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복지 수준이 높아지고 웅담의 인기는 급감했지만, 국내에 남아 있는 사육곰들은 철창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동물자유연대 제공
국내 웅담 채취용 사육곰들의 신체·건강 상태를 면밀히 살펴본 보고서가 나왔다. 25일 오전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자유연대가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육곰 현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현재 전국 31곳의 철장에 479마리의 곰들이 갇혀 있다. 1981년 웅담 채취 목적으로 길러진 사육곰들은 2005년 최대 1454마리로 정점을 찍은 뒤, 2014~1017년 증식 금지 사업 이후 지속해서 감소해 2019년 6월 현재 479마리가 남았다. 웅담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지만, 수백 마리 곰들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동물 복지적 관점에서 웅담 채취용 사육곰 실태를 들여다본 첫 번째 보고서다. 사육곰의 삶은 조사 및 연구 대상에서도 늘 열외가 되었다. 이들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2012년 ‘사육곰 실태 조사 및 관리 방안 연구’(환경부, 충남대 산학협력단)가 있기도 했지만, 사양화한 사육곰 산업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수의사 등을 포함한 활동가들은 이번 현장 조사를 통해 전국 31개 사육곰 농장 가운데 28개 농장, 462마리에 대한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보고서는 △사육곰 현황과 문제 △사육곰 산업의 문제점을 비롯해 △사육곰 복지상태 △사육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한국형 곰 생추어리 설립 가능성 탐색 등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형 행동 지속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곰들이 철창에 갇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조사된 곰들의 83%가 정형 행동을 하고 있었다. 현장 영상에서 곰들은 철창을 흔들거나, 좁은 사육실 내부를 반복적으로 오갔다. 철창을 반복적으로 물어뜯어 송곳니가 닳아 없어진 곰도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흙바닥 사육장은 하나도 없었다. 곰이 땅을 파 탈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곰들은 대부분 시멘트 바닥에서 길러지고(19곳), 육견 농장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뜬장에서 길러졌다(5곳). 나머지는 뜬장과 시멘트 바닥 사육장을 섞어 사육했다.
일부 농장에서는 정형 행동 대신 사람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내실에서 아예 나오지 않거나 침울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정형 행동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는데, 최태규 수의사는 이런 행동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 건강이 심하게 망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침울에 빠진 곰들에 대해 농장주들은 “편안하게 누워 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개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동물자유연대 제공
곰을 미치게 하는 것은 밀폐된 공간만이 아니다. 사육곰들에게 주어진 음식은 개 사료나 음식물 쓰레기다. 조사에 응한 농장 중 26%가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고 있었다. 이들 농장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빵 공장에서 나오는 재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 등을 먹이로 쓴 것이다. 18개 농가는 돼지 사료나 개 사료 등 배합사료를 급여했다.
영양과 위생적인 면에서 배합사료는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지만, 보고서는 배합사료를 먹는 것도 “정신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곰처럼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 먹이를 먹는 행위는 단순히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곰들은 꽃, 곤충, 열매, 나뭇잎 등 다양한 먹이를 찾아 섭취한다. 곰들은 다양한 질감과 냄새의 먹이를 찾으며 활발한 뇌 활동을 하는데, 하루 한 번 배합사료를 먹는 행위는 곰에게 건강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두 단체는 곰 도살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15개 농장에서는 석시닐콜린이라는 근이완제를 주사한 뒤 방혈하는 방식으로 도살한다고 밝혔다. 석시닐콜린을 주사하면 곰은 또렷한 의식을 유지한 채 호흡근이 마비돼 질식하거나 의식이 있는 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경동맥 등이 잘리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용량 부족으로 곰이 절명에 이르지 못하면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 남은 사육곰들은 모두 중성화한 상태로 더 이상 증식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야생이 아닌 철창에 사는 사육곰들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 기대 수명이 높으며, 남아 있는 곰 가운데 5살 이하 개체도 있기 때문에 많은 곰이 30년 이상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곰 생추어리 설립…정부, 적극적 의지 필요”
이에 따라 두 단체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사육곰 산업에 대한 인식, 해결 방안과 관련한 공감대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들이 추진하는 야생과 흡사한 보호소 형태인 ‘생추어리’ 사업에 대해 정부 측 입장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5.6%가 생추어리 건립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79.3%가 해결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를 위한 사육곰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도 78.3%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생추어리에서 지내는 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동물자유연대 제공
사육곰 생추어리는 현실화 가능할까. 두 단체는 한국보다 사육곰 규모가 2배 이상 많지만 곰 생추어리를 건립하고 2025년까지 사육곰들을 생추어리에 옮기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받은 베트남을 사례로 들며 현실화 가능성을 모색했다. 곰 생추어리는 다른 종의 야생 동물 보호 기능도 할 수 있다. 보고서는 국내에 전무한 중대형 포유류 보호시설로 추후 활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썼다.
두 단체는“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15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부지 면적 3만 평 규모의 시설을 목표로 필수시설부터 순차적으로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곰 생추어리를 건립할 장소로 청주, 서천, 김천 등에 있는 유휴 국유지, 국립공원이나 국·공립 동물원의 부지 등을 후보지로 놓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