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 낙서초등학교 5·6학년 교실. 이 학교 5학년생과 6학년생은 각각 1명뿐이라서, 5·6학년 학생이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한다. 최상원 기자
경남 의령군 낙서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낙서초등학교는 병설유치원생 포함 전교생이 11명이다. 교직원 15명보다도 4명 적다. 2·5·6학년은 1명씩뿐이어서 1·2학년생과 5·6학년생은 각각 한 교실에서 생활한다. 체육 과목은 3~6학년생이 통합 수업을 하고, 현장체험학습은 전교생이 함께 간다. 1명씩뿐인 6학년생과 5학년생은 전교생 찬반투표를 거쳐 전교 회장과 부회장에 선출됐다.
20여년 전만 해도 낙서면에는 낙서초등학교 말고도 정동초등학교가 있었다. 1960년대까지 두 학교 학생 수는 300명대를 유지했지만 197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1999년 두 학교가 통합돼 정동초등학교 자리에 낙서초등학교가 자리 잡았다. 통합 이후에도 학생 수는 계속 줄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지만, 1개 면에 최소 1개 초등학교를 유지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서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송순옥 낙서초등학교 교장은 “학교만의 노력으로는 학생 수 감소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교육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집, 부모 일자리, 진학할 중·고등학교, 대중교통 등 많은 것들이 먼저 갖춰져야 가능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정말 절실하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낙서초등학교에 인접한 여의마을의 김원영 이장은 “20년 전만 해도 마을 주민이 100명을 훨씬 넘었는데, 지금은 23가구 38명에 불과하다. 내가 어릴 때는 20여명이 줄을 서서 함께 등교했는데, 지금은 마을에 학생이 아예 없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최근에 태어난 아이가 올해 24살인 내 아들이다.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이라서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령군 낙서면 사례는,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고 인구는 줄어가지만 가구 수는 되레 늘고 있다. 배우자나 자녀 없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기 때문이다. 이들마저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마을공동체 황폐화는 가속화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227개 기초단체 가운데 89곳을 인구 급감으로 인한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했다.
■ 정주인구 대신 활력인구로 전환 의령군은 최근 주민등록인구보다 이른바 ‘활력인구’를 늘리는 쪽으로 인구정책의 방향을 바꿨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고향이라는 점에 착안해 삼성 관련 기업 유치에도 나서고, 의령군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등을 활용한 관광자원 개발도 적극적으로 추진해봤지만 인구 감소세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활력인구란 주민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해당 지역을 자주 방문해서 머물며 생산·소비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령군은 지난해 10월 위기정책담당·인구위기대응담당·산업혁신담당 등으로 이뤄진 소멸위기대응추진단을 구성하고, 올해를 ‘의령 살리기 운동 원년의 해’로 선언했다. 지난 1월24일엔 전문기관에 인구활력계획 수립 용역을 맡겼다. 또 지난 2월8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인구감소지역 극복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다. 의령군은 오는 8일까지 아이디어를 모은 뒤, 채택된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최우수 100만원 등 상금을 줄 방침이다.
이성섭 의령군 인구위기대응담당은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청년 활동인구가 줄면서 지역 활기가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따라서 현재 수준으로 주민등록인구 수를 유지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이와 함께 ‘활력인구’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활력인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주민등록인구와 출생아 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함께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해 오는 7월부터 출향 도민 등 지역 연고자에게 도민증을 발급할 계획이다. 전북 출향도민은 189만여명으로 전북 주민등록인구 178만명보다 많다. 전북도는 함께인구의 전북 방문을 유도해, 지역 활력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도민증을 가진 함께인구는 전북지역 관광지 90여곳을 무료로 출입할 수 있고, 식당·숙박업소·체험시설 등 400여곳 이용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경북도 또한 주민등록지와 상관없이 경북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활인구’를 늘리는 방안을 지난해 11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주민등록지 도시의 집과 별도로 시골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경북도는 이들을 상대로 ‘경북에 제2의 고향 만들기’를 추진한다. 생활인구가 주소지와 상관없는 제2의 고향에 기부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보내는 등 선순환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도 꾀한다.
■ 귀농·귀촌 지원에 기본소득 시행도 일부 자치단체들은 그나마 도시민을 유입시킬 방법인 귀농·귀촌에 공을 들이거나, 청년기본소득까지 동원해 인구 감소에 대응한다.
