 하나도 없는 곳을 찾고 나서야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로빈이 신기한 듯 물었다.
“이렇게나 많은 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한국의 자연은 참 풍요롭군요.”
하지만 난 그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백로는 꽤 예민한 새인데 어쩌다 도심의 한가운데,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 위에 번식 둥지를 지어야만 했을까? 좋게만 생각하기는 무리였다.
게다가 작년 즈음 들었던 이 대학의 고민거리가 생각났다. 대학을 관리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 새들이 너무 많이 와서 살아요. 섬 주변과 호숫물이 새똥으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어요.” “아무래도 섬 안의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내서 새를 쫓아내야만 하겠어요.”
백로는 쫓겨난 것이었다. 호수 중앙의 섬이 안전하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산책로 주변 나무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구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의 방해 없이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되게 번식하도록 백로 무리를 유도할 만한 가까운 장소가 없을까 주변을 찾아보았다. ‘백로는 근처에 먹이 활동을 할 만한 호수나 강 등 물이 있고 천적들을 피할 높은 나무숲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데….’
그러나 차로 빙빙 돌며 둘러봐도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강을 전망 삼아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적절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숲을 밀어내고 새로 아파트를 짓고 있는 공사장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저곳이 사실은 백로들의 원래 서식지 아니었을까?’
도심의 자연이 풍요로워져서 백로가 찾아온 것이라 판단하기 힘들었다. 대학으로 찾아온 백로는 그들이 오래도록 살아오던 그 숲에서 이미 한 번 쫓겨난 개체였을 수도 있다.
불편한 도심이라도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백로 떼를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 살아 줄 곳은 없을까? 물론, 수십 혹은 수백 마리 백로 떼의 배설물들은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냄새나 위생 문제로 많은 민원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원래 집을 빼앗은 데 대한 보상은 누군가 해주어야만 하지 않을까?
“당장 알도 품고 새끼도 돌봐야 하는데 몇 달만 참아주면 안 될까요? 우린 더는 갈 곳이 없다고요!”
백로들이 꾸룩꾸룩대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개발 또 개발, 갈 곳 잃은 동물들
2015년 경기도 시흥시의 한 향나무숲이 농지개발로 벌목되며 번식 중이던 100마리의 백로 무리가 둥지를 잃었습니다. 알은 깨지고 둥지는 무너졌으며 한참 자라던 새끼 수십 마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2010년에 고양시에서도 벌목으로 번식 중이던 백로 1000마리 중 300여 마리가 폐사했습니다. 반복되는 벌목과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은 점차 살 곳을 찾아 도심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근 대전시에서도 소음과 배설물 문제로 백로 떼와의 벌목전쟁을 벌여 백로는 4차례나 쫓긴 끝에 한국과학기술원 교정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울산에서는 길조인 백로와 철새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공존을 도모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철새홍보관을 지어 생태관광을 활성화하며 시민에게 홍보하는 등 함께 사는 방법을 활발히 찾고 있습니다.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