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습지처럼 물 흐르듯, 경계를 허물면 어떨까요?”

등록 2019-12-02 10:32수정 2019-12-02 10:51

[애니멀피플] ‘습지주의자’ 책 낸 김산하 박사
국내 첫 야생 영장류 연구자의 습지 예찬론
김산하 박사는 습지에서 ‘딱부러진’ 고체 사회를 넘어설 가능성을 본다. 27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생태습지를 둘러보고 있다.
김산하 박사는 습지에서 ‘딱부러진’ 고체 사회를 넘어설 가능성을 본다. 27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생태습지를 둘러보고 있다.

“자연의 거대한 붓이 두껍게 칠해 버렸습니다. 촉촉한 생명의 물감을 일필휘지로 한가득 발라 놨습니다.…흙과 부드럽게 비비는 물의 몸체로부터 초록색의 웅성거림이 피어납니다.…생명의 온갖 가능성들이 꿈틀거립니다.”

인도네시아 정글을 누비며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우리나라 첫 야생 영장류 연구자인 김산하 박사(사진·생명다양성 재단 사무국장)는 습지 예찬론자이다. 그는 습지에서 생물의 다양성과 아름다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비인간 동물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습지형 인간’의 모습도 본다. 최근 <습지주의자>(사이언스북스)를 펴낸 김 박사를 11월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_______
물 흐르듯 사는 ‘습지형 인간’

-왜 습지를 이야기하게 됐나요.

“영장류가 사는 밀림은 지구가 생명의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표현한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우리나라에 밀림은 없지만 비견될 만한 곳이 습지입니다. 생물다양성이 산호초나 밀림 못지않아요. 개인적으로 습지에 가면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밀림에서 돌아와 눈 돌린 곳은 당연히 습지였습니다.”

-열대 우림(비숲)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경험을 ‘비숲’으로 내놓았습니다. 비숲과 습지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비숲은 비가 만든 숲이지만, 그 숲이 다시 비를 만드는 순환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아마존 훼손이 걱정되는 이유도 더 진행되면 강우를 만들어 내지 못해 비숲이 초원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습지도 계속 물이 들고 나지만 결국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습한 곳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명활동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물론 비숲이 수직적이라면 습지는 수평적이라는 차이가 있지요.”

습지는 열대우림 못지않게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김산하, 사이언스북스 제공.
습지는 열대우림 못지않게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김산하, 사이언스북스 제공.

-‘비숲’도 인문학적 사색을 곁들인 글쓰기와 그림으로 전형적인 생태학책과 많이 달랐지만, 이번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상황을 고려했습니다. 지식 기반의 설득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물론 ‘알면 뭐 하나’라는 분위기도 작용합니다. 지식이 쌓였는데 달라진 게 뭐냐는 피로감이죠. 왜 그런지 아는 것뿐 아니라 내가 관여하고 신경 쓸 문제구나 하고 깨닫고 공감하는 게 훨씬 중요해졌지요.”

-그래서 생태학적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사이사이에 ‘나’를 주인공으로 한 픽션을 넣었군요.

“두 부분이 떨어진 게 아니라, 픽션의 주인공이 논픽션의 팟캐스트를 듣고 개인의 삶을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도시에 사는 개인의 삶에도 습지와 접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습지의 생리가 우리 몸에 녹아있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습지처럼 살고 싶어하는 ‘습지형 인간’이군요.

“주인공의 성격과 삶의 방식이 요즘 성공 지향적이고 딱 부러지게 일 처리를 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액체처럼 여기저기 스며있고 물 흐르듯이 사는 존재입니다.”

_______
‘딱 부러진’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

-습지의 속성인 물렁하고, 맺고 끊는 것이 없는 것에 우리 사회는 부정적입니다.

“저는 습지형 인간과 성향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습지는 정해진 방향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자유롭게 흐릅니다. 국가는 이런 자유로운 흐름을 보고 당황해 어떻게든 통제하려 들고 4대강 사업 같은 일을 벌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깔끔하게 정돈되고 재단된 것을 요구합니다. 남성들은 군대에서 딱 부러지게 일하고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는 한 가지 성격을 강요받기 때문에 한국에 습지형 인간이 존재하기 힘들지요. 습지형 인간이 분위기를 부드럽게도 하고 이해심이 넓기도 한데, 중요하지 않은 특질로 받아들여지지요.”

다양함을 포용할 수 있는 ‘습지형 인간’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발붙이기 힘들어지고 있다.
다양함을 포용할 수 있는 ‘습지형 인간’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발붙이기 힘들어지고 있다.

