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습지주의자’ 책 낸 김산하 박사
국내 첫 야생 영장류 연구자의 습지 예찬론
국내 첫 야생 영장류 연구자의 습지 예찬론
김산하 박사는 습지에서 ‘딱부러진’ 고체 사회를 넘어설 가능성을 본다. 27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생태습지를 둘러보고 있다.
물 흐르듯 사는 ‘습지형 인간’ -왜 습지를 이야기하게 됐나요. “영장류가 사는 밀림은 지구가 생명의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표현한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우리나라에 밀림은 없지만 비견될 만한 곳이 습지입니다. 생물다양성이 산호초나 밀림 못지않아요. 개인적으로 습지에 가면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밀림에서 돌아와 눈 돌린 곳은 당연히 습지였습니다.” -열대 우림(비숲)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경험을 ‘비숲’으로 내놓았습니다. 비숲과 습지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비숲은 비가 만든 숲이지만, 그 숲이 다시 비를 만드는 순환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아마존 훼손이 걱정되는 이유도 더 진행되면 강우를 만들어 내지 못해 비숲이 초원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습지도 계속 물이 들고 나지만 결국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습한 곳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명활동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물론 비숲이 수직적이라면 습지는 수평적이라는 차이가 있지요.”
습지는 열대우림 못지않게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김산하, 사이언스북스 제공.
‘딱 부러진’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 -습지의 속성인 물렁하고, 맺고 끊는 것이 없는 것에 우리 사회는 부정적입니다. “저는 습지형 인간과 성향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습지는 정해진 방향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자유롭게 흐릅니다. 국가는 이런 자유로운 흐름을 보고 당황해 어떻게든 통제하려 들고 4대강 사업 같은 일을 벌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깔끔하게 정돈되고 재단된 것을 요구합니다. 남성들은 군대에서 딱 부러지게 일하고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는 한 가지 성격을 강요받기 때문에 한국에 습지형 인간이 존재하기 힘들지요. 습지형 인간이 분위기를 부드럽게도 하고 이해심이 넓기도 한데, 중요하지 않은 특질로 받아들여지지요.”
다양함을 포용할 수 있는 ‘습지형 인간’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발붙이기 힘들어지고 있다.
자연에 대한 선전포고 -과학자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면 과학자는 사실만 말하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과학하는 사람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왜 필요하지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멧돼지 살처분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고 ‘과학자가 왜 이런 글을 쓰냐’며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생물학자, 생태학자에겐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중차대한 일인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선진국에선 정부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도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멧돼지에 관해 어떤 글을 썼나요. “자연을 살처분하는 셈이라 했습니다. 솎아낸 적은 있어도 이 정도 규모로 야생동물을 죽인 적은 없습니다. 인간의 통제 밖에 있던 야생동물을 가축 수준으로 살처분한다는 건 자연에 대한 선전포고이고, 이것이 일상화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실로만 따져도, 멧돼지는 피해자이지 결코 가해자가 아닙니다. 집돼지가 멧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증거만 넘칩니다.”
김산하 박사는 과학자가 사회적 현안에 발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동물권 문제는 그런 대표적 분야이다.
비인간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습지를 “물과 땅이라는 이질적인 물질이 마법처럼 공존하는 곳” “두 세상의 경계이자 어엿한 하나의 독립 세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경계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습지가 소중합니다. 경계를 허물 수 있고, 경계 자체가 새로운 하나의 실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원천이니까요.” “반려동물과 가축은 인간도 아니고 야생동물도 아닌 중간 존재입니다. 또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와 고래 같은 동물도 있습니다. 이들은 제인 구달이 말한 것처럼 ‘자연이 파견한 대사’와 같아서 야생의 자연과 인간을 잇는 외교 사절 구실을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가 중요한 과제인데, 습지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물고기와 낙지, 문어, 새우, 대게 같은 동물을 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화목한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이런 동물들을 산 채로 찌고, 뜯어먹을 수 있을까요.”
둠벙 같은 작은 습지의 가치도 크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습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김 박사는 주장한다. 안선영, 사이언스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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