전남도는 올해 15억원을 들여 20개 시·군의 마을 27곳에서 도시민의 농산어촌 이주를 지원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을 펼친다. 이 사업은 2019년 전남 농산어촌에서 5~60일 먼저 체험하는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로 처음 시도돼 2021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사업에 참가하는 18살 이상 도시민은 1~6개월 동안 주거를 제공받고, 연수비 월 30만원과 체험프로그램 수강 등 혜택을 누린다. 참가자들의 멘토 구실을 할 운영자도 숙박비, 체험비, 강사비, 보험료, 멘토 수당 등을 지원받는다.
충남 부여군은 귀농 희망자를 위한 임시 거주 공간 ‘귀농인 희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원룸 5가구, 투룸 5가구 등 총 10가구로, 최대 월세 20만원을 내면 최장 1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그 기간 예비 귀농인은 여건과 기술 수준에 맞는 작목을 찾고 정착할 집과 농지 등도 차분히 준비할 수 있다. 청년 귀농인이 실습할 수 있는 농장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참가자에게 3∼6개월 주거와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부여 지역의 일자리를 연계하는 ‘미리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충남 청양과 논산은 ‘청년기본소득’에 주목했다. 청양군은 만 25∼35살 청년에게 오는 4월과 10월 지역화폐로 30만원씩 청년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다. 지급 대상은 청양군에 3년 이상 계속 주민등록을 두는 중이거나, 합산 10년 이상으로 현재 청양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청년이다. 대상은 약 450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2월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한 충남 논산시도 1년 이상 또는 생애 합산 10년 이상 관내에 거주한 만 26∼32살 청년에게 반기마다 지역화폐로 50만원씩을 지급할 예정이다. 전남도도 청년층의 자기계발을 돕기 위해 21~28살 청년 12만명한테 다달이 20만원의 문화복지카드를 지원한다.
이외에 인천 강화군, 강원 정선·홍천군, 전북 무주군 등도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등 인구활력 사업 발굴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신동철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소멸 문제를 단순히 인구 문제로 접근하면 답이 없다. 인구정책은 보완적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인구를 늘릴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은 일본은 응원인구·관계인구라는 개념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 일부 지자체들이 도입하는 활력인구·함께인구 개념과 비슷하다. 또 일본은 고향납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고향사랑기부금 제도를 운영할 예정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 문제를 널리 알리고 관심을 환기하는 기능을 해서, 좀 더 고민하고 답을 찾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뀐 인구 규모·구조에 사회경제 시스템 맞춰야”
서형수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회경제 시스템에 인구구조를 맞추는 게 아니라) 바뀐 인구구조에 사회경제 시스템을 맞추도록 해야 합니다. 또 도시 재개발보다 시골마을 재개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서형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이 “아직은 구상 단계”라며 조심스럽게 내놓은 인구감소·지방소멸 해법이다.
서 부위원장은 지난 2월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40년 전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았는데 지금은 가장 낮고, 고령화율은 현재 가장 낮은 수준인데 40년 뒤에는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는 전세계에 전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2020년 기준 전국 평균 출산율은 0.84인데, 지역별로 볼 때 서울은 0.64, 광역시는 0.74, 도 지역은 0.94, 경기도를 제외한 도 지역은 1.00이다”라며 “출산율이 낮은 지역은 인구가 늘어나고 출산율이 높은 지역은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은, 서울 등 수도권으로 청년인구가 빨려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서 부위원장은 인구정책 전환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예전 경제개발 시대에는 사회경제 시스템에 인구 규모·구조를 맞추는 정책을 펼쳤다. 저출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바뀐 인구 규모·구조에 사회경제 시스템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먼저 겪은 일본이 도입한 ‘관계인구’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주민등록과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인구를 가리키는 말로, 최근 우리나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한 활력인구·생활인구와 비슷하다. 그는 “관계인구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1가구 2주택 (중과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이중 주민등록 제도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현재 도시 중장년층 상당수가 출향민인 만큼, 이들을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이 돌아와 고용을 유발해야 청년층이 뒤따르고, 이어서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다”며 “이를 위해선 먼저 시골마을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원주택지를 개발하자는 게 아니라) 현재 시골 낡은 집에 사는 주민들에게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시설을 제공하고, 나머지 주거시설을 귀촌·귀농하는 사람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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