-보통 습지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는 ‘물을 정화하는 자연의 콩팥’ 식으로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그러면 습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넓적부리도요는 사실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습니다. 기능주의는 ‘네 밥벌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유죄’라는 논리인데요. 우리는 자연, 특히 습지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갯벌에 가격을 매기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연에는 우리의 얕은 식견으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기능이 너무 많습니다. 은퇴자나 장애인을 사회에 기여하는 게 없으니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자연이 인간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란 개념은 자연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알리는 데 유용하지 않나요?

“쓸데없다는 건 아니지만, 생명의 뿌리를 나타내기엔 너무 좁습니다. 서비스로 표현하는 순간 나는 고객이고 평가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시장에서 용역을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죠. 미학적 측면, 사람을 위로하는 측면 등은 수치화가 안 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많이 해 주니까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부모의 은혜가 서비스입니까.”

_______
자연에 대한 선전포고

-과학자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면 과학자는 사실만 말하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과학하는 사람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왜 필요하지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멧돼지 살처분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 ‘과학자가 왜 이런 글을 쓰냐’며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생물학자, 생태학자에겐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중차대한 일인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선진국에선 정부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도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멧돼지에 관해 어떤 글을 썼나요.

“자연을 살처분하는 셈이라 했습니다. 솎아낸 적은 있어도 이 정도 규모로 야생동물을 죽인 적은 없습니다. 인간의 통제 밖에 있던 야생동물을 가축 수준으로 살처분한다는 건 자연에 대한 선전포고이고, 이것이 일상화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실로만 따져도, 멧돼지는 피해자이지 결코 가해자가 아닙니다. 집돼지가 멧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증거만 넘칩니다.”

김산하 박사는 과학자가 사회적 현안에 발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동물권 문제는 그런 대표적 분야이다.
김산하 박사는 과학자가 사회적 현안에 발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동물권 문제는 그런 대표적 분야이다.

-곧 수백만 명이 가둔 물고기를 잡는 ‘체험’을 하러 몰릴 겁니다. 요즘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행태는 앞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데 일조할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라 봅니다. 지금의 체험 열풍 이전에 우리는 숲에 들어가 운 좋으면 동물 한 두마리 만나는 식으로 자연과 만났습니다. 맨손으로 잡기 같은 즉물적 체험을, 돈 냈으니까 보장해 줘야 하는 행태는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동물 학대를 양산하는 시스템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자연을 접하면 그런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어서 심각합니다.”

_______
비인간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습지를 “물과 땅이라는 이질적인 물질이 마법처럼 공존하는 곳” “두 세상의 경계이자 어엿한 하나의 독립 세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경계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습지가 소중합니다. 경계를 허물 수 있고, 경계 자체가 새로운 하나의 실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원천이니까요.”

“반려동물과 가축은 인간도 아니고 야생동물도 아닌 중간 존재입니다. 또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와 고래 같은 동물도 있습니다. 이들은 제인 구달이 말한 것처럼 ‘자연이 파견한 대사’와 같아서 야생의 자연과 인간을 잇는 외교 사절 구실을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가 중요한 과제인데, 습지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물고기와 낙지, 문어, 새우, 대게 같은 동물을 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화목한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이런 동물들을 산 채로 찌고, 뜯어먹을 수 있을까요.”

둠벙 같은 작은 습지의 가치도 크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습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김 박사는 주장한다. 안선영, 사이언스북스 제공.
둠벙 같은 작은 습지의 가치도 크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습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김 박사는 주장한다. 안선영, 사이언스북스 제공.

-우리나라에서 습지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작은 습지들이 너무나 빨리 파괴되고 있습니다. 동료 연구자 얘기 들어보면 전 주에 갔던 습지가 다음 주에 가면 없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습지는 일시적으로 물이 고였다 사라져도 다 기능을 하는데, 아예 도로로 포장되고 비닐하우스 들어섭니다. 습지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겨야 합니다. 이 책을 낸 이유입니다. 아울러 세계적인 습지인 갯벌을 즐기는 방법도 바뀌면 좋겠습니다. 갯벌 탐사 참가자들에게 해양 동물 스케치, 의자에 앉아 감상하기, 그림 그리기 등을 가르쳤더니 “잡아먹지 않고도 재밌다는 것 처음 알았다” 반응을 보이더군요.”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푸른 뱀의 해 2025년…그런데 뱀이 무섭다고요? 1.

푸른 뱀의 해 2025년…그런데 뱀이 무섭다고요?

“산책하려면 개, 안 하려면 고양이를 키워라” 2.

“산책하려면 개, 안 하려면 고양이를 키워라”

사람 약 만드는데 왜 토끼를 쓰나요…“동물실험, 이미 대체 가능” 3.

사람 약 만드는데 왜 토끼를 쓰나요…“동물실험, 이미 대체 가능”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4.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타고난 사냥개? “원래 그런” 진돗개는 없다 5.

타고난 사냥개? “원래 그런” 진돗개는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