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 어미와 새끼의 발자국. 볼펜으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김호진, 인제천리길 제공.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향로봉 일대에서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반달가슴곰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들은 지리산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지난해 비무장지대 안에서 사진이 촬영된 반달곰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야생 개체로 추정된다.
‘인제 천리길’(대표 김호진)은 지난해 1월 4일 탐방로 탐사 도중 대암산·향로봉 자락의 눈길에 찍힌 어미와 새끼 반달가슴곰의 발자국을 다수 발견해 조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김 씨는 “동영상 등 자료를 보강하던 중이었지만 밀렵과 멧돼지 포획 과정의 오인 사격이 우려돼 뒤늦게나마 공개하게 됐다”며 “야생 반달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제천리길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반달곰 발자국을 조사하고 있다. 김호진, 인제천리길 제공.
눈위에 찍힌 곰 발자국은 부채꼴 모양의 넓적한 발바닥과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현장을 조사한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길이 20㎝, 폭 18㎝로 다 자란 어미 반달가슴곰과 뒤를 따르는 작은 곰의 발자국”이라며 “어미 곰이 2018년 봄에 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겨울잠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약 10㎞ 떨어진 비무장지대 안에서도 반달가슴곰 새끼가 계곡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이 국립생태원이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촬영돼 지난해 5월 공개됐다. 한 박사는 “거리로 보면 같은 생활권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의 주인공은 민통선 밖이고 사진이 찍힌 개체는 비무장지대 안에 살아 서로 교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환경부가 공개한 비무장지대 안 반달가슴곰. 어린 개체로 형제나 부모 등 3마리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환경부 제공.
일반적으로 반달곰은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따라서 서화면 일대에는 “이번에 발자국을 남긴 곰 가족 2마리에 새끼 형제 곰과 수컷 어미를 합쳐 최대 4마리의 반달곰이 사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 박사는 설명했다.
국립생태원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확인한 반달곰은 태어난 지 8∼9개월의 새끼여서, 그곳에도 어미와 형제 곰을 포함해 3∼4가 서식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화면 일대의 전체 반달곰 개체수는 직접 확인된 것만 3마리, 최대 8마리라고 할 수 있다.
한 박사는 “지리적인 거리에 비춰 지리산에서 퍼져 나온 반달곰이 이곳까지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리산의 반달곰은 종 복원 사업 결과 2001년 5마리 수준에서 현재 61마리로 늘어, 그 일부가 민주지산-덕유산-수도산-가야산 일대로 퍼져 나가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덕유산 인근인 삼봉산에서 젊은 반달곰 한 마리가 국립공원공단이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이번에 반달곰 발자국이 발견된 대암산과 향로봉은 천연보호구역으로 생태계가 잘 보전돼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인제 천리길,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국디엠지평화생명동산은 지난 1년 동안 15대의 무인카메라를 발자국이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했다. 그 결과 산양, 담비, 삵, 고라니, 멧돼지, 노루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촬영됐으나 반달가슴곰은 확인하지 못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이 반달곰 발자국이 발견된 인근 지역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김호진, 인제천리길 제공.
김호진 대표는 “주변 산악이 워낙 넓은데 조사 인원과 무인카메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당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또 “멧돼지를 포획 사업으로 인한 오인 사격을 막을 대책을 세우는 한편 지역 주민에게 반달곰 서식을 알리고 올무 등 밀렵 도구 제거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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