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논병아리.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사랑을 나눈 새들이 자식을 키워가는 시기다.
봄볕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강과 호수에서 뿔논병아리는 독특한 구애 동작으로 눈길을 끈다. 짝을 찾아 나선 새는 먼저 검은색 뿔 깃과 적갈색 귀 깃을 곧추세워 자신의 매력을 상대에게 뽐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까. 이번엔 함께 물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수초를 입에 물고 나온다. 서로 얼굴과 부리가 부딪칠 만큼 가까이 다가선 채 갑자기 수면 위로 몸을 들어 올린다. 발을 버둥거리며 몸을 들어 올린 채, 함께 박자를 맞춰 고개를 흔들어 댄다. ‘호수의 발레리나’가 애정을 확인하는 구애 장면이다.
짝을 맺은 뿔논병아리는 자식 사랑도 헌신적이다. 알에서 깬 새들이 천적에 희생당할까 봐 등에 업어 키우다시피 한다. 등에 새끼를 업고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새끼를 업은 부모가 그대로 물속으로 잠수하면 새끼는 물 위에 둥둥 뜬다. 부모는 물속을 헤엄쳐 새끼들 몇 미터 앞 물 위로 떠오른다. 다시 등에 올라타려는 새끼들이 열심히 발을 저으며 수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냥할 때도 새끼의 입에 맞는 작은 물고기와 새우만 골라잡아온다. 또 자신의 몸에서 뽑은 깃털을 갓 태어난 새끼에게 먹이기도 한다. 깃털은 주식인 물고기를 통째로 삼키고 나서 가시 같은 찌꺼기를 상처 없이 토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처참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나타난 적도 있다. 2007년 12월, 온몸에 기름 범벅을 하고 처참하게 망가진 새 한 마리가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날벼락을 맞은 새가 뿔논병아리였다. 논병아리과 새 중 덩치가 가장 큰 뿔논병아리는 1999년 충남 대호에서 번식 모습이 처음 확인됐다. 그 뒤 적은 수가 충남 천수만과 북한강 등지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2010년 봄 시화호에서는 한꺼번에 50여 쌍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장관을 연출했다. 탐조인과 사진가들이 몰렸다. 흥분된 마음으로 뿔논병아리 번식 장면을 지켜봤다. 사람들이 차를 세워 둔 제방 도로 근처까지 뿔논병아리가 다가왔다.
작은 새우를 잡고 물고기 사냥을 하느라 연신 자맥질을 했다. 틈틈이 수초를 물어 와 둥지 보수에도 열을 올리고 있었다. 부부는 교대로 사냥을 하고 알과 새끼를 지켰다. 대부분 산란을 마친 시기라 구애 장면은 구경하지 못했다. 사랑춤을 출 때 한껏 부풀려 올리던 헤어스타일이 아니었다. 머리는 물에 젖어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단장할 틈도 없어 풀어헤쳐 져 산발이다. 새끼를 업어 키우던 등짝도 수초를 뒤집어쓰고 있다. 엄마의 자기희생적 삶을 그린 한 시인의 노래처럼 야생에서 부모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